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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Mar 05. 2019

키위와 다른 맛, 참다래

부모의 손에서 길러지는 아이들은 점차 성장해가며 성품과 감정, 자아를 정립한다. 각자가 가진 특성은 결국 부모의 영향과 스스로 지니고 태어난 특정한 결이 미묘하게 섞여 만들어진 것으로, 수십억 인간은 이토록 경이로운 과정을 통해 한 명 한 명이 독보적인 유일무이의 생명체로써 살아간다. 그에 비해 농산물이나 수산물, 축산물은 그저 인간의 생명이라는 선상 위에 자리 잡은 생명으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이들도 우리처럼 미묘한 차이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 차이는 인간과 같은 궁극의 존재에게만 국한된 누군가의 특별한 허락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결코 아니었다.


'종種'이라 하면 유기체를 같은 속성끼리 분류하는 방법으로 농산물을 예로는 크게 사과, 배, 단감, 바나나 같은 이름으로 묶어서 말할 수도 있겠지만, 종種은 그보다 더 본질적인 구분법인 품종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사과를 예로 빨간 껍질과 약간의 노란빛이 서린 속살과 사각거리는 과육을 가진 것이 사과라 하지만, 그 사과는 '홍로' '부사 '감홍' '시나노 골드' 등과 같은 품종으로 나뉜다. 이것들은 각각 고유한 맛과 색을 가져, 사과라는 큰 울타리에서 각자의 이름을 드러내며 계절과 기간, 소비자의 기호에 맡게 길러지고 유통된다.

와카레미치

즉,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도 인간 혹은 인류라는 거대한 부류 속에서 각자의 이름과 사연, 생김새로 살아가는 개인이지만, 하나의 품종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약 3만 년 전부터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종으로 분류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헤아릴 수 없는 시간 안에서 무한에 가까운 인과가 뒤섞여 지금에 이른 것이 인류이기에, 인간은 신을 제외한 유일한 절대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실은, 농산물과 같은 작은 생명과 우리의 생명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똑같은 물고기도 어느 바다에서 헤엄쳤느냐에 따라, 똑같은 가축도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뛰며 숨을 쉬었느냐에 따라, 똑같은 작물도 어느 땅에서 어떠한 계절을 머금고 자랐느냐에 따라 같은 품종임에도 확연한 맛의 차이를 보인다. 이는 마치,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서 누구의 손에 자랐느냐에 따라 달리 변할 수 있는 경우의 수와 같다.


참다래라 말하는 키위에서 나는, 우리가 결코 특별하지 않음을 엿보았다.

와카레미치

참다래는 키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키위는 골드키위와 그린키위가 대부분이고,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가면 키위는 곧 제스프리며, 뉴질랜드는 키위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뉴질랜드산 제스프리 키위는 우리나라를 더불어 전 세계 키위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시작을 살짝 들여다보자면 키위는 최초에 중국에서 자생하던 야생종이었고, 이것이 뉴질랜드에 전파되면서 지금의 뉴질랜드 키위의 시초가 되었는데, 우리나라 참다래는 이 키위를 들여와 정식으로 심고 재배한 것을 이름만 바꾼 것이다. 그렇기에 키위가 곧 참다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이지 그린키위 품종 중 가장 대중적인 '헤이워드' 품종을 똑같이 심었는데도 결과물은 뉴질랜드산 그린키위와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그린키위가 가진 특유의 털이 참다래에서는 더 빳빳하게 자랐고, 껍질의 색은 진했으며 신맛은 그린키위를 훨씬 웃돌만큼 강했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참다래를 거칠고 진하게 그래, 우왁스럽게 만들었을까. 처음 참다래를 보았던 수년 전부터, 그것을 독자와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재까지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 의문의 끝을 땅에서 찾았다. 

와카레미치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씨를 보듬어 열매를 키우는 우리의 땅이 타국의 땅과 다르기 때문이다. 농사는 땅심 관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오래전 한 편의 수필에서 전했었다. 땅의 영양분을 쉼 없이 약탈하며 일하기를 강요한다면 땅도 이내 지쳐 무너지고 만다고. 그래서 농사를 지은 해가 있다면 필히, 잠시 모든 걸 멈추고 휴경에 들어가 땅을 쉬게 하고, 객토를 하며 비료를 주어야 다시금 작물을 키울 수 있는 땅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땅은 이처럼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생명인 것은, 그리고 생명을 키우는 것은 결국에는 본질적으로 같다. 인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부모의 손길에 따라, 각자가 가진 특질에 따라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찮다 생각했던 작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특질이 땅이라는 부모의 품 안에서 새로운 모습과 맛으로 발현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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