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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크레용 Aug 28. 2021

6. 전 재산 2억. 외벌이 남편을 퇴사시켰다.

6. 고정지출 줄이기

남편의 퇴사를 준비하며 내가 목표한 월 수익은 200만 원이었다. 딱 200만 원으로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200만 원에 자잘한 부가수입들을 합하면 월 수입이 300만 원 정도가 되고 혹시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마이너스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까지의 금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00만 원으로 우리 가족은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남편의 휴식기 동안 여가비와 식비를 의복비를 줄이면 가능했다. 고정지출과 식비만으로 생활해야 하는 기간이 그렇게 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2-3년 동안 만이라도 남편이 일을 하지 않고 쉬게 해 줄 수 있다면 , 휴식기 잘 보낸 후 분명히 더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찾을 수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4인 가족의 생활비.

현재 13살 아들, 7살 딸과 성인 두 명이 사는 우리 집의 월평균 생활비는 400만 원이다. 그러나 우리 집은 똑같이 400만 원으로 생활하는 가정보다는 제법 넉넉하게 생활하고 있다. 이런 생활이 가능한 이유는 외벌이로 첫 아이와 함께 생활하며 빠듯한 생활비 때문에 정리했던 고정 지출 덕분이다. 고정 지출 항복은 이제 눈감고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심플하다. 아파트 관리비와 난방비가 월평균 40만 원, 두 아이들 책 구입과 학습기 월회비 30만 원, 통신비 20만 원, 양가 부모님을 위한 지출 20만 원, 자동차 관련 주유비, 자동차보험, 세금 등으로 월평균 30만 원, 총 고정지출은 월평균 140만 원이다. 400만 원에서 140만 원의 고정 비용을 제외하면 식비와 의복, 취미 여가, 경조사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사치스럽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한우에 유기농 식재료들 먹으며 계절별로 브랜드로 옷가지를 마련하고 주기적으로 호텔 여행을 다녀 올 정도는 되었다. 우리 집 고정 비용이 이렇게 획기적으로 적은 이유는 사교육비와 보험료 지출, 자동차 할부금이 없으며, 은행에 갚아야 하는 이자가 없기 때문이다.




보험 해지

첫 아이를 낳으며 외벌이로 수입이 갑자기 줄어들면서 궁핍한 마음에 돈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쓰는 돈 보다 많이 벌 때는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이었지만, 버는 돈 보다 쓰는 돈이 많아진 상태에서는 돈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그 당시 읽은 해외의 경제서들에는 보험료의 허상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많은 부분 공감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뭘 몰라서 그렇지 알려주면 실천력은 갑이다. 그래서 책의 지침에 따라 매월 70만 원씩 지출되었던 보험을 순차적으로 모두 해지했다. 가장 먼저 변액보험, 종신보험, 손해보험, 실비 보험 순으로 순차적으로 보험을 해지했는데 처음 보험을 해지할 때는 정말 곧 건너야 할 눈앞에 다리를 잘라 버리는 것 같이 불안했다. 그러나 하나하나 해지하다 보니 결정이 늦춰지면 내는 보험료만 더 많아지는 진다는 확신이 들었다. 보험회사에서 가입한 보험을 모두 해지를 했지만 모든 보험을 해지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의료보험과 자동차 보험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가장 자주, 가장 흔히 이용하는 보험은 유지한 것이다. 몇 해전 생활비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지인과 친지에게 보험을 해지해서 고정 지출을 줄이라고 권했었다. 그 말을 들은 지인들은 하나 같이 같은 의문으로 내게 따지듯 되물었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며 그동안 넣은 돈이 얼마인데 해지하면 손해가 얼마이며, 보험 하나 없이 병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며, 자잘한 병원비와 사고에 처리는 어떻게 하냐고 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뒤 그 사람들 모두 입을 모아 감사를 했다. 각자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나 가장 취약한 부분의 보험은 유지하면서 나머지 보험의 보장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한 후 과감하게 정리했다는 것이다.


"자잘한 병원비와 사고 처리할 정도의 여력은 되지?"

