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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lle Sep 19. 2024

17. 아이린의 목소리

침대 밑으로 가라앉은 민주의 몸은 침대와 바닥을 투과하여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계속 내려갔다. 관 속으로 끌려들어 갈 것 같은 공포감에 처음에는 온몸에 힘을 주고 저항했으나, 자신의 몸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운 자세 그대로 천천히 하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인가 자신을 조심스럽게 안아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고 몸에 힘을 풀었다.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몸이 싸움을 멈추자 서서히 물과 하나가 되어 조용히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의 긴장을 풀자, 마음의 긴장도 풀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래, 죽음이 이런 것이겠지 싶었다. 사람들은 죽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몸부림치지만, 정작 우리의 영혼은 이렇게 우리가 온 흙으로, 본연의 어둠으로 조용히 내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니 어둠 속에 부유하고 있는 자신이 마치 저 높은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았고, 이 어둠의 바다 밑바닥에 닿으면 그 심연의 끝에서 새로운 빛의 세계가 열릴 것만 같았다. 내가 정말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풀잎 끝에 맺혀진 이슬방울 같이 이 세상의 모든 것 덧없이 지나네…”


민주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것은 아이린 언니가 즐겨 부르던 성가였다! 아니 아이린 언니의 목소리였다! 민주의 온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캄캄한 어둠을 향해 마음속으로 필사적으로 외쳤다.


“언니!? 아이린 언니! 언니!!”


노랫소리가 끊어졌다. 잠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목소리가 흘러왔다.


“민주… 민주?”


“언니! 나 여깄어 아이린 언니!”


“아 찾았다…”


“언니! 나 죽은 거야? 그래서 날 만나러 온 거야?”


“아니, 죽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이린 언니가 아니에요. 혜린이에요.


“… 뭐?언니 목소리 맞잖아? 언니잖아!?”


민주씨를 찾기 위해서… 아이린… 그 사람의 기억으로 부른 거예요…”


당신이 아이린 언니를 어떻게 알아요?”


“키쿠… 당신이 키쿠와 닿았고, 나와 연결되었어요.”


“키쿠라니? 무슨 말이에요 그게?”


“간호대 계단에서 붙들렸던… 그… 그래서… 닿았…을 찾아줘요…”


바람이 웅웅대며 잡음이 섞이고 목소리는 끊기기 시작했다. 민주는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린이 아니라고 했지만 민주는 그 목소리를 남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언니야! 언니 맞잖아.”


 제발… 시간이 없… 파멸이… 그전에 꼭 찾아…”


“파멸? 뭘 찾으라는 거야 언니?”


피교수님 찾아달라고…”


피교수님을 찾아요? 교수님도 사라지셨는데?


"꼭 파멸을 막아야 찾아"


"언니는 어디 있는데?"


“… 내 책… 그 계단 밑…”


“책? 무슨 책?”


목소리를 방해하던 바람은 키키키키 나직이 웃는 것 같은 소리로 변하며 점점 커졌다. 짙은 어둠 보다 더 시커먼 구렁이 같은 것이 저 밑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발각됐어… 키쿠가 오고 있어. 꼭 기억… 그 책… 그리고 열쇠는 살바치오, 살바치오. 가요!”


“살바치오? 언니, 가지 마!


키키키키~~~ 쿠쿠쿠쿠 ~~~


저 시커먼 덩어리를 왜 키쿠라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멀리서 웃는 것처럼 들렸던 소리가 이제는 찢어지는 괴성처럼 사방을 에워쌌다. 기분 나쁜 끈적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구렁이 같은 검은 돌풍이 민주를 덮치려 할 때, 갑자기 그의 몸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급히 미끄러져 피하며 내달렸다. 민주는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위아래로 미친 듯 질주하는 엄청난 속도를 견뎌냈다. 쿠쿠쿠쿠. 검은 돌풍은  몇 번이나 교차하여 민주를  삼키려다가 점차 거리가 벌어지며 멀어져 갔다. 

갑자기 속도가 멈추고 침대 밑으로 빠져들 때의 느낌으로 이번에는 그의 몸이 붕 떠올랐다. 눈앞이 밝아지며 익숙한 문과대 복도와 피교수의 방문이 보였다. 민주는 방문을 향해 팔을 열심히 휘저었지만 거리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터널 끝처럼 보이는 둥그런 눈앞의 광경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복도를 빠르게 걸어오는 민주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방문을 노크하자 곧 문이 열렸다. 맹조교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자신이 나누는 대화가 먹먹하게 들렸다,


“어 너 여긴 또 웬일이야?... 야 정신 차려!”


