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중반을 향해 시간은 여과 없이 겨울의 바람만큼이나 냉담하게 날아간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빠른 시간에 대한 아쉬움의 크기만큼 기대감 또한 무시 못할 크기로 부풀어 간다. 아마도 겨울바람 탓일 것이다. 그것이 옷의 틈새를 파고들어 살갗을 베기 때문에, 자연스레 봄에 대한 갈망을 키우는 것이다. 얌전하지 못한 잠버릇에 이불을 빼앗겨 떨어야만 했던 어느 날의 밤처럼, 온몸을 차갑게 식히는 바람은 따뜻한 봄을 기다리게 만든다. 봄에 만개할 낭랑한 꽃들을 기다리게 만든다.
겨우내 활기를 잃었던 입맛과 고객 숙인 꽃을 되살리며, 특유의 향을 무기처럼 지닌 식재료를 등장시키는 봄. 우리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대부분이 봄을 기다릴 것이다. 특히, 계절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봄과 함께 완연해질 부산 대저동의 '대저 토마토' 또한 그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성인을 기다리는 19살의 소년처럼 한껏 부풀린 가슴을 안고 발을 동동 구르며.
부산 대저동의 토마토는 타지의 토마토와 달리 '대저 토마토' 혹은 '짭짤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일반적인 토마토는 새콤한 맛이 주를 이루는 반면, 부산 대저동의 토마토는 짭짤한 맛을 내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었는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 대저 토마토는 알만한 사람만 즐기는 과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토마토는 생식보다 갈아먹는 소비층이 두텁고, 일반 토마토에 비해 대저 토마토는 몇 배의 돈을 더 지불해야 했기에, 판매자나 소비자가 굳이 토마토라는 카테고리 안에 중복되는 상품을 더 비싼 값에 주고받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특유의 짭짤한 맛과 토마토 고유의 새콤함이 어우러져 표현하기 힘든 깊이 있는 맛을 내는 대저 토마토의 마력을 숨길 수는 없었고, 점차 영역을 넓혀 가더니 이제는 봄의 지분을 꽤나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저 토마토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새콤 달콤한 맛이 주를 이루는 과일에서 짭짤한 맛이 난다는 것에 의아함을 품을 것이다. 본디 짠맛이라 하면 당연히 소금을 빼놓을 수 없고, 소금은 누군가의 말마따나 인간의 생존에 불가결한 요소이며 요리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짠맛이 유일하게 예외일 것 같았던 과일에서 난다고 하니 듣는 것만으로도 여간 어색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짠맛과 새콤한 맛의 조화와 짭짤이의 사연은 의심과 의문을 단숨에 잠재운다.
쉽게 키워낼 수 없는 짭짤함
특산물 혹은 지역 명물이란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물품을 말하지만, 더 넓은 의미로는 타 지역에 비해 더 뛰어난 품질을 자랑할 때도 쓰이는데, 대저토마토는 전자에 해당된다. 그 이유는 과실이 갖고 있는 자체적인 특징이나 종자의 특별함이 아니라, 부산 강서구 대저동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대저동은 과거 바닷물과 밑물이 만나는 낙동강 삼각주에 자리 잡은 지역으로 수시로 바닷물이 들고 나던 곳이었기에 자연스레 바닷물의 풍부한 천연 미네랄 성분이 토지에 슬며들게 되었고, 그것을 토마토가 빨아들이면서 짭짤한 맛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지리적 요건을 충족할 수 없는 곳에서는 짭짤이의 재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대저동 내에서도 모든 토마토가 짭짤한 맛을 내는 것이 아닌 일부만 그 맛을 내기에 더 특별하고, 그만큼 일반 토마토에 비해 3배 이상의 몸값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같은 특별함을 갖기 위해선 많은 시련과 고뇌가 겹겹이 쌓여야만 했다. 낙동강 삼각주에 자리 잡았던 대저동은 강으로 둘러 싸인 곳이었기에 홍수가 자주 들어 농사를 짓기 어려웠고, 강이 갈라놓은 마을은 나룻배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당시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는 비가 갤 날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갈대숲을 밀어 농토를 이루는데 전념했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빛을 보기 위해선 또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강서구 하면 명지 대파, 소금, 낙동 김, 대저 토마토를 떠올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대저토마토'라는 명물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해당 지역 농가에서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이유인 즉, 쉽게 따라서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닌 짭짤이는 대저동의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서부산 개발로 인해 360ha에 달했던 토마토 재배면적이 70%가량 사라진 데다 이는 토마토만이 아니라 강서구 논 면적 자체도 2000년에 비해 거의 반절 가량 줄어 사태의 심각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매년 한정된 시기에만 즐길 수 있어 더 매력적이고 귀한 대저 토마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니, 무서운 일이다. 한 지역의 역사를 담고 있고 누군가의 사연과 삶의 축을 책임졌던 것이 대저 토마토인데. 부디, 한 역사가 무색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꾸준히 과거의 사연과 고난을 품고 더 빛을 발하며 언제까지고 우리에게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_유튜브 채널 '시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