자잘한 사고를 보장한다는 실비 보험들 일 년에 한 번 두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병원 진료비 5-6만 원의 본인부담금을 증명해서 서류를 넣으면 내가 낸 과거 몇 백만 원의 보험료 중에서 5-6만 원을 돌려준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영수증 끊어 첨부하기도 귀찮을 정도로 자잘한 금액들이다. 그 역시 보험사가 주는 게 아니고 다 내가 낸 보험료의 범주 안에 들어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축구를 하다가 어떤 차량의 유리를 파손했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외제차 앞유리 2-300만 원의 수리비용이 청구되었다면 본인 부담금 2-30만 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보상해주는데 역시 내가 낸 보험료가 더 많을 확률이 더 높다.


"우리는 이미 의료보험료에 충분한 의료보장 비용을 내고 있어"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점점 더 폭넓은 범위를 보장하고 의료비 부담을 줄여가고 있다. 매월 적지 않은 의료보험료를 낼 때는 아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가입한 보험 중에서 의료보험만큼 많이 돌려받고 있는 보험도 드믈것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부분의 질병은 의료보험에 적용되어 있다.

그러나 가벼운 질병이 아닌 큰 병들은 이야기가 다르다고 할 것이다.

폐암으로 치료를 받던 가까운 친지가 있었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며 암 보험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진단비, 위로금 치료비로 억대의 보험료를 받았다. 회당 몇백만 원이 드는 주사와 약값 치료비도 지급되었지만 치료비는 점점 더 높아졌고 보험 지급금 외에 추가로 든 치료비가 3억이 넘었다. 그런데 보험료 지급은 무한하지 않고 치료기간은 끝이 없었다. 보험에서 보장하는 만큼의 치료를 모두 마친 후 더 이상 치료비가 버거워질 즈음 그분은 바로 돌아가셨다. 치료를 받는 단 몇 개월 보험 덕분에 병원에서 권하는 모든 치료를 원 없이 할 수 있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보험은 마치 아이들 보드게임 같아서 병원과 보험사에게만 유리한 게임 같았다. 만약 우리가 암 말기 환자이고 치료비가 충분히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렇게 고민 없이 병원이 권하는 모든 치료를 받고 난 후 죽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우리 부부는 두 명 모두 가족력이 없다. 평소에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지도 않는다.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자동차사고는 자동차 보험이 가입되어있고, 의료는 의료보험의 보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사교육비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의 최대 지출은 아이들 사교육비다. 외벌이를 결정하면서 아이의 교육은 온전히 내가 담당했다.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고, 산책하고, 놀이를 했다. 그땐 정말 다른 기관을 이용할 만큼의 경제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지만 부모로 연차가 쌓이면서 참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아이가 자라는 동안 적은 수입에도 사교육비 지출 줄여 더 자주 더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2년 동안 전혀 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태권도, 피아노, 미술과 같은 것들은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운다. 아이들이 이런 활동을 원할 때는 서슴없이 지원한다. 다만 이런 비용의 지출이 늘어나면 식비와 의복비, 여행비에서 예산을 줄여 유지한다.

교과목 학원은 한 번도 다니지 않았다.

대학 입시를 목표로 준비하지 않으면 아이도 부모도 아주 색다른 자유를 가질 수 있다. 대학 입시의 틀을 맞춰 가려면 이르게 해야 하는 공부의 수준도 양도 방대하다. 처음에는 아들과 나도 숨 가쁘게 그 틀을 따라갔다. 아들은 버거워했고 나는 늘 아이를 다그쳐야 했다. 아들은 나를 속였고, 나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아이와 관계가 어긋났다. 아이는 행복하지 않았고 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행복할 만큼만 하면서 사이좋은 가족이 되기로 했다. 대신 아이가 되고 싶은 무엇인가 생긴다면 아낌없이 지원하고, 무엇이 되려고 하든 응원하기로 했다.



