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 아티스트로 일하는 김소영씨는 귀가 시간이 늦다. 그녀는 주로 6호선을 타고 퇴근을 하는데, 매번 막차를 타기 일쑤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제일 구석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맞은편 남자가 좀 이상하다. 자꾸 눈치를 본다.
여자의 본능이 그녀에게 위험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남자는 '그곳'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그 남자는 얼마 안가 붙잡혔다. 남자의 이름은 이영호. 주로 6호선에 탄 여성들을 상대로 그곳을 보여주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가 의식을 치른지 한 다섯차례 정도 되었을때, 잠복하고 있던 철도경찰들은 현장을 덮쳤다.
놀랍게도 그는 형사처벌 전력이 전무했다. 그래서 경찰한테 미란다원칙을 고지받자마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렇게 범죄자가 되는걸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한숨을 푹푹 내쉬는 철도경찰들 앞에서 감히 변호사를 부르겠다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이영호씨. 지난주에도 지하철에 타서 여성한테 보여줄 목적으로 성기를 꺼내고 흔들었죠?"
"네? 아뇨 저는 보여...보여주기만 했어요"
그는 억울했다. 모르는 여성들에게 그곳을 보여주는 변태적 취향이 있기는 했지만 '흔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성기를 보여주고 지하철에서 내리기도 바빠 죽겠는데 흔들 여유가 어딨냐고 경찰들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죽어도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공소사실엔 ‘지하철에서 성기를 꺼내어 흔들었음’이 추가됐다. 죄질은 더 나빠졌다.
그는 공소제기가 된 다음에야 사무실을 찾았다. 반드시 벌금 100만 원 미만을 받아야 된다며 미팅룸에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들었을때, 직감했다. 아. 이사람 공무원이거나 아니면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사람이구나.
그는 성범죄 관련으로 벌금형(100만 원 이상)을 받을 경우 당연 퇴출되는 공직자였다.
"선생님. 제가 최대한 노력해보겠지만 장담할 수가 없어요. 다섯 차례나 범행을 했다고 시인하셨고, 공소사실에 적힌 범행들을 봤을때 죄질이 매우 좋지 않아요."
"어떻게 안될까요? 변호사님 제발 도와주세요"
그는 연신 제발 도와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전전긍긍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변호인으로서 짠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경우가 제일 싱숭생숭한 마음이 든다. 소위 말하는 '애매하게 나쁜놈들'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하다보면 진짜로 나쁜놈들은 많이 없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자신이 왜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이코패스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뉴스에 나오는 것이다.
변호인으로서 최대한 노력해보겠지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벌금 100만 원은 매우 경한 수준의 범행을 저질렀을때나 나오는 형량이다. 우선 해볼 수 있는건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양형 자료들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그가 절박한 심정으로 작성한 반성문, 각종 진단서와 가족사진, 친구들의 탄원서 등이 법원에 제출됐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가족들의 탄원서'는 제출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다른 피고인들과 성범죄 피고인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마약을 했든, 사기를 쳤든, 피고인들은 결국 자신의 가족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범죄만큼은 다르다. 피고인들은 자신의 치부를 가족에게도 밝히지 못한다.
아들 둘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인 이영호씨. 그가 어떻게 아내에게 '나 여자들한테 그곳을 보여주고 다녔어. 성범죄로 기소당했어'라는 말을 꺼낼 수 있겠는가. 그가 피해자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안길때, 자신이 나중에 진짜 수치심을 느끼게 되리란 걸 생각치 못했던 것이었다.
가족들의 탄원서를 쏙 빼놓은채, 제출 할 수 있는 모든 양형자료를 제출했지만 그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어느날 내가 남자친구에게 장난으로 '내가 사람을 죽여도 변호해줄거냐'라고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남자친구는 '당연히 변호해야지'라고 가볍게 답변하고는, '넌 내가 강간으로 고소당해도 믿고 변호해줄거야?'라고 되물었다.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만약 피해자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를 변호해줄 수 있을까. 어려웠다. 우물쭈물하다가 '오빠가 억울하게 고소당한거면 끝까지 믿고 변호해줄게'라고 대답했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없었다. 억울하게 고소당한걸 알지라도, 내가 과연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상도 하기 싫었다.
유독 다른 의뢰인들보다 그가 내게 '제발 도와달라'는 말을 자주 했던 이유를 알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얘기할 수도 없으니 기댈 곳이라곤 자신의 변호인 밖에 없었으리라. 사실 벌금 100만 원 미만으로 선고를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도 절 위해서 애써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선고 이후, 이영호씨가 어떻게 됐는지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일에는 감사 인사가 적혀있었다. 그동안 묵묵히 변호인으로서 옆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뜻이겠지 싶었다. 이제 그는는 더욱 깊은 절망 속으로 빠질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을 느끼며, 매일 매일 수치심을 느끼며. 나는 그가 뼈저리게 느낀 만큼 다시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