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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크레용 Sep 06. 2021

8. 전 재산 2억. 외벌이 남편을 퇴사시켰다.

8. 드디어 퇴사.

17년 근속 

남편의 회사는 29살에 입사해 45살에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17년을 근속해오던 직장이다. 남들처럼 대충대충 설렁설렁 일하는 방법을 모르는 남편이 말 그대로 청춘을 바친 회사였다. 

대학 졸업 직후 공무원 시험을 면접에서 떨어진 남편은 대기업 계약직에 머물러 있던 자신을 내내 한심해했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남편은 결국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 그리고 1년을 공무원 시험 준비에만 매달렸지만 당시 남편과 같은 충격에 휩싸인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다. 사상 초유의 인원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기라서 이번에도 남편은 성공하지 못했다. 남편의 자존감이 지하 100층까지 떨어졌다. 형제 중에 유일하게 대기업에 적을 올리지 못한 장남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상경하여 짧은 기간 동안 2,3곳의 중소기업을 떠돌았다. 한 곳은 월급을 고의로 몇 개월씩 미뤄 두는 곳이었고, 한 곳은 하루 12시간 이상 한 달에 29일을 근무를 시키면서도 수당 지급이 전혀 없던 곳이었다. 그렇게 헤매다 지금의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 직장이 만족스러웠다기보다는, 남들은 다들 잘만 다니는 직장을 본인만 견디지 못하는 게 아닌가 스스로 생각했던 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벌을 받는다는 심정으로 견디기로 했다.

야근과 주말 출근, 인격모독을 넘나드는 폭언들이 이어졌지만 3년 이상의 경력은 만들어 옮기겠다는 각오로 견뎠다. 견디다 보니 회사의 근무 여건은 점점 더 나아졌다.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었고, 시간 외 근무나 야근 수당까지 받을 수 있었다. 스스로 다짐한 3년이 지났지만 굳이 떠날 이유가 없었으므로 남편은 이곳에서 17년을 머물렀다. 


부당한 대우

회사는 20년이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눈부시게 성장했다. 사무실 하나로 출발했던 대표는 빌딩과 땅, 여러 채의 집을 사모았다. 그 사이 막내 사원으로 입사한 남편은 이사가 되어 회사의 이인자가 되었다. 남편의 회사는 입사할 때와는 정반대로 꿈의 직장이 되었다. 대기업처럼 호사스러운 사내 식당이나 30일 연차 까지는 아니더라도 따박 따박 월급에 성과급까지 나오며 정시 출근 정시 퇴근, 휴일까지 공무원급으로 보장되었다. 오죽하면 공무원이 되어 퇴사한 직원이 후회할 정도였으니... 이 회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남편뿐이었다. 회사의 늘어난 매출에는 남편의 기여도가 객관적으로도 눈에 보였다. 그러나 대표는 약속한 인센티브를 이런저런 핑계로 투명하게 나누지 않았다. 심지어 뻔뻔할 만큼 당당했다. 남편은 화가 났다. 그렇게 남편은 최소 3년은 아주 화가 난 상태로 근무를 했다.  

화가 난 상태로 회사생활을 하니 과중한 업무가 없는 상태에서도 과도한 피로를 느꼈다. 해병대 운전병 출신의 자랑스러운 타이틀에 걸맞게 운전을 아주 예술로 해오던 남편이었는데, 출근길 크고 작은 차사고가 연이어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화가 나 있는 지난 몇 년 동안 남편의 수입은 급속도로 늘어왔었다. 10년 동안 매년 2- 300만 원씩 오르던 연봉이 1000만 원 이상씩은 올랐다. 남편이 그렇게 꿈꾸던 연봉 1억이 되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남들이 보면 직장인의 배부른 투정처럼 보이는 남편의 불만을 나는 충분히 이해했다. 부당한 대우 때문이다. '부당하다'는 것은 법률적인 의미로 적당하지 않은 것, 타인의 손실로 인해 이익을 얻는 것을 뜻한다. 평생 같이 가자, 같이 성장하자며 내일처럼 일하라던 대표는 남편의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매출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성과를 부정하며 남편을 부당하게 대우했다. 


모든 회사는 부당하다. 

