녹아 내린 우산

내가 글을 쓰고 싶어했던 이유를 다시 상기했다.

by 황태

타닥타닥 빗물이 우산을 타들이듯 건드렸다.

빗물이 우산 속 명화를 건드릴 때마다

뻥뻥 구멍이 나며 어느새 그림은 녹아 허물어졌다.

흔들거리는 그림에서 뚝뚝하고 초록물이 새어 나와

나무들을 진한 녹색으로 물들였다.

우산이나 나무들이나 아직 마르지 않아 질척했다.

이것은 완성되지 않은 내 삶이 직조해 낼 그림이었다.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이제 빗물은 내 귓가를 넘어

머릿속 상념들을 태워갔다.

타닥타닥

아. 언젠가 내가 들고 있는 이 모든 걱정들은

비에 쓸려 흘러내려가버리는 것들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녹아내려가 버릴 것이라면야

속절없이 허물어져 버릴 것임을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이라면야

상념들에 걱정들에 하나씩 색을 덧입혀

그림을 그려나가고 싶었다.


어제 일을 떠올려본다.

나름 친하게 지냈던 분이

또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던 분이

스치는 눈인사로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임을 고했을 때

느꼈던 인간관계의 허망함과 부질없음이

뚝뚝 떨어져 나갈 때

노란색을 입혀

그분과의 좋은 추억들을 불러내었고

흘려보냈다.


같이 개발을 진행하며

항상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50대 아줌마에게

맨날 그러시면 어떡하냐면서

나도 모르게 화를 벌컥 내버렸는데

사실 어제 일은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을 때의

민망함과 수치스러움이

나를 허물어져 내리게 할 때

붉은색을 입혀

개발의 다음 진행과정을 향해

뻔뻔한 화살표를 그려보았다.


일을 하기 싫어하고

새로운 일은 더더욱 싫은 나이지만

천성이 개미로 태어나버려서

베짱이의 마음과 개미의 몸뚱이로

부정확하고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 새로운 것들에

심장이 타닥타닥 타들어갈 때

개미의 몸뚱이에 녹색을 입혀

베짱이의 모습으로 둔갑해 보았다.

그 참지 못하는 불안감으로

새로운 일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던 것이라면

베짱이의 마음으로 여유를 가져도 될 것이다.

어차피 본래의 개미 몸뚱이가 일을 해야 할 때

적절히 일해 나갈 것이다.


아직 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두려운

한심한 나에게 파란빛을 입혔다.

처음 글을 쓰고 싶게 만들었던 하늘을 떠올렸다.

내 머리 위로만 떠다니는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며

살아있음에 대한 황홀함과

참을 수 없는 감사를

그저 기록하고 싶었던 마음을 떠올렸다.

구독자와 조회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기쁨을 순간 속에서 지나치지 않고 발견하여

기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글쓰기였다는 것을

녹아내리는 우산 속에서 다시 깨닫게 됐다.

어차피 글공부야 어쩔 수 없는 개미 몸뚱이가

열심히 해낼 것이다.

베짱이의 마음으로 한 번 더 하늘을 바라보고

감사의 순간을 찾아내어 기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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