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프랑스 커플의 가족 이야기
나는 상하이에서 15년째 살고 있다. 이곳에서 여러 회사를 옮기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는데, 새 회사로 옮겼을 때, 나를 감싸고 있는 기운의 축이 조금 바뀐다는 것이다.
새 축의 변화가 나에게 새로운 기운을 가져온다. 안타깝게도 그 기간이 길지는 않다.
새로운 기운은 흥부에게 박씨를 가져온 까치처럼 행운을 혹은 새 인연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 기운이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할 때 그것들을 잡을 수 있다.
8년 전 봄에 새 회사로 이직하고, 친구의 친구의 페어웰 파티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잘생긴 프랑스 남자였다. 말도 잘 통했다.
12시쯤 집에 가려고 하는데, 그 남자가 나의 위챗(중국의 카카오톡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물어보지 않았다.
음… 왜 안 물어보지?
페어웰 파티 주인공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내 위챗을 물어보게 할 셈으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 나 이제 집에 가~~
이렇게 힌트를 줬는데도 내 위챗을 안 물어본다면,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걸로.
바로 그가 나의 위챗을 물어보며 다음 주 주말에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이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프랑스 남자와 상하이에서 8년을 같이 살면서 결혼도 하고 이쁜 아기도 낳았다. 우리만의 가족이 탄생되었다.
한국 여자에게 시댁이란 어떤 의미일까? 프랑스 남자에게 처갓집이란 무슨 의미일까? 프랑스 남자는 한국만의 시댁과 처갓집이라는 의미를 모를 것이다. 나에게도 내가 알고 있는 시댁과 처갓집은 다른 의미로 정의될 것이다.
프랑스에서 혼인 신고를 할 때 증인으로 참석한 프랑스 친구가 말했다.
- 너 결혼 잘 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만 같았다. 늘 프랑스 시댁은 어떨까? 프랑스도 시집살이가 있나? 나와 잘 맞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런 걱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좋은 시부모님이라고 해도 한국 며느리에게는 시댁은 어렵다. 행여나 내가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다른 문화 속에서 무심코 한 행동들이 예의에 어긋나는 건 아닌지. 아직까지 무탈하게 시댁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내가 잘 하고 있다는 거 아닐까?
언어도 문화도 다른 두 나라의 사람이 만나서 그의 가족과 나의 가족에 더해진 우리만의 가족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