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도 전세사기가 무섭다
작년에는 정말 전세사기 대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하루 건너 한 번씩 상담 전화가 왔었다. 하나같이 사람들은 '제가 전세사기를 당한 것 같아요'로 시작해서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전화가 있었는데, 바로 비가 엄청 많이 오던 6월쯤 울면서 걸려온 전화였다.
"제가 오늘까지 보증금을 입금받아야 하는데 집주인이랑 연락이 두절됐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기껏해야 30대 초반으로 들렸다. 사정없이 떨리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괜찮으세요?'라는 말이 먼저 나갔다.
"저 진짜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전화드렸어요.... 상담비 따로 있는 거죠?"
나는 개업한 변호사가 아니다. 쉽게 말해 '직원 변호사'라는 거다. 계약, 상담 등 모든 비용이 드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표 변호사에게 권한이 있다. (그리고 당시 재직하던 법인은 전화를 받은 변호사가 상담을 하는 게 아니라 대표 변호사가 직접 상담을 하는 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여자의 목소리가 너무 불안했다. 그녀의 훌쩍임에 나도 모르게 전화를 이어나갔다.
"우선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오늘 돌려받기로 한 보증금으로 다른 집에 잔금 넣기로 했어요. 근데 돈 주기로 한 집주인이 오늘 3시까진 꼭 넣어준다고 했는데 돈을 안 줘요. 이사하는 집에서는 언제 잔금 치를 거냐고 계속 보채고 있고요. 지금 길거리에서 짐이고 뭐고 오갈 데 없이 있는 신세예요...
저 전세사기 당한 거죠?"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지금 당장 이사 갈 집에 잔금을 넣을 수 없어서 해결이 안 된다는데, 변호사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나. 나는 최대한 현실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전세사기를 당하셨다고 해서 지금 당장 오늘 내로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우선 신용대출을 빌려서라도 이사 갈 집의 잔금을 치르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압박 수단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집주인에게 연락을 취해보는 방법도 있어요. 이건 대표변호사님께 한번 여쭤보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오늘 내로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르고, 나중에 그 대출이자도 손해로 잡고 집주인에게 배상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변호사를 바로 선임해서 압박용으로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보는 방법이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지금 대출이 나올 곳이 없는데'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이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 뒤로 그 여자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그녀는 한참을 통곡하다가 전화를 뚝 끊어버리고선, 다시는 우리 사무실에 전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 내가 결혼을 앞두고 집을 구하려다 보니 괜스레 그녀가 떠오른다.
나와 내 남자친구는 둘 다 변호사지만 전세사기가 무서워 빌라 입주를 꺼려하고 있다.
'여차하면 변호사니까 법으로 해결 보면 되는 것 아냐?'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우리는 변호사라서 너무 잘 안다. 전세사기를 당하면 얼마나 답이 없는지를.
판결로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2~3년 목돈이 묶이는 것은 물론이요, 전세금을 못 돌려줄 만큼 자금이 부족한 집주인이라면 집행으로 채권을 회수하는 건 하늘에 별따기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는 데는 이력이 난 우리조차도 전세사기 당할까 무서워 떠는 이 마당에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리고 작년에 내게 전화를 걸었던 그녀의 절박한 상황도 다시 한번 떠올랐다. 그녀는 과연 이사를 무사히 마쳤을까. 보증금을 돌려받기는 했을까... 돌려받지 못했다면? 소송을 통해 지금까지 해결하고 있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남자친구에게 카톡을 보낸다.
'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아. 우리 그냥 월셋집 알아보자.
날려도 크게 타격 없을 정도의 보증금만 걸고.'
그렇다. 변호사도 호환마마보다 전세사기가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