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을 맺는 매화를 사랑한 이유

by 전성배

꽃이 머문 자리에 초록 잎이 안착하면 이내 꽃이 남긴 흔적은 희미해집니다. 키 높은 나무들에서는 더 이상 지난날의 꽃을 찾아볼 수 없죠. 왕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일까요. 여름을 향하는 길목의 고동색 생명들은 왕 앞의 백성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그의 모든 것을 닮기 위해 달리 피어있던 꽃들을 허물고 초록으로 단장합니다. 하나하나가 독립적이었던 개체는 그렇게 하나의 모습으로 여름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는 봄에게 더 큰 의미를 두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잠시 들리는 계절임에도, 겨울에 죽었던 모습도, 가을에 죽어가는 모습도 아닌 새롭게 탄생하여 온전히 각자의 꽃을 피우게 하는 유일한 계절이니까요. 2월의 입춘을 넘어 4~5월에 절정의 빛을 발하며 호기로움을 뽐내는 봄. 아마도 봄의 상징이라 할만한 벚꽃 때문이겠죠.


하지만 벚꽃에 매료된 사람의 수만큼 많은 이들에게 잊힌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벚꽃에 앞서 이미 선명한 봄이 한번 핀다는 걸. 바로 작년과 올해에 걸쳐진 겨울이라는 계절처럼 겨울의 색으로 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梅花'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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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 결백, 기품 혹은 품격 같은 정해진 말보다 허리를 곧추세운 말들로 불리는 꽃 매화는 입춘入春은 지났으나 아직 겨울의 한기가 진득한, 말뿐인 봄의 초입에 피어납니다. 아직 봄이 되지 못한 계절에 성급하게 꽃을 피우는 것이죠. 그 성급함은 잎사귀보다 먼저 꽃을 피울 정도입니다. 앙상한 마른 가지에 잎 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는 겨울에게 색이 바랜 듯, 약간의 홍색을 띠는 백색을 자랑하며 겨울의 눈꽃과 비슷한 순결한 색을 발합니다. 그 모습은 마치, 잎이라는 타인의 보호 없이도 온전히 자신을 피워 낸 망명 높은 사람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가히, 다른 잎보다 먼저는 물론 다른 꽃보다 먼저 핀다 하여 꽃의 우두머리라는 뜻에 '화괴花魁'라고도 불릴만하죠.


매화를 사랑한 옛사람


그래서일까요. 매화는 예로부터 선비들이 좋아하는 꽃이었고, 화가 '김홍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매화의 기품에 매료되었던 김홍도는 언젠가 한 번은 어떤 이가 팔던 매화나무를 사고자 했지만 돈이 없어 고민하던 중, 때마침 그림을 그려 달라는 누군가의 청에 그림을 그려 그 사례로 돈을 받아 매화나무를 샀고, 남은 돈으로 친구들과 매화나무를 감상하며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를 '매화음梅花飮'이라 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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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매靑梅와 황매黃梅


매화가 피는 나무는 꽃을 중심으로 하면 '매화나무'라고 하지만, 열매를 중심으로 하면 5월에 만날 수 있는 매실을 맺는다 하여 '매실나무'라고 합니다. 남부 지방에 경우 2월에도 꽃을 피우지만, 보통은 3월 말이나 4월 초에 피는 매화는 10일을 전후로 하여 진 이후, 매실을 맺는데 5월에 들면 그것은 완연한 매실의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우리가 떠올리는 초록이 선명한 매실을 말이죠. 하지만 사실 이 초록의 매실은 열매가 덜 익은 상태로 '푸를 청靑자'를 써서 '청매실'이라고 부릅니다. 그 말은 즉, 매년 5월쯤에 만나는 초록의 매실은 모두 열매가 덜 익은 것들입니다. 당연하게도 청매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랗게 익어가기에 청매실은 일정 시기가 지나면 '누를 황黃;자를 써 '황매' 혹은 '황매실'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러나 엄연히 다른 이름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황매를 질 떨어지는 매실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과실은 익었을 때 비로소 본연의 맛을 내고, 매실 또한 예외는 아니기에 당연히 노랗게 익은 황매가 청매보다 더 짙은 향과 매실주 혹은 농축액을 만들 때 더 진한 맛을 낼 수 있는데도 청매보다 못한 취급을 받죠. 되려 5월에 수확하는 청매실은 너무 덜 익은 씨 안에 청산 배당체의 일종인 '아미그달린'이라는 독소의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고, 이는 익을수록 줄어드는 것이기에 취급에 주의해야 합니다. 신맛 또한 강하기 때문에 선조들은 덜 익은 매실을 생으로 섭취하게 되면 복통과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말하며, 생식을 피하는 과일 중 하나로 분류하기도 했죠.


다만, 씨를 제거하면 이러한 것을 방지할 수 있어 청매실은 보통 그 단단한 과육이 가장 잘 돋보일 수 있는 '매실 장아찌'로, 매실주 혹은 매실 진액은 앞서 말했듯 황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결국 전해졌으면 하는 것은 푸른 청매실에 마음을 빼앗겨 용도에 맞지 않은 선택으로 황매를 하대하는 일이 없어지길 바란다는 마음입니다. 매화를 닮은 것은 오히려 황매 쪽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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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매실


매화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지만,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 자생하던 나무였습니다. 그러나 선조들은 신맛과 씨의 독성 때문에 식용보다는 약용으로 사용하였고,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도 생식이 아닌 '오매烏梅'라고 하여, 청매의 껍질을 까 씨를 제거한 뒤 짚불 연기에 그을려 말린 매실을 갈증과 가슴의 열기를 없애는 약재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한 역사는 있지만, 깊지 않았던 연유는 이렇듯 식용이 아닌 약재로 주로 쓰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매화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과 매실이 크고 많이 열리는 품종을 갖고 있어, 그것을 이용해 '우메보시(매실 장아찌)'를 만들어 먹는 것으로 오래전부터 매실을 그들의 정서를 대표하는 식재료로써 함께 했습니다.


그와 달리 우리나라는 한참 시간이 지나 1970년대에 매실이 많이 열리는 일본의 매화나무를 들여와, 감나무와 살구나무 같은 유실수有實樹(식용을 포함하여 쓰임새가 많은 열매가 열리는 나무)의 하나로 우리 땅에 심기 시작했습니다.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을 시작으로 심기 시작한 매화나무는 훗날 "매실 하면 광양 매실"이라는 말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죠.


먼저 나설 용기


'화괴花魁'라고도 불리는 매화를 떠올리며, 성급하다 말하는 것은 되려 그가 가진 품격과 고결함에서 결이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급하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 선두를 자처한 장군의 기백과 같다고 해야 했습니다. 먼저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병사의 목숨 하나도 누군가에게 귀하므로, 기어코 단신으로 마른땅에 군림한 장군은 적의 위협에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겨울의 서리 속에서 홀로 마른 가지 위에 핀 매화야 말로 장군의 기백과 고결함을 닮아 있었습니다. 매화는 조급하거나 성급한 것이 아닌, 용기와 강단을 가진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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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찍이 선비가 매화를 사랑했던 이유는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닮고자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론 상황과 여건을 핑계로 개화를 망설였던 우리에게도 매화와 같은 용기와 강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마냥 누군가의 발자취를 쫓는 것이 아닌, 용기로 호기롭게 서리를 맞서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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