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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12. 2019

배, 일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

궂은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은 우산을 들고 길가를 걷는 것만으로도 곤욕스럽다. 새로운 운동화를 싣지 못하는 작은 아쉬움부터 수시로 신발을 뚫고 들어오는 비와 행여나 노트북에 물이 들어갈까 조마조마한 마음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루를 보내야 하고, 나름 추려놓은 그날의 일감을 쳐내야 하니 겸허히 받아들이며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다 보낸 후 저녁 시간인 지금, 늘 가던 카페의 늘 앉던 자리에서 또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문득, 이런 날씨에도 쉬지 않고 이번 주에 있는 추석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을 농부의 하루가 떠올랐다. 농부의 일상도 도심에서 보내는 나의 일상과 모습은 다를지 언정 마음 가짐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결국, 얄궂은 비를 받아들이며 반복되는 하루에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다르지 않다. 물론 그들의 하루에 무게추를 더 실어야겠지만. 그들의 일상은 매일이 새로운 생을 보살피는 여정이니 말이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바람을 갖지만 그 바람의 원천에는 더욱 진중한 것이 있을 것이다. 얼른 날이 개 맑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기를, 가을에 어울리는 쌀쌀한 바람이 이른 아침에 불어와주길 바라는 마음의 뒤편에는, 자신의 손에 자라고 있는 작물의 일생이 순탄하길 바라는 마음이 가감 없이 묻어있다. 그리고 하나 더, 자신의 작물이 모두에게 일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그 연장선에 따라붙어있다.

일상이 되는 농산물. 어떠한 모습 뒤에 완성될 수 있는 말인지, 처음 농부님에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조금 의아했다. 하나의 작물을 키우기 위해서 몇 개의 계절을 보내야 하는 농부에게는 말 그대로 자신의 작물이 본인의 일상 그 자체일 테지만, 그것이 소비자에게도 일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지 처음 듣던 그 순간에는 간파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배를 키우며 자신의 고민을 내뱉으시던 농부님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람의 시작은 배를 대하는 소비자의 모습에서부터였다.

unsplash / 서양배 (임시 이미지)

사과와 바나나를 예로 들어보자. 이들의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연상되는 말은 '아침'과 '건강'같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큰 관심거리임과 동시에 일상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사과, 바나나는 "아침의 사과는 건강에 좋다" "매일 바나나를 한 개씩 먹으면 건강에 좋다"등의 말로 매일 주어지는 하루에 함께 따라붙는 과실로 분류된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류의 과일은 사계절 내내 접할 수 있다는 특징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매가 가능해 접근성이 좋다. 꾸준한 공급에 저렴한 가격이 수반되어야만 일상에 근접할 수 있으니 당연한 말이다.


키위, 바나나, 토마토, 방울토마토, 사과, 배 등 헤아려보면 생각보다 많은 과일이 이러한 특징으로 일 년 내내 시장에 나오고 있다. 그러나 유독 '배'만이 순탄하지 못하게 흘러가고 있다.


배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건 '제수용'가 아닐까 생각한다. 명절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직까지는 돌아가신 분들의 기일에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보통이기에 제사상의 기본인 사과, 배, 단감과 곶감은 때가 되면 필히 소비하는 과실이다. 그래서 보통 이런 류의 과일을 어른들은 '제수용 과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린 우리들도 함께 하는 제사이니 자연스레 이 과일들은 제수용이라는 이미지로 고착화됐다. 제사 때가 아니면 평소에는 잘 먹지 않을 만큼. 실제로 나의 경우에는 배를 평소에 사 먹은 적이 거의 없고, 제사 때나 식사를 마친 뒤 후식으로 간단히 즐기는 정도에 불과하다.


한데, 조금 의문이 드는 건 같은 용도로 활용되던 사과는 배와 형편이 상반된다는 것이다. 단감의 경우 저장기간이 길지 못해 대체로 가을에 수확이 된 후에는 비닐포장을 거쳐, 차등 출하를 하다가 서서히 곶감과 감말랭이 같은 형태로 바꾸기에 여기서 함께 비교하는 건 다소 무리지만, 사과와 배는 그 길이 비슷하다. 과거 저장성과 당도가 좋은 후지(부사)의 출현으로 우리나라 사과 품종 시장이 부사로 급변하면서, 사과는 가을에 '부사' 재배가 끝나면 신고배와 마찬가지로 저장에 들어가 이듬해 시나노 스위트, 홍로, 부사 등의 품종이 열릴 때까지 명맥을 이어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unsplash / 서양배 (임시 이미지)

이 부분에서 배도 신고를 필두로 원황, 화산 등 많은 품종이 있기에 사과와 마찬가지로 사계절 내내 흐름을 유지하는 과실이다. 그러나 처지는 사과와 상반되니 아이러니하다. 충만한 수분감과 당도, 사각거리는 식감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도 흔하지도 않은 특별한 맛을 내지만 처지는 제수용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 최대 배 생산지로 알려진 나주에서도 오랫동안 고민하는 부분이다. 나주 지역의 일부 농가들은 제수용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배의 문제점 중 하나로 사과에 비해 평균적으로 1.5배 이상 큰 과실의 크기와 함께, 업계에 정해져 있는 포장 용량이 소량 소비가 추세인 요즘, 소비자에게 부담감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평소 도매시장에 입하되는 배의 용량은 박스당 15kg 정도로, 명절의 경우 7.5kg을 유지하고 있다. 과실의 크기가 있다 보니 이보다 작은 포장 용량은 개수를 통해 과실 가격의 합리점을 찾는 소비자들의 성향상, 포장 중량을 줄인다는 건 과실 개수를 줄이는 것이기에 아무래도 반감을 줄지 모른다고 덪붙이기도 했다. 그래서 15kg을 을 10kg으로 줄이는 것에는 긍정적이지만, 7.5kg을 5kg으로 줄이는 것에는 다소 망설이는 듯 보였다. 그러나 가정에서 배를 부담 없이 즐기기 위해선 소포장이 선행되어야 하니, 협의점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정과 사연으로 사과와 달리 배는 일상에서 쉽게 접근하지 않는 과실이 되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워 늘 고민하신다는 농부님의 얼굴과 목소리의 무게가 내게 전해졌을 때, 다시 한번 더 농부는 부모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작물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과 자식이 어느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고 사랑받으며 살길 바라는 마음 이 두 개는, 조금도 삐져나가지 않고 정확히 포개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부려도 되는 욕심이며, 이뤘으면 하는 욕심이다.


자식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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