자동차 할부금

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새 차들이 화려한 할부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유혹한다. 그러나 자동차를 할부로 구입하는 순간 월급쟁이들에게는 정말 어마 어마한 일이 벌어지고 만다. 자동차 할부금으로 월 50만 원을 지출한다고 할 때 자동차 보험료와 자동차세, 주유비 등의 차량 유지 비용이 매월 30만 원이 따라오고, 차량 종류나 월 할부금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매월 80만 원 내외의 금액이 고정 지출로 딱 박혀버린다. 그렇게 되면 퇴사는 고사하고 목돈 마련 조차 꿈도 못 꾸는 헛발질을 아주 오랫동안 해야만 한다.



은행 대출이자

우리 부부가 나이 40이 넘도록 전재산이 2억뿐인 이유에 가장 큰 이유가 은행 대출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 초 70%의 은행 대출로 집을 아파트를 마련했다. 대출 당시 연 3.2% 였던 금리는 단 3년 만에 6.5% 까지 올라갔다. 금리가 두배 이상 올랐다. 금리가 올라가면 부동산 시장은 그만큼 하락한다. 부동산 가치는 하락하고 금리는 높아지니 더 이상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3년간 이자만 꼬박꼬박 내던 우리 집을 구입 가격보다 낮게 팔아야만 했다. 우리는 3년간 은행에 월세를 낸 셈이다. 우리는 집을 판돈만큼의 전세를 얻었다. 그런데 그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전세권 설정도 해두었고 은행 다음으로 우리가 2순위였지만 은행은 집 주인의 대출금과 그 대출금의 24%나 되는 어마어마한 연체금까지 챙겨갔다. 전세금 절반도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낙찰가격이 낮으면 1/3도 받기 힘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린 그 집을 경매로 낙찰받았고 겨우 전세금의 절반의 금액만 보존한 채 다시 은행 대출을 갚아야 했다.

어떤 경우에도 은행은 손해를 보지 않았다. 집값이 하락해도,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항상 이익을 보는 것은 은행이었다. 우리는 내 집 마련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은행의 영원한 세입자였다. 남편의 퇴사를 위해서는 은행 대출에서 가장 먼저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전 까지는 이자를 제외하면 1년에 고작 천만 원 정도의 원금을 상환해 왔지만, 난생처음 허리띠를 졸라맸다. 닥치는 대로 갚았다. 만 3년 동안 1억을 갚았다. 드디어 우리는 은행 대출에서 독립할 수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은행의 세입자가 아니다.

우리는 자유다. 갚아야 할 대출이 없고, 대출이자가 없으니 최소한의 생계비용만 있으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벽돌 한 장으로 살지 말자


퇴사를 권할 때마다 남편은 몇 년간 꾸준히 요지부동이었다.

이런저런 철학이야기, 퇴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하기도 했지만 그 사람들은 다 먹고사는 게 해결돼서 그런 거라며 잠시 흔들리는 남편 자신을 붙들고 있었다. 그런 남편에게 가장 최근에 보여준 글 중에 하나가 백기완 선생의 젊은이에게 주는 말이다. 우리가 아직 젊은 지는 모르겠으나 한 장의 벽돌로 살고 있는 건 확실했다.

"여보 우리 벽돌 한 장으로 살지 말자. 우리 가난하게 살아도 자유롭게 살다 죽자"




백기완 선생의 [젊은이에게 주는 말]


젊은이 여러분.

몇 년 못 살았지만 살기가 좀 힘들죠?

그런데 진짜 힘든 게 뭔지 아세요?

여러분을 이 세상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꾸미는 주역을

만들 생각은 안 하고 썩어 문드러진 놈들이 만든 

일 거리를 일구는데 요만한  하나 돼라, 아니면 벽돌  장이 되라고 여러분한테 강요하는 

바로 여러분들의 창조적인 주체성을 박탈해서 허공에 집어던지는 거

그게 바로 여러분의 생명의 위협을 받는 어려움일 겁니다.

그러니 젊은이 여러분.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이 사회에

한 조각 못 아니면 벽돌 한 장이 돼서 그냥 낀 대로 살 생각하지 말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주역이 되고자 몸부림을 쳐보세요.

그러면 똑같은 일 초를 살더라도 영원으로 살 수 있을 겁니다. 영원.

젊은이 여러분! 젊은이 여러분, 힘을 내세요.      



사진 출처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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