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거리가 편안한 관계가 된다
엘리스는 남편의 35년 지기 친구의 여자친구다.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너는 시어머니와 사이가 어때? 나는 마담 오드리와 가끔 마찰이 생겨. 그녀가 하는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거든."
사실 그녀는 남편의 절친과 결혼하지 않았다. 8년의 장기 연애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결혼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서 이런 질문을 들었을 때 조금은 의아했다.
시어머니도 아니고 남자친구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이야기할 줄이야.
"내가 불어를 못 하잖아. 그래서 우리의 대화를 길게 할 수 없어. 그것이 어쩌면 우리 관계가 좋은 이유일 수도 있어."
나는 불어를 배우려고 두 번 시도했었다. 어려운 문법이 나올 때쯤 늘 포기를 했었다.
포기라기보다는 내가 불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불어를 열심히 배우고는 싶지는 않았다.
프랑스로 이주가 확정되면 그때쯤에는 배워야지 혹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때 배워야 지. 그런 막연한 계획만 있을 뿐이었다.
프랑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손님 대접한다. 서로 지켜야 할 선을 지킨다. 그래도 시댁과 시어머니는 어려운 존재이다. 혹시라도 실수해서 책잡히고 싶지도 않았고, 나 때문에 한국 사람은 이렇구나 하는 선입견도 주고 싶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가깝게 지내는 것이 불편해서 불어를 안 배운 것도 있다. 시댁의 일에 감나라 배나라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모르는 것이 약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나와 시어머니가 불화가 없는 것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없고, 지키는 선이 분명해서가 아닐까?
한국에서 알던 며느리의 덕목을 프랑스 시어머니는 모른다. 그리고 나는 프랑스 며느리가 지켜야 할 덕목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남들의 기준에 어떻게 보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우리 시댁을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