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ille Sep 20. 2024

18. 쫓고 쫓기는 자

지진과 대자보 사건이 일어난 새벽으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학교는 점차 평온을 되찾아 가고 있다. 더 이상의 여진은 없었고 잔해들은 신속히 치워져 말끔해졌다. 물론 건물에 간 금들과 갈라진 분수대 등 그때의 흔적들은 남아있었지만, 학생들은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며 캠퍼스를 활기차게 오간다. 학교는 학생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다가온 축제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고, 캠퍼스는 각종 축제의 홍보물과 색색의 깃발들로 장식되기 시작했다. 반면 드문드문 흉흉한 소문도 들렸다. 누가 실종된 것 같다느니 어디서 누구 닮은 귀신을 봤다느니, 이전에도 늘 기담이 떠돌던 대학이었지만 그 빈도가 더 심해졌다. 대자보에 대한 이야기들도 돌고 있었지만, 학생 차림의 사복 경찰들이 캠퍼스 곳곳에 깔려있기 때문에 그 이슈를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야외극장은 공강인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짙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한가롭게 즐기고 있고, 야외 스피커에서는 점심방송으로 잔잔한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얼굴없는성자들'의 멤버인 인석, 송희, 연주, 경덕 네 사람은 그날 이후 처음으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야외극장 한쪽 구석에 모여 있다. 주변을 경계하며 네 사람은 띄엄띄엄 앉아 건성으로 책과 신문을 읽는 시늉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날 사라진 민주에 대한 걱정, 대자보 거사 이후의 썰렁한 학내 반응, 그리고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함으로 이들의 대화 분위기는 사뭇 무거웠다. 인석이가 한숨을 쉬며 말문을 이어갔다.



“결국 뭐 달라진 게 없잖아. 축제 분위기 봐라 이거.”


“승산은 없다고 했잖아.”


연주가 차분하게 받았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건 뭐… 총학은 아무 생각도 없냐 연주야?”


“전 학생회장 부회장 다 수배 떨어져서 잠수 탔고 지금 애들은 어용 총학이야. 돈벼락 맞고 축제 준비 좋다고 하고 있잖아. 서울서 가수들도 부른다더라.  참…”


“오 그럼 송골매 오나? 양희은도 왔음 좋겠다.”


경덕이가 점잖게 인석의 뒤통수를 때렸다. 연주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야 내가….”


“야 왜 때려! 군대 끌려가기 전에 연예인 한 번 보겠다는데. 송골매는 민주가… 근데 민주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잡혀간 거 아냐?”


“그러지 마 인석아. 무서워.”


송희가 울먹였다. 연주는 자기 얘기하기를 포기하고 송희를 토닥였다. 인석은 마른세수를 한다.


으~~. 느낌이 안 좋단 말야. 내가 그다음 날인가, 그 과 사무실 가서 그 나이 든 조교한테 물어봤거든. 김민주 학생 혹시 못 봤냐고. 지진 이후로 애가 없어졌다고…. 그랬더니, 그 조교가 눈썹을 요렇게 치뜨면서 민주랑 무슨 관계냐고 그러는 거야. 이게 말이 안 되잖아. 학생이 없어졌다는데, ‘아 그러냐? 어허 큰일이구나.’ 이렇게 말해야 정상 아니냐? 근데, 지가 형사야 뭐야. 민주랑 나랑 무슨 관계냐니?”


“그래서 조교샘도 모르신대?”


송희가 물었다.


“더 못 물어봤지. 느낌이 쌔해서 아 아닙니다 하고 나왔어.”


“내 잘못이야. 내가 민주랑 같이 갈 걸 그랬어.”


송희가 눈물을 글썽였다.


“민주는 우리 중에 제일 단단한 애야. 걱정하지 마.”


연주가 달랬다.


“그리고 인석아, 민주는 잡혀가지 않았어.”


“연주 네가 어떻게 알아?”


