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마담 마리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이 순수한 웃음소리와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좋았지만 아이들의 우는소리가 힘들었다. 그리고 남편 안드레와 브리타뉴의 작은 도시에서 캠핑장을 운영했다. 마담 마리는 모든 일을 계획하고 처리하느냐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번아웃이 심하게 왔다. 마음만 타들어 간 게 아니라 몸에도 이상이 왔다. 어느 순간부터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익숙한 음식이 아니면 몸이 거부 반응을 시작하더니 이제는 매일 먹던 음식들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녀가 먹을 수 있는 건 유제품과 햄과 소시지. 그리고 약간의 야채들.
병원에서는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신경 어딘가의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해서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상하이로 여행을 올 때도 프랑스에서 먹던 햄을 사가지고 오거나 수입품 코너에서 프랑스산 햄을 사야 했고, 모리셔스 아일랜드로 여행을 갔을 때도 햄과 요거트로 지내야 했다. 다행히 바게트 빵은 먹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상견례를 했을 때도 그녀는 조용히 햄을 가방에서 꺼내야 했다. 우리 부모님에게 그녀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해 드렸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시고 불고기를 그녀 앞에 놓으신다. 그래도 불고기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셨나 보다. 마담 마리가 늘 겪는 일이다.
늘 본인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도 다들 그래도 이것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다.
나의 프랑스 옛 동료 클로이는 시드니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치즈를 매일 먹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이유 없는 두통이 찾아왔다고 한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고, 여러 의사를 찾아다녔다. 치즈를 먹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늘 먹던 음식을 먹지 않아도 몸이 알고 반응 하나보다. 그녀는 다시 치즈를 먹기 시작했고 두통은 서서히 없어졌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어느 할아버지는 평생을 라면으로 식사를 했는데도 몸에 이상 하나 없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말해줘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아니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
본인과 타인의 해석 사이에서 그녀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몸이 아픈 것보다 사람들의 반응에 더 힘이 들었을 그녀.
마담 마리를 본인의 생각대로가 아닌 그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그녀의 아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혹시 이게 정신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었다. 아프다 생각하면 정말 아프게 되는 것처럼.
남편은 ‘그게 문제야. 엄마는 그냥 아픈 거고, 음식을 못 먹는데. 사람들은 계속 그녀가 꾀병을 부리는 것처럼 얘기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녀가 안 아픈 건 아니야.’
남편의 말이 맞았다. 나는 그녀의 상황을 내가 이해하는 대로 해석하고 그녀를 오해했다.
마담 마리는 아직도 나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프랑스 음식에는 간장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간장을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잡채를 하고 안동찜닭을 했을 때, 혹시라도 탈이 나서 아프다면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 얼마나 아플지 그녀는 알 수 없었기에 두려웠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속상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해한다. 그 대신에 나는 한국차를 그녀에게 선물한다.
애프터눈 티를 마실 때 친구들을 초대해서 한국차를 마시며 한국 며느리에 대해서 얘기하는 마담 마리.
마담 마리가 조금 더 건강하도록 야채를 먹었으면 좋겠다. 이건 오롯이 며느리의 바람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마담 마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나의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 그녀가 건강하길 바라는 만큼 그녀 마음이 편하길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