20년 전 치과에 근무하며 병원 컨설팅을 공부했다. 공부를 하며 배운 것을 바로 실전에 사용하며 월 매출 4천만 원의 치과의원이 월 매출 1억 5천만 원의 병원급이 되는 시간을 함께했다. 그 시기 나는 매일 2시간 이상 직원들과 정신과 상담에 가까운 상담을 했고, 개개인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항목의 매뉴얼을 만들고 교육했다. 나는 직원들 스스로 진심 어린 자기 계발의 동기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직원 개인의 자기 계발과 병원의 철학이 일치되는 순간 병원의 매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수치로 보여줄 수 있었다. 원장님의 학력이라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방문하는 환자들뿐만 아니라 과거에 방문했던 환자들까지 매일매일 감동시켰다. 병원은 소개로 커가는 곳이다. 예약 관리, 사후관리, 치료 전 상담, 치료 중 상담, 치료 후 상담을 진행하며 환자가 편안하게 느끼는 치료 환경을 제공하는 노동집약적 서비스를 제공했다. 가장 저렴한 치료를 하던 치과에서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치과가 되었다. 예약이 꽉 찬 스케줄을 보며 직원들이 즐거워하고 환자가 줄어갈 땐 직원들이 더 걱정하며 방법을 찾는 유니콘 같은 병원을 만들었다. 병원을 하루 종일 뱅글뱅글 돌며 모든 환자 모든 진료실, 데스크, 대기실까지 관리했다. 그런데 그렇게 일하면서도 정당한 연봉을 요구하지 않았다. 돈 얘기에 당당하고 능숙하지 못했다. 병원 내 근무자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으니 그걸로 만족했던 이유도 있었다. 연봉을 협상하는 날이 되면 영악하기까지 했던 원장님은 늘 이렇게 먼저 물어왔다. 

"얼마를 생각하나?"

연봉 협상 후에는 늘어난 매출로 내 기어도를 내세우면 늘 그 말에 숨었다.

"나는 달라는 대로 다 주었네만"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실 30살도 안 된 초짜를 당당히 상대할 준비가 된 50대를 훌쩍 넘긴 원장님은  

요구한 만큼 다 줄듯, 혹은 다 준 듯 말을 했지만 이미 그전부터 이런저런 말들로 가스라이팅 하듯 선을 정해 제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퇴사

남편은 결심을 했다. 

남편의 입에서 퇴사 이야기가 나오는 날부터 남편은 매일 저녁 누군가와 밥을 먹어야 했다. 대표의 사주로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왜 퇴사를 하려고 하는지 내편 인척 물어왔다. 남편은 입에 발린 말을 못 한다. 곧이곧대로 그동안 대표에게 쌓인 감정을 쏟아냈다. 내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일러두었지만 봇물 터지듯 왜 퇴사하려는지 물어오는 사람만 만나면 같은 말을 또 내뱉었다. 남편이 내 동생이면 뒤통수를 쥐어박으면 적당히 좀 하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사람들은 다 당신 편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개의치 않았다. 휴식을 위해 쉬려고 했던 퇴사는 한이 서린 보복의 퇴사처럼 되어버렸다. 살풀이를 했으니 짐을 싸야지.

대표는 이미 사전 작업으로  남편의 진의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큰 동요 없이 퇴사를 처리했다. 남편은 퇴사를 말한 다음 달 15일까지 출근하기로 했다. 통상 퇴사를 하면 15일까지 출근하고 한 달치 급여를 주는 것이 전통이 이었고, 연봉제라 따로 정해진 법적 퇴직금은 없지만 퇴사하던 직원들에게 주던 금일봉이 있었다. 심지어 몇 년 전 고의로 한꺼번에 3명이 동시에 퇴사를 하며 대표에게 엿을 먹인 직원들 에게도 이러한 룰은 예외 없이 지급되었었다.

그런데 17년 근속 후 퇴사하는 남편에게 대표는 섭섭한 마음을 최선을 다해 표현했다. 퇴사하는 달의 급여를 딱 15일 치만 정산했고 1원의 퇴직금도 주지 않았다. 따지자면 법에도 저촉되는 상황이다. 남은 연차들을 생각하면 월급을 꽉 채워도 부족한 상황이지만 남편은 이런 부분에 대처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은 아름답지 못한 퇴사를 했다. 


퇴사 1일 

남편을 퇴사시키기 위한 한 달에 200만 원의 수익 만들기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남편은 퇴사를 결심했고 실행에 옮겼으니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퇴사 후 당장 집을 팔아 귀농을 하거나 내가 번 돈으로 알뜰살뜰 살게 될 줄 알았던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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