“송희랑 민주가 같은 방 쓰는데 아무 일 없었다잖아. 잡혔으면 당연히 얘들 방을 뒤졌겠지. 성민이 글을 찾아야 하니까.”


“맞아. 민주 책상이랑 소지품은 그날 새벽 나랑 나간 그대로야. 옷들도, 헝클어진 이불이랑 베개도, 묵주도… 그래서 더 불안해…”


송희가 훌쩍였다.


“그래 불안하다 불안해. 얘들아, 나 잡혀갈 거 같애.”


“다 똑같은 상황인데 대체 넌 왜 유난인데?”


연주가 쏘아붙였다.


“모르는 소리 마. 내 이름... 그 조교가 내 이름 묻길래 얼결에 말해 버렸다구. 게다가... 그날 대자보에 내 필적을 남겼거든. 지진 났을 때, 매직으로 ‘이 지진은 하늘의 경고다’ 이렇게 썼단 말야. 내가 미쳤지. 경덕아, 왜 나 안 말렸냐?”


“난 넘어진 자전거 세우고 있었지…”


“그랬구나… 요~ 인석이 멋진데?”


연주가 어깨를 토닥인다.


“야 이게 멋진 일이 전혀 아냐… 내 이름이랑 필적 대조하면... 후아... 실은 말야… 이틀 전에 나랑 경덕이가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려고 했거든? 난 잡히면 바로 군대 끌려가잖아. 너무 불안해서 일단 피해 있으려고 말야.”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송희가 섭섭해하자 연주가 덤덤하게 이어받았다.


“우리가 알면 누가 물었을 때 거짓말을 해야 하잖아. 잘했어. 근데?”


“아 그래서 그제 밤에 진입로 옆 샛길로 빠져나갔단 말야. 근데 안개가 너무 심해서 앞이 보이질 않는 거야. 그래도 술 마시러 나갈 때 늘 다니던 길이니까 이장님네 논길 건너서 삽살개 집 끼고 쭉 고갯길 올라가서 사거리 정류장까지 갔단 말야.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안 와. 막차를 놓쳤나 해서 그냥 읍내까지 한두 시간이니까 걸어보자 하고 둘이 걸었는데… ”


“근데?” 연주가 물었다.


“한참 걷다 보니까 우리 학교 문이 나오는 거야…”


“뭐? 길 잃고 다시 돌아온 거야 그럼?”


송희가 물었다.


“야 우리가 바보냐? 경덕이가 수색대 출신이야.”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데?”


연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경덕이가 툭 한 마디 끼어들었다.


“방향은 틀리지 않았어.”


“그래, 그게 뭐 복잡한 길이냐? 버스정류장에서 왼쪽으로 가면 읍내잖아. 오른쪽은 군부대고. 근데 왼쪽으로 두 시간을 걸었는데,… 떡하니 교문이 나오더란 말이야.”


“그래서 이유를 알아냈어?”


연주가 차분하게 물었다.


“이유는… 아마 경덕이가 알지 않을까? 위험하다고 날 끌고 학교로 돌아왔거든. 그치 경덕아?”


경덕이가 잠시 망설이다가 무겁게 입을 뗐다.


“비슷한 일이 있었어 군대에서. 비무장지대 매복 나갔다 돌아오는데, 갑자기 안개가 잔뜩 끼었어, 우리 학교처럼. 그래도 익숙한 길이니까 어쨌든 이동했는데, 아무리 가도 통문은 안 나오고 자꾸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거야. 사방은 깜깜하지, 주변은 온통 지뢰밭이지, 소대장도 답이 없는지 ‘정지. 기도비닉, 사주경계’ 이러더니 무전을 치는 거야.”


“기도비니, 사주… 뭐?” 송희가 물었다.


“이래서 여자도 교련을 받아야 한다니까. 기도로 빌면서 자기 사주팔자도 돌아봐라 이런 뜻이지 히히.”