“아… 피교수님 안 계신가요?”


민주는 어떻게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이 영화처럼 눈앞에서 펼쳐질 수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공중에 부유하던 그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서 중심을 잡기 위해 손을 크게 휘저었다. 몸이 한 바퀴 돌며 눈앞의 광경이 바뀌었다. 피교수의 수업 시간이었다.

할로우맨을 강의하던 날 같았다. 민주와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그들의 등과 머리, 책상과 벽과 바닥 사방을 기어 다니고 있는 늘어진 손들이 보였다. 일렁이는 창을 통해 보는 그 손들은 마치 물결에 흔들리는 해초들처럼 보였다. 민주는 놀라 다시 책장을 넘기듯 손을 휘저었다. 이번에는 아이린 언니와 자신이 바닷가를 산책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맨발로 뛰놀며 예쁜 조개를 줍고 있었다. 바닷물과 모래에 반짝거리는 언니의 다리가 그날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눈물을 닦으며 다시 손을 휘저어 몸을 한 바퀴 돌려 균형을 잡았다.


눈앞의 장면은 저녁노을이 물든 야외극장이었고 피교수가 누군가와 앉아있었다. 민주는 피교수가 홀로 극장 계단에 앉아있는 모습은 몇 번 봤지만 누구와 함께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손을 휘젓자 시점이 등 위에서 정면으로 서서히 돌아가고 마침내 피교수와 그 옆에 있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여자는 두꺼운 책을 앞에 놓고 있었고 시선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피교수는 그 여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슬프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저 여자가 혜린이고 피교수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저 책이…. 민주가 손을 뻗는 순간 혜린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래로 만든 형상이 파도에 씻겨 내려가듯이 손끝 발끝 머리끝부터 해체되기 시작했다. 피교수의 모습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민주는 다급하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기다려! 내가 뭘 해야 하는데? 가지 마!”


민주는 마음이 급해져서 책장을 마구 넘기듯 손을 급하게 휘저었다. 장면이 바뀌어 지난밤 분수대에서 친구들과 헤어지던 순간, 새벽길을 달리던 송희와 자신, 대자보를 붙이는 경덕과 인석의 모습, 네 친구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어디론가 달아나고 있는 광경이 마구 넘어가고 민주의 몸은 갑자기 붕 떠올라 광장 위 상공에서 갈라진 분수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 갈라진 틈에서 쿠웅하는 굉음과 함께 시커먼 촉수들이 용암처럼 뿜어져 나왔다. 민주는 반사적으로 뒤로 공중제비를 넘었다. 눈앞의 광경이 마구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끊어진 연이 바람에 날리듯 민주는 몸의 중심을 잃고 팽글팽글 돌고 있었다. 민주는 너무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도깨비불 같은 것들이 어둠 속에서 민주 주변을 어지럽게 일렁였다. 순간 피교수의 강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기억할 때, 우리는 인간이다. 손을 잡아라… 꼭 잡아라….”


민주는 절망적으로 두 손을 뻗었다. 순간 누군가 자신의 팔목을 잡아채는 바람에 민주는 눈을 떴다. 피교수였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그는 아파트 베란다 난간 너머로 자신의 팔목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다.


“잡아! 여보, 꼭 잡아!”


여보?민주는 그의 팔에 붙들려 까마득한 허공에 매달려 있다. 피교수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안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는 한 손으로 아파트 베란다 난간을  버티고, 다른 손으로 자신의 피 흐르는 팔목을 꼭 붙들고 있다. 빗물로 범벅이 된 머리와 얼굴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목에는 핏줄이 곤두서있다. 민주는 자신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매달려 있는 것은 그의 몸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자기 안에 빙의한 듯했다. 가슴속에서 온갖 억울함과 원망이 소용돌이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피교수의 눈과, 필사적으로 외치는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불에 덴 듯한 아픔몰려온다…. 그만이제 그만.


민주는 떨리는 입술을 꼭 물었다. 눈물 때문인지 빗물 때문인지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민주의 필사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마디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만….”

민주는 그의 팔목을 잡았던 손을 풀고 몸을 축 늘어뜨린 채로 비에 젖은 헝겊 인형처럼 피교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올려다본다. 


미소.


