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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디자이너 May 24. 2024

용감했던 중국에서의 출산 이야기

엄마가 되다

임테기 두 줄을 보고 국제 병원과 국립 로컬 병원 둘 중 어디 병원을 가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나는 국립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내가 중국에서 살면서 병원은 늘 어려웠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도전의식이 생겼다.

내가 어려워하던 국립병원을 다니면서 그동안 못 한 것들 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집과 회사 그 중간에 있어서 다니기도 편했다.

그리고 비용. 국제병원은 출산할 때 2000만 원 가까운 출산비용이 들고 국립병원은 700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

출산비용으로 출산 후 산후조리에 더 투자하고 예전의 모습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다행히 국립병원에 다닐 수 있었다. (아주 초기 아니면 유명한 국립병원은 산모를 받아주지 않는다)


출산 전 1주일까지 출근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출산휴가를 더 길게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하이 출산휴가 158일. 100프로 월급 지급. 그리고 내 연차 20일 더해서 6개월 출산 휴가를 만들었다.

하루라도 아기와 같이 있어싶었다.

목요일 오전 미뤄둔 아기방 정리를 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엄마가 아기방도 꾸미지 않고.. 만삭의 몸으로 이제야 아기방 짐 정리를 이제야 하다나. 휴.

곧 태어날 아기는 우리와 방을 함께 쓸 거라는 핑계로 따로 아기방을 꾸미지는 않았다.

그날 저녁에 배가 땅기고 욱신거렸다. 


마지막 달에는 매주 금요일 오전에 진료를 봤다. 당시 코로나 시대였기에 출산을 앞둔 임산부와 남편 혹은 가족 중에 병원에 출입할 사람은 1주일에 한 번씩 꼭 PCR 검사를 해야 했다.

우리 부부는 매주 금요일 오전에 PCR 검사를 했다.

그런데 목요일 밤부터 배가 싸하게 아팠다. ’ 내일 오전에 진료를 보니 좀만 참아보자 ‘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 갔는데, ‘퓩~’ 아주 짧게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났다.

방귀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는데 매트리스가 젖을 정도로 물이 나왔다.

‘어 출산 수업에서는 양수는 거의 맨 마지막에 나오다고 했는데.’

그리고 초기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내일 오전 진료인데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나? 지금 병원 가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앱으로 진통 간격을 측정했는데, 당장 병원 가라는 말이 나왔다.

’엥?? 초기 진통에??‘

다시 진통 간격을 측정해 보니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왔다.

밤 12시 반에 택시 불러서 병원으로 고고.


그리고 마주한 코로나 출산의 현실

우리 부부의 PCR 검사 결과는 금요일 0시를 기준으로 만료가 되었다. 검사 결과지 없이는 병원에 출입할 수 없었다.

나는 응급실 복도 안쪽에 누워져 있었고, 남편은 응급실 문 앞에서 있어야 했다.

의사도 없고 바오안(경비 아저씨)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검사받고 결과 나올 때까지 남편을 내 옆에 있게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의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와서 병원 복도에 누워있는 나에게 내진을 했다. 

자궁문이 1cm 안 열이었으니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여기에 누워있으라고 했다.

진통은 5분마다 왔고, 중국 말을 하지 못하는 남편한테 누워서 통역을 했다.


병원 관계자-먼저 디포짓을 내세요.

나-지금이요?? 진통이 너무 심한데 일단 병실로 올라가면 안 되나요?

병원 관계자 - 검사 결과도 아직 안 나왔고, 디포짓 안내면 못 올라가요.

나-어디서 내요? 여보. 디포짓 내야 한데. 빨리 내고 와

남편-지금? 왜? 언제 병실 가냐고 물어봐. 어디서 내야 하는데??

병원 관계자- 여기 여기 여기

나-저기 중국 사람 따라가서 내고 와 ( 누워있어서 앞이 하나도 안 보였다. 카운터가 어디 있는지 내가 어찌 아누…)

남편-쩡, 근데 1만 위안(190만 원 정도)을 내라는데?

나-뭐! 그렇게 많이?

나-저기요 왜 이렇게 많이 내요??

병원 관계자-나중에 출산 비용은 디포짓에서 깎을 거야. 일단 1만 위안을 무조건 내야 해요.

나-그냥 내래.( 점점 통역이 짧아짐)


이렇게 병원 복도에서 진통 참으며 누워서 통역하면서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30분 뒤 VIP 방으로 옮겨졌다. 진통은 4분 간격으로 바뀌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짐볼도 하고 남편이 골반 마사지도 해주는 출산을 예상했는데, 현실은 자궁문이 하나도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4분 진통을 겪고 있었다.

중국은 출산할 때 의사, 산파 둘 다 들어오는데. 내가 다닌 병원은 산파가 출산을 주도했다. 아기 받는 것도 산파가 했다.

여기 병원은 자기가 누구인지 얘기도 해주지 않고 그냥 내진을 했다.


나의 인권이란 무엇인가?
나는 출산을 하는 동물인가 여자인가.


그 당시엔 당신이 누구인지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 무통 주사만을 기다릴 뿐…

오전 3시쯤 3분 진통이 시작된 것 같았다.

누군가 방으로 들어왔다.

나 - 무통주사 주세요!!!

산파- 내진 후, 자궁문이 아직 1cm도 안 열려서 안 돼요.

나-너무 아파요. 진통이 엄청 자주 와요

산파-얼마 나요?

나- 한 1분?

산파- 과장하지 마세요. 기다려요


누군가 들어왔다.

엄청난 종이를 주더니 읽어보고 사인하라 했다.

난 중국어를 잘 못 읽을뿐더러 3분 진통에 글을 읽는 건 불가능했다.

그냥 사인했다.

30분 뒤에 또 누군가가 들어왔다.

또 종이를 주면서 사인하라고 했다.

모든 것이 다 귀찮아서 그냥 사인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무슨 내용인지 물어봤다.

출산 중 응급상황에 관한 내용이었다.

남편에게 대충 통역해 주고 대충 사인했다.

(이 상황에서 통역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피곤이 두 배가 되었다.)


진통이 올 때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를 괴롭히던 상사 놈, 그때 그 프로젝트는 왜 어그러졌는지. 혼자서 욕하고 (마음속으로)

무통은 언제쯤,,,,


새벽 5시 반에 자궁문 2cm 조금 넘어서 드디어 무통 주사를 맞았다.

천국이었다. 아. 살겠다.

초반에 쉽게 열리지 않았던 자궁문이 무통주사를 맞고 척척 열리고 있었다.

아기가 나올 준비가 되었나 보다.

오전 8시부터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9시 55분에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다.

힘든 시간을 견디어준 우리 치치.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출산을 하고 난 뒤의 내 느낌은 엄청 힘든 프로젝트를 막 끝낸 기분. 힘들게 일한 시간을 넷플릭스로 보상받고 싶은 기분.

밤늦게까지 영화보다 늦잠을 자고 싶은 기분.

하지만 출산이 8시 야근이라면, 이제부터 시작되는 육아는 기약 없는 밤샘 작업이었다.

쉼이 뭔가요?


이렇게 엄마의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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