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에 앉아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 속대화에 푹 빠진 채 고개를 한 번씩 돌려 베란다를 바라봤다. 무언가가 휙 하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새가 날아가나. 가끔 새들이 날아가는 게 창문으로 보였으니까 대수롭지 않았다. 한참을 더 이야기하다가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본 것은 베란다 바닥에서 유유히 아주 즐겁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퀴벌레
주택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바퀴벌레를 자주 봤다. 바퀴벌레가 나오면 그저 "바퀴벌레!!" 하면 엄마, 아빠가 해결했다. 싫기는 했지만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거의 30년 만에 다시 만난 그놈은 더 강해진 것 같다. 베란다를 제 집인 마냥 내 슬리퍼 주위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구경하는 그놈. 환한 대낮에 햇빛이라고 쬐려는지 아주 태평하게 산책하던 그놈. 이제는 내가 저 바퀴벌레를 처리해야 한다.
나는 울면서 옆 동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절망이었다. 어떻게 바퀴벌레가... 그것도 보통 크기가 아니었다. 베란다가 닫혀있어서 다행이지 열어두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없을 때 온 집을 돌아나녔을까... 돌아나녔겠지...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언니가 조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고무장갑으로 무장을 하고 조카가 처리했다.
30년 만에 다시 만난 그놈은 내 상황을 일깨워주고 각성시켰다. 이런 일이 생기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놈이 나타나지 않을 집에서 살아야겠다. 이런 일이 생겨도 처리해 주는 곳에서 살아야겠다. 그래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불려야겠다. 나를 각성시킨 30년 만에 다시 만난 그놈. 고... 맙...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