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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디자이너 Apr 27. 2024

무한 긍정 프랑스 시어머니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마주했을 때, 그럴 때는 이렇게 해보자.


매주 토요일마다 남편은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한다.

팬다곰처럼 어머님 얼굴에 온통 멍이었다.

남편 -무슨 일이에요??

어머님 -오오호호홍홍홍홍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졌어.

한국며느리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어머님 -까올라(키우시는 고양이 이름)가 침대 밑에 있었는데, 나한테 깔려서 죽을 뻔했잖아 호호호호

또 웃으신다.

남편도 덩달아 웃으면서 농담을 한다.


어머님의 이런 무한 긍정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 상하이에 오셨는데, 집주소, 아들 핸드폰번호 아무것도 없이 오직 현금만 들고 쇼핑몰에 있는 슈퍼에 가셨다.

새로 이사한 집이었고, 집에서 슈퍼까지는 2km 거리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님이 왕복으로 걷기엔 무리가 있는 거리었다.

(어머님은 1km 거리도 걷기에는 무리가 있는 체력이다.)


그걸 모르시고 집 나서셨다. 슈퍼에서 햄을 사고 방향을 잃으셨다고 했다.

‘분명 앞으로 직진만 하면 됐는데, 왜 집이 안 보이는 거지?’ 집과 반대쪽으로 걷고 걷고 또 걸으셨다.

체력이 바닥나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 천사 같은 중국젊은이가 어머님께 말을 걸었다고 한다.

둘의 소통은 손과 발 그리고 약간의 영어 단어가 전부였다. 그 중국 젊은이가 택시를 타고 기사님께 천천히 달려 달라고 했다.

어머님 - 핑크 핑크!! (집 1층에 핑크색 간판이 있는 편의점이 있었다.)

영특한 중국 젊은이가 열심히 핑크색 상점을 찾아냈고, 어머님은 무사귀환으로 집에 오셨다.

어머님이 중국 젊은이를 만나곳은 집에서도 1km나 떨어진 곳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어머님은 오오호호호호홍홍홍 웃으시며 오늘 있던 일을 말하셨다.

휴… 이렇게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혹시 그 천사 같은 중국 젊은이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밖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프랑스영사관으로 연락이 갈까? 누가 어떻게 남편의 연락처를 찾아낼까?

해외 나가면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라는 철칙을 가진 나에게 어머님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본인도 이런 걸 예상하진 않으셨겠지. 어찌하다 보니 일이 이렇게 커진거다.

이런 상황을 늘 웃음과 유머로 넘기신다. 그녀의 아들은 당연히 농담으로 맞장구를 친다.

이렇게 손발이 맞는 모자지간도 없을 것이다. 이 둘을 보면서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내가 너무 진지한 걸까?’ 나를 돌아보았다.

프랑스 사장도 큰일이 생겼을 때, 더 크게 웃고,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 인생은 늘 계획하지 않거나 예상하지 않은 일들로 차고 넘친다.

나는 그럴 때만 다 인상을 쓰고 자신을 자책하면서 스스로를 아프게 했다.



프랑스 시어머니의 웃음소리를 생각해 보자.

오오호호홍홍홍홍

이미 지나간 일, 아파해봤자 나만 손해. 그냥 웃으면서 넘기는 것이 상책이다.



이렇게 70년을 넘게 사신 어머님은 어쩌면 진짜 부처가 아닐까?

아들에게 딸에게 며느리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으시고 본인이 감당해야 할 일을 조용히 감당해 내신 어머님.

처음엔 어머님의 그 무한긍정 웃음소리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웃음소리가 좋다.

나도 그렇게 웃으면서 나만이 감당해야 할 일들을 감당해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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