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면서도, 나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가능할까요?
아이가 36개월이 지나면서 크게 성장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예전만큼 나의 손이 가지도 않을뿐더러, 아이도 혼자서 하려는 것들이 많아졌다. 36개월을 기준으로 아이들이 유아에서 어린이로 진입하는 것 같았다. 이래서 36개월까지는 엄마가 돌보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이 말했던 것인가.
그래서인지 38개월 된 딸아이를 다 커버린 아이처럼 대했다. 정부지원금을 받아서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남편이 한국에서 일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프랑스에서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되어서 프랑스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해 보였다.
남편은 내가 한국에 남아서 정부지원금으로 내 브랜드를 만들기 바랐다. 나 역시 조금 욕심내서 정부 지원금을 받고 싶었다. 이대로 프랑스로 이주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그곳에서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었다. 아빠와 아이는 프랑스로, 나는 한국으로.
스터디 카페 회원권을 끊어서 사업계획서를 열심히 썼다. 그럼에도 보고 싶은 딸과 남편. 아이는 프랑스로 돌아간 뒤로 한국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 한번 부르고 끝이다. 마음이 아렸다. 한국말도 잘했고 아빠보다 엄마를 더 찾던 아이였는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정부지원 사업을 받아서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마음. 그리고 딸아이에게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
남편이 아이가 머리카락을 다시 뽑는다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내 가족 옆이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프랑스 비자를 신청했다.
사업계획서를 쓰는 시간만큼은 행복했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을 다시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
내가 원하는 일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설렘이 가슴을 뛰게 했다.
모순된 감정이 교차했지만, 꿈을 꿀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이면서도, 나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대륙을 건너 프랑스에서 제2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그곳에서 하나씩 이루어 나가련다. 나의 가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