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성배 May 23. 2018

애정을 상기시키는 토마토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매개체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관람한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약 100일의 시간은 가볍게 새겨진 기억 정도는 지워질 수 있는 1년 중 한 계절에 해당하는 시간이죠. 하지만 그 영화 속에서 잠깐 스쳤던 장면 하나는 지금까지 꽤나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워지는 기억과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구분은 얼마나 깊게 새겨졌냐의 차이라고 누군가는 말합니다.


당연한 말이겠죠. 깊게 새겨진 기억일수록 시간이라는 풍파 속에 깎여 나가는 표면에서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또 다른 구분 법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꾸준히 기억을 상기시키는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죠. 바로 매개체를 통해 되새기는 것입니다.


음식이란 분명 후자에 해당될 것입니다. 몸이나 머릿속에 남는 흉터나 트라우마와 같은 기억과는 달리, 후각과 미각으로 느끼는 음식은 상대적으로 깊게 새겨질 수 없는 기억입니다. 그렇기에 우린 얼마의 세월이 지났든 그날의 음식과 먹거리를 찾아 먹는 것으로, 기억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그날 음식과 함께 했던 누군가를, 누군가의 애정을 되새깁니다.

네이버 영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속 여주인공은, 초록의 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낸 그늘 아래서 엄마와 함께 토마토를 한 알씩을 깨물어 먹던 몇 년 전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무심결에 엄마의 가슴을 시리게 만들었을 말을 꺼낸 뒤, 어머니가 맞받아친 말과 함께.

"다 먹고 남은 꼭지를 저렇게 던져두어도, 내년이면 토마토가 열리더라. 신기해"


극 중 그녀에게 토마토는 때때로 힘들고, 원치 않는 시련으로 도태되고 지치더라도 분명, 나의 자식인 만큼 잘 해내고 이겨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거라는 응원과 함께 떠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매개체였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토마토는 영화와 다르지 않은 역할을 합니다. 어머니나 할머니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매개체의 역할을 똑같이 해내고 있죠.

'와카레미치' 캐논 EOS 750D

유럽의 속담 중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의 안색이 파랗게 질린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건강에 좋아, 세계적인 슈퍼푸드 반열에 이름을 올린 토마토는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먹는 채소로 꼽힙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정확한 도입 연도는 알 수 없지만, 1613년 <지봉유설>의 기록을 미뤄 보아 중국을 통해 처음 들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죠. 당시엔 반질반질하고 붉은 외형 탓에 식용보다는 관상용으로 심어졌지만, 점차 우리나라에서도 영양가가 많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식용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토마토는 오래전부터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주로 먹이는 먹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토마토 맛에 익숙해지기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저는 매번, 어머니가 주시던 토마토를 거부하거나 몰래 버리기 일 쑤 였죠. 투박하셨던 어머니의 성격상 그럴 때마다 혼나기 십상이었지만, 쉽게 행동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해결책으로 내민 것이 설탕을 뿌린 토마토였습니다. 다른 과실이나 수박과 참외 같은 과채류와 달리, 당도가 부족한 토마토를 얇게 썰어 올려놓은 접시 위에 설탕을 뿌려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럼 과육이 내는 섬유질 가득한 식감과 상큼함, 뒤를 따르는 설탕의 단맛에 금세 한 알을 다 먹을 수 있었죠.

'와카레미치' 캐논 EOS 750D

그 뒤로 점차 설탕의 양을 줄여 종국에는 토마토를 생과 그대로 먹게 만들었던 어머니의 기지는 어린 시절 저의 입맛을 바꾸고, 건강을 지켜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셨습니다. 특별하지 않아 잊히기 쉬운 기억이지만, 수많은 어머니의 애정 중 피부로 알 수 있었던 <사랑>이기에, 토마토를 먹을 때면 그때의 애정이 떠오릅니다.


INSTAGRAM / PAGE / FACE BOOK / NAVER BLOG (링크有)

※ 詩와 사진 그리고 일상은 인스타와 페이스북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aq137ok@naver.com


이전 20화 배, 일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