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약 사건을 수행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사무실에 마약 사건들이 우수수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 사람이 마약으로 잡히게 되면 주변 사람들까지 싹 조사를 받기 때문에 사건이 새끼를 친다고 한다.
'대체 마약은 왜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 나오는게 '요즘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는 소식인데, 나로서는 대체 마약을 왜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마약사범은 좀 특별하고도, 약간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대체 마약을 하는걸까.
심지어 그날 사무실로 찾아온 사람들은 커플이었다. 둘이서 함께 마약을 구매하다, 경찰의 수사망에 걸렸단다.
그런데 미팅룸 문을 열고 들어선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했다.
오규완씨는 35살의 회사원으로,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그의 예비 신부이자 현재 여자친구인 정나리씨도 작은 꽃가게를 하는 평범하디 평범한 여자였다.
"저희는 클럽에서 만나게 됐어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둘의 연애사가 술술 나온다.
그들은 음악, 영화, 운동 모든 취미가 다 달랐지만 딱 하나 같은 취미가 있다고 했다. 바로 음주가무.
정나리씨는 친구들과 함께 2주에 한번 꼴로 스트레스를 풀러 클럽에 가는것을 낙으로 삼고 살았고, 오규완씨는 격무에 시달릴때면 혼자서라도 클럽을 꼭 찾았다고 한다. 그렇게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자연스레 눈이 맞았다고.
그들 사이에 겹치는 친구들 역시 '클럽 지인'들이 많았다. 정나리씨는 오규완씨와 사귄지 3개월이 넘어가면서 부터 싸움이 잦아져 고민이 생겼고, 그 고민을 해외에서 오랫동안 살다온 클럽 지인 중 한명에게 털어놨었다.
그 지인은 커플 사이를 좋게해줄 '묘약'이 있다며 흰색 가루를 그녀에게 건넸다고 한다. 클럽 짬이 있던 그녀는 단번에 그 묘약이 필로폰임을 알았지만 내심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얼마나 기분이 좋길래?'
그리고 그 호기심은 두 사람을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들은 매번 관계를 가지기 전에 필로폰을 먹거나, 주사하고 관계를 가졌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용하는 필로폰의 용량도 올라갔고, 클럽지인이 공급해주는 약만으로는 부족해 직접 약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익명채팅방의 마약 판매자는 '절대 걸리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들은 그 판매자의 계좌를 역추적한 경찰에게 덜미를 잡혔다. 그리고 필로폰 공동구매 및 공동투약으로 입건됐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시큰둥했다. 별 감흥이 없었다. '마약에 손댄 사람들이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구나, 참 요즘은 마약을 구하기 쉽구나' 정도의 감상과 함께 '그래도 나였다면 마약 안했을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경찰 조사 때였다. 나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마약의 유혹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됐다.
"필로폰을 하니 기분이 어땠어요?"
이 질문은 수사상 절차적으로 묻는 질문에 가깝다. 그런데 정나리씨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필로폰을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등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찌나 성실히 답변하던지, 그녀는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앞에 필로폰이 있다면 주사기를 찔러넣을 것만 같았다.
"아이스를 하면요, 일단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몸이 좀 붕뜨는 느낌도 들고... 무엇보다도 행복해져요. 술이나 담배랑은 달라요.... 여튼..."
그녀는 '해보시면 알아요'라는 말을 덧붙이려고 하는 듯 했다. 변호인으로서 이런 태도의 진술은 불리하다는 생각에 그녀를 툭 건드렸다.
조사는 이어졌다. 내가 모르는 내용들도 계속 튀어나왔다. 소변 및 모발검사 결과 그녀는 필로폰만 한게 아니라 고루고루 약을 해온 사람이었다. 수사관과 그녀는 대마, 케타민, 엑스터시 등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다. 그럴때마다 정나리씨는 신이 난 듯이 대마는 어떤 느낌인지, 케타민은 왜 하다 말았는지 등을 읊었다.
처음은 그녀를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어느순간부터인가 그녀의 얘기를 홀린듯이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사가 끝난 뒤, 나는 인터넷에 '필로폰 느낌' 따위를 검색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깜짝 놀랐다.
방송에 나온 마약사범들은 다 하나같이 말했었다. '호기심'에 마약을 시작했었다고. 그 호기심이 무엇인지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인간의 본능이자 원초적인 호기심을 말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안해본 것을 경험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모임에 가서 친구들이 '골프 진짜 재밌지 않냐'며 골프 얘기로 꽃피우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그럼 자연스레 골프가 궁금해지고, 한 번 레슨을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마약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약에 손대기 시작하면 마치 골프, 테니스가 유행하듯 번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예전에 비해 SNS가 발달하면서 약을 구하기도 쉬워졌다. 그러니 예전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마약 사범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던 거다.
만약 지금보다 더 약을 구하기가 쉬워지고, 마약사범이 늘어난다면. '유난히 유혹에 취약한 사람들만 마약에 빠지는 걸꺼야' 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나는 그래도 절대 마약을 하지 않을거야' 라고 장담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커플의 변호를 맡은 이후로 오만한 생각을 접기로 했다.
나 역시도 평범한 인간이다. 한순간 잘못된 선택에 유혹에 이끌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리고 심연으로 빨려들어가지 않게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