“아우 엉터리.”


송희가 인석이를 쿡 찌르며 둘이 함께 킥킥거린다.


“얘들아 쫌. 경덕아 그래서?”


연주가 두 사람을 살짝 흘긴다.


“응… 그 말은 움직이지 말고, 소리 내지 말고 사면을 경계하라는 거지… 다들 몸을 낮추고 잔뜩 긴장해서 대기했고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어. 간간히 무전기 칙칙 거리는 소리만 들렸고. 근데 갑자기 제대 일주일 남은 선임 병장이 벌떡 일어나면서 ‘네, 소대장님!’ 하고 고함을 치더니 지뢰밭으로 막 달려가는 거야. 무전 치던 소대장도 우리도 멍하니 어어~ 바라보고 있는데… 안갯속에서 갑자기 펑!”


“지뢰 밟은 거야? 죽었다고?”


인석이가 놀라서 물었다.


“응, 허리 아래가 날아가 버렸어.”


“어머 끔찍해. 불쌍해라.”


송희의 반응에 경덕이가 고개를 저었다. 경덕이 답지 않게 차갑게 말했다.


“아냐, 나쁜 놈이야 그 자식…. 내 바로 밑에 후임이랑 보초서면서… 못할 짓을 했거든. 그것도 몇 번이나. 그 후임은 일병도 못 달고 결국 화장실에서… 아침에 걜 내가 발견했어.”


경덕이가 훅 던진 얘기에 모두 압도되어 침묵이 흘렀다. 인석은 말없이 경덕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줬다. 경덕이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걔가 부른 거지. 그놈을 데려가려고.”


연주가 냉정하게 경덕이의 말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그 나쁜 놈이 제대를 하기 직전에 아랫도리가 날아가서 죽었다. 그건 죽은 후임의 복수였다. 그리고 너희가 길을 잃은 것이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었고. 그럼 너희도 무슨 소리를 들었어?”


“아니 난 못 들었는데…?”


인석이가 경덕이를 쳐다봤다. 경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석이가 입을 떡 벌렸다.


“아이 무서워!”


송희가 연주를 껴안았다. 인석이는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야 무슨 소릴 들었다는 거야?”


“그게 느낌이 이상해서 이렇게 돌아보는데… 얘들아 걷자.”


경덕이는 고개를 돌리다가 말을 멈추고 친구들에게 눈짓을 했다. 경덕이가 가리키는 쪽을 돌아보자 좀 떨어진 위쪽 객석에서 어색한 사복 차림의 머리 짧은 사람 네댓 명이 이쪽을 주시하면서 서로 수군거리고 있다. 인석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야 저거 사복 아냐? 튀자.”


경덕이가 인석의 팔을 꽉 붙들었다.


“뛰지 마. 천천히…”


“그래, 우리가 아닐 수도 있어. 일단 자연스럽게…”


연주가 가방을 챙겨 일어나며 천연덕스럽게 송희와 팔짱을 꼈다. 이들은 사복들과 거리를 두며 아래쪽 야외무대로 향했다. 그들은 계속 네 사람을 주시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인석이가 뒤를 흘깃 보고 다급하게 속삭였다.


“야 저것들도 일어섰다. 경덕아 어쩌냐.”


“잘 들어. 내가 신호하면 무대 뒤쪽 창고 있지. 그 옆에 부서진 담장 넘으면 정문 쪽 샛길 나와. 그리로 뛰는 거야. 알았지? 하나, 둘…”


“경덕아, 저놈들 온다!”


인석이가 파랗게 질려 외쳤다. 사복들은 의도를 파악한 듯 그들을 향해 곧장 달려오기 시작했다.


“인석아!”


경덕이는 인석에게 부탁한다는 눈짓을 하고 사복들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인석이가 송희와 연주를 잡아끌며 다급하게 외쳤다.


“얘들아 뛰어!”


