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은 지금도 여전히 내 삶을 이끌어가는 나침반이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중학교 시절 어느 밤, 문득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와 안젤리나 졸리는 왜 다르게 생겼을까?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는 같은데, 왜 우리는 다르게 생겼을까?
달은 왜 하늘에 떠있을까? 왜 나와 함께할 수 없을까?
비 오는 날은 개미들에게 홍수가 일어난 걸까?
팩스는 어떻게 전선을 통해 그림과 글자를 전송할까? 팩스 기계 안에는 분명히 작은 인간들이 살면서 내가 팩스를 보내면 그 작은 인간들이 뚝딱뚝딱 그림을 그려 보내는 게 분명해.*
이런 혼자만의 생각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울타리 너머의 세상
20대에 접어들며 내가 살고 있는 이 울타리 너머의 세상은 어떨까 궁금했다. 대학교에 가서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휴학을 결심했다. 유럽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곳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사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디자인을 배우면서 '왜 유럽의 디자인은 멋진가? 우리는 왜 그들처럼 멋진 디자인이 없는가?' 알고 싶었다.
6개월의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혼자서 50일간의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곳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지, 그리고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받는지 등등 궁금한 것이 많았다. 우연히 스톡홀름에 있는 디자인 학교를 방문했는데, 학생들은 디자인과 순수미술의 경계 없이 배우고 있었다.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자유로움이 곳곳에 녹아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일본인 게이 오빠를 만났다. 말로만 듣던 게이. 그들은 왜 남자를 사랑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많은 질문들이 생겼다. 나의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50일이 너무도 짧았다.
경계를 넘어 상하이로
우연한 기회에 상하이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1년을 일하고 상하이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알아듣지 못했던 말들, 뉴욕처럼 다국적 사람들이 사는 도시.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이번엔 궁금함을 떠나서 내가 직접 살아보면서 경험하고 싶어졌다. 홀로 외국인이 되어서 타지에서 사는 삶. 모험 같은 삶. 한국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할 감정들, 경험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내 심장은 강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시작한 해외 생활이 결국 15년 동안 나를 상하이에 머물게 했다. 그 시간 동안 일도 하고, 사랑도 했으며, 결혼과 출산도 경험했다.
선으로 그린 감정들
실연의 아픔 속에서 어느 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슬픈가?' 아니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슬픔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몇 개의 단어를 써봤지만, 이것들로 내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려보기로 했다.
옆에 있던 종이와 펜을 들었다. 그리고 감정을 선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뒤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려보기로 했다. 그날의 감정들, 기억하고 싶은 날의 냄새, 그날의 특징들을 하나씩 내가 그리고 싶은 선으로 그려내었다. 검은색 선은 컬러로 바꿔보기도 하고, 감정에서 사물로, 사람에서 날씨로.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적당한 시기에 홍콩 회사를 만나 접시와 컵으로 변화했다.
다름을 사랑하는 삶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준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프랑스 남자와 함께 살아가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우리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호기심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내 삶을 이끌어가는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