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설렘이라는 순박함보다 더 둥글고 부드럽게 마음에 안착하게 만들었던 짧은 대화가 잠자리를 뒤척였던 밤 동안 마음의 안과 밖을 쉼 없이 그리고 조용히 드나들었다. 전날 저녁,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나에게 옛날이면 혼기를 채우고도 남았을 나이라며, 결혼이라는 일생의 문제를 계속해서 거론하셨다. 물론, 말씀대로 적지 않은 나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춘기 시절의 반항이 남아있는 것인지, 속으로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현재 곁을 지켜주는 나의 연인이 가족들에게는, 세상 어떤 만남보다도 인연에서 가장 순결하게 잉태된 연緣이라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와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라는 이름으로 먼저 이 사이를 시작했다.
노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직 젊음이라는 화사한 것에 더 가까웠을 때, 물정 모르던 어린 당시의 나는 그녀를 따라다니기 바빴다고 가족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형편이 어려웠던 아버지가 어렵게 구해주신 낡은 자전거와 '워크맨'이라 부르던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재생기가 가장 큰 보물이었던 나는, 학교만 끝나면 그것들을 챙겨 그녀의 동네로 향했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잘 모르던 사실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알고 계셨던 이유는 그녀의 집과 할아버지의 옛집이 같은 동네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어렴풋 하지만 분명 머릿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순애보이기에 숨길 수 없는 진실이기는 하나, 난 아직도 부끄러울 때면 고개를 숙이고 귀를 닫는 버릇을 못 버린 탓에 괜히 퉁명스레 말했다.
"언제 적 이야기를 아직도 하세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시절의 기억이 강하게 남으셨는지, 내가 성인 되고 몇 번의 연애로 여러 사람을 만나는 동안에도 매번 나를 만날 때면 친구 사이였던 그녀의 안부를 묻곤 하셨다.
“그 아이는 잘 지내니? 어렸을 때 그렇게 쫓아다니더니”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녀를 입에 달고 떼어놓지 않으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이기에, 지금은 그녀가 나의 연인이 되었다는 현실에 쉬이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이라며 진심으로 기뻐하신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만큼 속속들이 서로를 알고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며, 둘이 좀 더 먼 미래를 약속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나 또한 고민 많은 이십 대의 끝 자락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게 보내고 있기에, 가족들의 말은 그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었다. 수년을 사랑한다 말하던 연인과도 하루아침에 감정을 잘라내고 눈을 감으니, 아직은 이른 우리의 미래를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섣부르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가족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있기 전까지.
“성배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충분한 사랑을 이야기하며 보낸 다음 결정지어도 괜찮아. 그 사이 두 사람 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할아버지나 내가 그 인연을 이토록 반가워하는 것은 익숙함이란 것이 현재의 너희 세대가 말하는 것만큼 케케묵고 텁텁한 말은 아니기 때문이 야. 설렘이라는 건 좋지. 서로를 좀 더 가꾸게 하고, 기분과 몸이 매일매일 구름에 사로 잡힌 듯 몽글몽글 해지기도 하니까. 그런데 모든 인연에게는 각자 감내해야 하는 인과因果가 있단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할머니는 알던 시간과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그 인과를 잘 감내하고 견뎌낸 사이라고 생각한단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며 그거대로 좋겠지만, 새로운 인연에서는 또 새로이 찾아오는 인과가 부지기수기에 또다시 힘든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할머니는 설렘과 익숙함에서 무엇이 낫다를 이야기하려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오래도록 나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욕심 짙은 말이라 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른다. 하나, 그녀를 익숙함과 설렘이라는 저울에서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그녀와 나는 서로의 조금은 탁했고, 때때로 순했을 과거의 인과를 모두 알고 있다. 이미 우리가 서로에게 시작을 말할 땐 설렘보다는 익숙함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렘과 익숙함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두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하나만을 점철하지는 않지 않던가.
설렘과 익숙함. 이는 공존할 수 없는 가치다. 물이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듯 관계가 설렘에서 익숙함으로 물길을 트는 건 관계에 있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우린 이 수순을 영원이라는 비현실적 언어가 불러온 착각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누군가는 설렘을 좇아 새로운 이를 끝없이 쫓고. 누군가는 익숙함에 쫓겨 한 번 맺은 사람을 쉬이 놓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감정의 물길을 알고는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익숙함을 좇으며 사는 이다. 마음이 안정되는 동네의 조용하고 허름한 카페만을 가며, 그녀와 손을 잡고 걸었던 길을 또다시 되짚어 걷기를 반복하고, 그녀와 함께 하는 짧은 일상이 가장 큰 기쁨임을 믿는다.
분명 그녀에게는 꽤나 지루할 것들이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일방적으로 그녀를 묶어 놓는다 말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에 가끔은 다채롭게 일상을 꾸며 그녀를 기쁘게 해야 하는 건,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사랑이다. 그저 나는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어떤 설렘보다 익숙한 네가 좋다고.
유튜브 채널 '시뷰'를 구독하고 영상 수필을 시청해주세요 :D
www.youtube.com/channel/UCpmLcFAXAd-EUZnRBT0hQrQ
와카레미치입니다. 삶과 사람의 틈새에 산란해 있는 사정을 추려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땅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수십억 인간의 삶이 되는 것에 경외심을 느껴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수필 연재와 만났던 농민의 작물을 독자에게 연결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aq137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