세 사람은 돌아서서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연주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경덕이가 사복들을 막아서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연주는 멈춰 섰다. 사복들의 발길질에 비틀거리면서도 경덕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인석이와 송희가 멈춰 선 연주를 재촉했다.


“뭐 해! 빨리...”


“… 니들은 가라.”


“연주야!”


“괜찮아. 가.”


연주는 주먹을 꼭 쥐고 경덕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송희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인석을 보고 말했다.


“인석아, 민주를 꼭 찾아줘. 연주야, 같이 가.”


송희가 연주에게로 달려가서 둘이 나란히 걸었다. 사복들은 바닥에 쓰러진 경덕이의 머리채를 잡고 손을 뒤로 꺾고 있었다. 돌아오는 연주와 송희를 보고 이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킬킬거렸다. 그중 하나는 개를 부르는 주인처럼 휘파람을 불며 거만하게 손짓을 했다. 송희와 연주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주춤거리며 그들에게 걸어갔다. 송희가 나지막하게 기도를 드렸다.


“주님, 악으로부터 저희를 구하여 주옵소서.”


“빨리 뛰어와 이년들아!”


손짓하던 사복의 거친 고함 소리에 두 사람은 움찔했다. 경덕이는 머리가 땅에 짓이겨지고 입술이 터진 채 둘을 향해 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사복 하나가 경덕이의 머리를 걷어찼다. 순간 연주와 송희 뒤에서 엄청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 개새끼들아!”


인석이가 무서운 속도로 두 사람을 지나쳐 점프를 하며 사복들의 한복판에 몸을 던졌다. 송희와 연주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온 힘을 다해 와악 소리를 지르며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가방을 던지며 달려들었다.


점심 방송의 마지막 곡 “What a Feeling”이 신나게 흐르는 가운데, 무대에서는 쫓고 쫓기는 자들의 필사적인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야외극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책을 읽거나 수업 시간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에 자리를 뜨기도 하고,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말없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들을 돕다간 자기들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일상화된 자기 검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싸움은 싱겁게 끝나고 네 사람은 머리와 팔이 꺾인 채로 사복들에게 끌려나갔다. 환호도 갈채도 없이 막을 내린 텅 빈 무대에는 핏자국, 그리고 여자 구두 한 짝만 뒹굴고 있었다.

누군가 그 외롭게 버려진 구두를 집어 들었다. 그의 손은 손가락이 없고 마치 털 없는 코끼리 코 같은 뭉툭한 살덩이였다. 그의 머리는 허리춤에 내려와 있었고 두 팔은 등과 목에 붙어있었다. 피카소의 그림 “아크로뱃”을 연상케 하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맨 몸이었다. 허연 살을 덮고 있는 검은 허물 같은 것들이 옷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그 구두를 코 앞에 대고 들여다보다가 자기 입 속에 쑤셔 넣었다. 멀리서 학우들이 끌려가던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던 학생 하나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저기요. 남의 걸 왜 가져가십니까? 그냥 두시죠? 이 봐요… 악!”


제지하던 학생은 입에서 뱉어낸 구두에 세게 얻어맞아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뒹굴었다. 얼굴은 구두에 묻은 끈끈한 액체로 범벅이 되었다. 정체불명의 아크로뱃은 기괴한 동작으로 재주를 넘으며 쓰러진 학생을 덮쳤다.


“허억~”


아크로뱃의 머리가 뱀의 아가리처럼 활짝 열려 학생을 순식간에 통째로 삼켰다. 먹이를 삼킨 뱀처럼 가운데가 불룩해진 아크로뱃은 다리를 말편자 모양으로 벌리고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소화 운동을 하듯 몸을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그의 몸과 옷차림은 자신이 삼킨 학생의 모습으로 변해갔고 머리와 팔다리는 제 자리를 찾아갔다. 변신을 마치자 휙 몸을 일으키고는 그 학생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그냥… 두시죠? 저기… 긱킥킥!”


