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일도 좋아하는 글쓰기도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두렵다.
해보지 않은 일과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그리고 그 거리는 우리의 두려움이 줄곧 늘려대곤 한다. 그리고 두려움을 넘어서서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대개 주변에서 승승장구하곤 한다. 다양한 일을 배우고, 새로운 개발에 참여하는 등 발전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일하는 것을 즐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새로운 변수들이 존재하거나, 추가로 알아봐야 하는 영역들이 생길 때면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예를 들어
"이거 갑자기 안되는데 왜 안되는지 확인해 주세요.",
"이거 왜 이렇게 하고 계셨던 거예요?",
"혹시 이렇게 해도 가능한가요?"
등의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야 하는 행위 자체가 부담스럽고 두려웠던 것 같다. 잘해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완벽하고 싶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두려움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던 일을 그대로 하게 되면 루틴대로 처리하는 일들을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되고 자유롭게 내 시간을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같은 양의 일을 더 적은 시간 동안 처리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규정을 찾아보고 방법을 알아보는 등 추가로 공부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만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면들이 나에겐 매번 버겁게 느껴졌다.
풀어 설명했지만 한 마디로 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전형적인 베짱이 스타일인 것이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 게 일 하기 싫은데. 새로운 일을 하기 두려운데.
솔직히 찰나의 두려움만 꾹 참고 전진하다 보면 더 많은 업무 지식이 쌓이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경력자의 몸값이 높아지는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왜 이렇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무서울까.
(물론 나는 지금 강제로 미지의 영역의 업무를 배워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해 있지만 말이다. 내가 스스로 나아가기 싫어하니 강제적으로 상황이 부여되는 것일까. 그러한 상황에서도 이직을 무서워서 하지 못하는 나이다.)
일을 벗어나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회사일에서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에서도 나는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것을 접하고 나에게 적용하는 것이 너무 무섭고 힘들다. 내 안에서 '새로운 것들은 힘든 것이다'라고 정해놓고 자기 방어를 펼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다양한 것에 대해 배우고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 전전해보는 것이 그 분야의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은 확실한 답처럼 제시되어 있다. 그렇기에 나도 일단 학교를 다니는 것이고 학교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 과제를 소화하며 나에게 맞는 글쓰기가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참 어렵고 두렵다. 최소한의 배움의 길은 필요한 것이 사실이나, 그저 모든 것에서 훌쩍 벗어나 내가 제일 행복한 나만의 글감 위에서 소소하게 웃음 짓고 싶다. 나의 이러한 모습은 참 한심하고 또 의기소침해진다. 그래서 천성적으로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무섭단 말이다. 생떼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저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소소하게 행복해하고 싶단 말이다. 이런 사람도 글을 쓴다고 하고 있는 게 우습지만 그래도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겁쟁이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실패자이고 낙오자인 것일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멋지게 배움을 쌓아 걸어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좋아하는 이 자리에서 터를 짓고 아래로 땅을 파내려 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미 벌써 내가 행복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버린 사람들이 아닐까?
이런 겁쟁이도 글쓰기를 좋아한다며 글을 쓰고 있고, 이런 한심한 사람도 일단 그중에 좋아하는 글이 있고, 이런 낙오자도 헤엄쳐 나가고 싶은 세계가 있다. 나는 이미 벌써 내가 행복해하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태한 사람의 자기변명과도 같이 들릴 수 있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좋아하는 글 위에 터를 짓고 땅을 파 내려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남들은 새로운 세계들을 접해가며 더 멋지고 빛나는 모습으로 나를 지나쳐 걸어 나가겠지만, 그리고 나는 발전하지 못한 사람이라며 제자리에 머무른 채 결국에는 제일 뒤에 서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이미 행복하고, 그래도 나는 이미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그저 내 터 아래의 땅을 무한히 파내려 가며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으로 땅을 파보려 한다. 더욱 깊숙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