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한 회사에서 처음으로 PM이라는 직무를 맡게 되었다.
설렘반 두근반
이번 글에서는 PM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으며 겪은 일들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내가 맡게 된 것은 프리랜서 기획자 2명의 손을 거쳐 개발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였다.
이미 개발이 진행 중이라기에 그저 순탄할 줄만 알았던 이 프로젝트는.. 나의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인수인계 단계에서 대표님이 그간 산출된 문서들을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설마하는 마음이었다..
'에이... 설마... 대표님 아이디어이고 대표님 말고 볼 사람도 없는데.. 이미 개발이 시작됐는데.. 설마...'
그런데 정말 보지 않았나 보다.
개발이 시작된 지 이미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대표님은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내가 오기 전까지 설계와 개발사 관리를 진행하던 분은 그간 서비스 방향성과 세부기능이 자주 바뀌고 정책이 확정되지 않아 그냥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디자이너는 최초 기획자가 만든 목업에 색만 입혀주었다고 한다. 메뉴 아이콘조차 누락되어 있었다.
개발사 PM은 개발 일정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이런 식으로 일정을 갑자기 쪼아대냐고 말했다. 담당자가 바뀌었고, 일정을 알아야 출시를 준비한다고 했더니 PM이 바뀐 것은 너희 회사 사정이라고 말했다.(내가 빨리 해 달랬냐고... 일정 물어본 게 뭐가 잘못인데 대체... 나중에 사과를 받긴 했지만 아직도 억울하다)
나중에는 농담인양 만들던 버튼을 삭제해 버리겠다는 협박을 해댔다. 어처구니없는 개발사의 대응에 화가 나 계약내용이라도 확인하고자 했으나 계약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과정이야 어쨌든, 설계가 잘못되었다면 고치면 되는 것이고 대표님이 원하는 게 이런 게 아니라면 바꾸면 된다. 디자인 요소 좀 부족하면 어떤가. 채우면 되는걸.
그게 내 일인데, 그게 뭐 별거라고
그런데 고쳐지고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개발사와의 소통.
지금까지 한 달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회사와 개발사 사이에서 소통을 담당하며
죄송하지도 않으면서 죄송해야 했고, 감사하지 않으면서 감사해야 했다.
내 기준에 너무나도 상식적인 것들이 상대에게도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사람 사이에서 치인다는 게 이런 걸까.
너무 서글프고 힘들어서 전부 놔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멘탈이 약한건가..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나.. 하고 혼자 땅굴을 파고 있을 무렵
회사의 이사님과 개발사의 이사님이 논의 후 결정된 일에 대해 개발사 PM에게 전달했더니
왜 통보를 하느냐며 열이 받는다며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 어????
그 순간 확신했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이 사람한테 난 무례하게 굴어도 되는 사람이 된거구나.
나의 직무는 다양한 관계부서와 협업하며 여러 사람을 상대해 야하만 하는 일이다.
일에서도 연애와 같이 밀고 당기며 적당한 스탠스를 유지해야 했다.
나의 경험 부족으로, 내가 사람을 잘 다루지 못해서 상대방한테 끌려다닌 꼴이었다.
여타 다른 아티클에서 PM 직무에 대한 다양한 경험담을 늘어놓고는 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어려움에 대한 글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는데,
뭐랄까.... 그들도 보여지는 글을 쓰기 위해 참 많은 부분을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걸 아닐까
구인공고에서 쉽게 접하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분'이라는 문구가
이렇게 어렵게 다가왔던 적이 없다.
제각각의 배경지식과 이해도를 가진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것. 이 과정에서 생기는 수많은 갈등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는 것. 그 와중에 그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정말 많은 내용들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분'이라는 단순한 문장에 담겨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협업을 위해 여러 사람들과 '잘' 지내고 일을 '잘'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말이다.
모든 과정이 아프고 서러웠지만,
아직도 개발을 진행 중이고 더 많은 이슈들이 생겨날 테지만,
그때마다 나는 더디게나마 이렇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게 업무의 방법이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든. 나의 부족함과 그 부족함을 채울 방법들을 꺠달아가며.
추가
진짜.. 이 세상의 모든 PM 님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들을 이겨내고 연차를 쌓아간다는 건 얼마나 많은 포용력과 이해심이 있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