축음기 소리처럼 찌그러진 소리는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 뻥 뚫린 검은 구멍에서 울려 나오고 있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뚫려 있는 두 개의 공허한 구멍으로 두리번거리며 아크로뱃은 구두를 다시 집어 들었다. 구두의 냄새를 킁킁 맡고는 인석이 일행이 끌려간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고 기울어진 몸으로 재주를 구르며 뒤를  쫓는다.




같은 시각 정경대 앞….


“아니 저것들은 강의실 들어가서 동향 파악 하랬더니 뭔 짓거리야 저게…”


최상경은 애인에게 보낼 편지를 적던 학생 수첩과 펜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정경대 계단을 내려갔다. 길 건너 잔디밭에서는 수양버들 나무 아래에서 최상경과 똑같은 청바지와 재킷 차림을 하고 학생 수첩을 뒷주머니에 나란히 꽂은 세명의 사복 경찰들이 말뚝박기를 하고 있었다.


“야 새끼들아. 수첩 꽂고 이 지랄하고 있으면 누가 니들이 대학생인걸 믿어준다냐? 차라리 짤짤이를 해라 새끼들아. 야 박이경, 노일경 안 일어나? 이 새끼들이 좋아~!”


태권도 4단인 그는 전력질주를 해서 앞사람 엉덩이에 머리를 박고 있는 세 사람 위로 있는 힘껏 점프해서 주먹과 무릎으로 가격했다. 세 사람은 균형을 잃고 모두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하핫 짜부다 새끼들아! 너네 오늘 귀대하면 진압복에 방독면 쓰고 집합이야 새끼들아!”


그는 바닥에 처박혀 꿈틀대고 있는 후임들의 목덜미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야 대답 안 해?”


“대답… 안 해?”


고개를 든 그들의 얼굴을 본 최상경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악!!”




나두일 교수는 처장실에서 전화 통화를 하며 창문 밖을 내다본다. 학교는 축제 준비로 만국기가 걸려있고 여기저기 화려한 포스터가 붙어있다. 학생들은 지진의 충격도 다 잊은 듯 가을의 흥취를 만끽하며 활기차게 캠퍼스를 오간다. 길 건너 잔디밭에서 유난스럽게 말뚝박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나교수의 시선을 다.


“그렇지. 우리가 다 잡았다니까. 아니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글쎄, 곧 끝나게 돼있어. 야, 왜 이래 진짜? 너네가 사복 풀어놔 봐야 걔들이 뭐 했는데? 짤짤이나 하고 여학생 희롱이나 하고 말야. 글쎄, 이번엔 진짜 일망타진할 거니까 지원이나 확실하게…. 나 못 믿어? 그럼 니들이 칠성판 갖고 내려와서 다 족쳐보던가 씨바!”


그는 전화를 쾅 끊어버리고 씩씩댄다.


“이것들이 누구 나와바리를 감히…”


잔디밭에서 말뚝박기를 하던 학생들은 이제는 땅 위를 기고, 구른다. 한 명이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다른 셋은 그의 다리와 몸통과 머리를 누르며 위에서 그를 덮치고 있다.


“누가 지잡대 아니랄까 봐 지랄도 풍년이다 쯧. 에이, 총장 자리 안 주면 빨리 떠야지 내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피교수가 들어선다. 나교수는 배꼽을 긁으며 거만하게 회전의자에 앉아 기선을 제압했다.


“여~ 이게 누구신가. 우리 후배님 어디서 뭘 하다가 일주일 만에 나타난 거야? 지키라는 집은 안 지키고 밖으로 도는 발정 난 개새끼처럼 말이야 하핫!”


피교수는 말없이 나교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옆구리에 끼고 있던 두툼한 노란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오~ 밥값을 하긴 한 거야?”


잔디밭에서 말뚝박기를 하던 세 사람은 어느새 몸을 일으켜 갈지자로 재주를 넘으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