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기록으로 만난다
로스쿨을 다닐때 난 검찰실무 과목을 매우 좋아했었다. '기록'을 보고 해당 피의자의 죄명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과목이었는데, 지루하고 따분한 교과서보다는 기록을 읽는게 좀 더 재밌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 기록은 내가 실제로 수행했던 사건입니다"
교수님은(검찰실무는 검사로 재직중인 분들이 오셔서 강의를 한다) 기록을 해설하며 자신이 몇년전 수행했던 사건을 문제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범죄 사건이었는데, 피해자의 신체 부위 등이 모자이크처리된 된 채 기록에 실려있었다. 그전 까지는 아무런 생각 없이 기록을 빨리 읽어 나가기에 급급했지만 그 사진과 교수님의 설명이 덧붙여지니 '기록'이 새롭게 보였다.
동시에 두려웠다. '내가 지금 읽는 이 기록에는 누군가의 인생이 담겨있구나'는 생각이 드니 내가 앞으로 할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단순히 법정에 출석하고 변론을 하는게 주된 업무가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내밀하게 살피는 직업을 가지게 될 것임을 그제서야 알게됐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실무에 나와 나는 더 많은 기록을 읽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알게 됐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변호사가 된 동기들 중엔 진절머리를 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까지 남의 인생을 자세히 알고 싶진 않았어!'라며 사건 하나하나에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사건을 하다보면 어쩔수 없이 의뢰인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이혼, 형사사건을 주로 하는 동기들은 더욱 힘들어 했다.
그런데 내가 힘듦을 느끼는 포인트는 조금 달랐다.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아서 문제였다. 변호사라면 무릇 의뢰인의 입장에 빙의해서 서면을 써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난 남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다소 떨어졌다. 의뢰인을 대변해서 서면을 쓰면서도 나는 '아니, 대체, 왜?' 이 세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서 생각을 좀 바꿔보기로 했다. 내가 읽는 이 법정기록들은 누군가의 인생을 딱딱한 문체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생각해보기로. 에세이를 써보고자 작정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내 입장에서 의뢰인들을 이해한 걸 글로 풀어내다보면 좀 더 진심어린 교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 기록이 쌓이다보면 난 더이상 '아니, 대체,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순수히 공감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