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과 나는 생일이 이틀 차이 나는 양자리이다.
그래서인지 아버님과 나는 잘 맞는다.
아버님은 영어를 못 하시고 나는 불어를 못 한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쉬지 않고 대화한다.
한쪽은 불어로 한쪽은 영어로.
아버님은 아침마다 신문을 읽으시는데, 한국 관련 기사가 나오면 꼭 나에게 보여주시고 불어로 무슨 기사인지 말해주신다.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하나 아는 단어가 나오면 추리에 추리를 해가면서 열심히 듣는다.
한번은 지역신문에 한국 디자이너의 인터뷰 기사가 났다. 어김없이 그분의 기사를 보여주신다. 남편 공향은 주로 유럽 사람이나 영국 사람들이 휴가를 오는 곳으로 아시아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기사라니. 정작 한국 사람인 나는 무덤덤하지만 아버님이 더 동지애를 느끼시는 것 같다.
그분의 인스타그램을 찾아서 아버님께 보여드렸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어도 한국인 기사라면 너무 반갑다고 하신다. 귀여우신 아버님.
아버님은 매주 일요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 슈퍼에 가시는데, 남편 없이도 나도 늘 동참한다.
나는 프랑스 슈퍼마켓이 너무 재밌다. 구경할 것이
너무 많다. 다양한 브랜드의 버터들, 요구르트, 종류도 다양한 치즈들. 공산품을 살지 지역에서 생산한 치즈를 살지, 고르는 것도 재밌다.
남편은 사야 할 것만 고르고 바로 계산하는데, 아버님과 가면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
아시안 코너에 간장, 태국 카레, 한국 라면은 꼭 사 온다. 새로운 음식도 거부감 없이 드시는 아버님에게 태국 카레나 잡채는 꼭 해드린다.
한번은 슈퍼 캐시어 분이 아버님 친구분이셨는데, 나를 우리 한국 며느리라고 자랑하셨다. 우리가 상하이에 살고 있고 여름에 놀러 왔고.. 등등. 한 5분은 얘기하신 것 같다.
계산대에서 5분 대화라니.. 역시 프랑스 사람들이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혼인신고를 하고 우리는 프랑스에 산 작은 아파트를 우리 손으로 리노베이션 할 계획이었다. 그때가 바로 코로나가 시작되는 시점이었고, 비행기들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상하이에 바로 못 들어가고 있어다. 우리는 이때다 하고 열심히 집 수리에 들어갔다.
나는 페인트칠 담당, 남편은 바닥 담당, 아버님은 화장실 담당. 매일 7시간씩 고된 노동을 했다.
아버님께 죄송하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기계를 고치고사부작 하시는 걸 좋아시는 분이시라 본인도 즐거워하셨다.
아침에 같이 현장 가고 점심도 같이 먹으면서 팀워크도 생겼다. 가족 팀워크.
집을 고치면서 아버님과 같이 일하는 게 재밌었다.
농담도 하고 작은 거 하나하나 설명도 해주시고.
같은 양자리여서 그런지 나는 어머님보다는 아버님이 편하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관계가 편하다.
말이 좀 안 통하면 어떠하리. 이렇게 작은 경험 하나하나가 쌓이면서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것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