물에 젖어 미끄러운 손목은 피교수의 손아귀에서 스르륵 빠져나간다. 피교수의 절망 어린 얼굴이 훅 멀어진다. 민주는 헉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땅으로 내려 꽂혔다. 퍽 하는 소리가 울렸다. 따뜻하고 끈끈한 액체가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고, 바닥에서 차가운 냉기가 올라왔다. 모여든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들은 자신의 시신을 둘러싸고 빈정거리며 발로 툭툭 건드리는 것만 같았다.


“죽었어? 움직여?” “끔찍해라…” “왜 하필 우리 아파트에서...” “자살 맞아?“살인자!”


“니들이… 니들이… 뭘… 알아!...”


민주는 일어나 보려고 마지막 온 힘을 다해 손을 뻗었지만 그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 손 끝에 뭔가 닿았다. 민주는 그것을 꼭 움켜잡았다. 그 순간 주변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 같았고 분노에 찬 웅성거림이 들렸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지?” “그 더러운 손 치워.” “그냥 죽 키키키!”


아우성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으로 바뀌고 축축한 손 같은 것들이 민주가 붙들고 있는 것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품에 끌어안고 악착같이 버텼다. 그러자 그 축축한 것들은 뱀처럼 민주의 몸을 휘감고 조여왔다. 죽음처럼 싸늘한 속삭임이 몸을 파고들었다. 키키키키 쿠쿠쿠쿠…


민주는 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깊은 잠에 빠져들 듯 모든 것이 아득히 멀어지기 시작할 때 큰 포효가 들렸다. 자신을 옥죄고 있던 것들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눈을 간신히 떠보니, 개처럼 보이는 짐승이 이빨을 드러내고 바로 앞에서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눈에서는 푸른 불길이 뿜어져 나왔고 갈기를 곤두세운 그 개의 주변을 그림자 같기도 하고 검은 촉수 같기도 한 괴물체들이 둘러싸고 있다. 개는 이쪽으로 뻗어오는 촉수들을 발로 내리치고 물어뜯었지만 그것들은 안개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공격해 왔다. 마침내 촉수들이 개를 휘감고 그를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개는 몸에서 푸른 연기가 나며 고통스럽게 짖어댔다. 아 이제 틀렸구나 하며 민주의 눈도 감기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소리를 지르며 횃불을 마구 휘저었다.


"동동아!"


불이 닿자 촉수들이 일시적으로 움츠러들어 수증기처럼 흩어지고 개는 다시 땅을 밟았다. 촉수 중 하나가 횃불을 쳐서 떨어뜨리고 그 사람을 덮치려는 순간, 개의 몸에서 희미한 팔들이 일시에 사방으로 뻗어 나와 검은 촉수들을 후려쳤다. 검푸른 불꽃이 일며 팔들과 촉수들은 조각조각이 나서 공중과 바닥으로 흩어지며 소멸되었다. 여기저기서 푸른 불꽃들이 터지며 촉수들을 압도하자 그것들은 검은 연기로 풀어져 바닥의 틈새스멀스멀 사라졌다. 횃불을 들었던 사람이 다가왔다. 누굴까?... 인디아나 존스?... 민주는 눈이 자꾸 감겼다. 너무 힘들어 잠들고 싶었다. 이대로 잠들었다 깨어나면 송희가 자기 손을 잡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왜 있어? 당신이 여기 왜?...”


민주는 눈을 떴다. 누군가의 얼굴이 눈앞에 일렁였다. 초점을 맞추려고 얼굴을 찡그렸다. 피교수가 눈앞에 보였다. 그는 민주의 어깨를 붙들고 있었다. 피교수의 얼굴에 민주가 봤던 베란다에서의 그 절망 어린 표정이 겹쳐 보였다.


“교수님…! 저예요!”


“민주너 정말 민주… 맞니?”


“바보… 교수님 바보… 얼마나… 막 찾고 그랬는데….”


이럴  수가…. 네가 어떻게….


일그러졌던 피교수의 표정은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래, 그래 괜찮다. 이제 괜찮아.”


민주는 자신도 설명하기 힘든 서러움이 북받쳐 피교수에게 와락 안겨 눈물을 터뜨렸다. 피교수는 놀란 표정으로, 그러나 충혈된 눈으로 아무 말없이 민주의 울음을 받아주었다. 상처를 핥던 동동이가 다가와 조용히 꼬리를 흔들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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