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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29. 2019

가을 전어의 타이밍

낮에는 아직 여름의 햇볕이 내리쬐지만, 저녁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속아 가을을 운운했다. 뭐, 얼마 전에 낮보다 밤이 길어진다는 추분秋分이었으니, 무작정 속았다고 볼 수도 없다. 가을에 맞춰 보이기 시작하는 전어와 단풍 축제의 소식, 과거 가을을 주제로 썼던 글의 조회수가 다시 오르는 것을 보면서 가을을 말하며 가을을 위해 준비한 베이지색 가디건을 입어도 될 듯싶다. 완연한 가을이라 말할 순 없어도 가을을 속삭여도 될 듯한 요즘. 지난 주말에는 이 계절을 맞이해 친구들과 전어를 먹으러 갔다. 나의 고집이 다분한 외식이었다. 약 한 달 전부터 보이던 전어였기에, 그때는 이른 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괜찮을 것 같았다. 세꼬시로 썰린 전어회의 고소함을 일 년 가까이 기다렸으니, 친구들을 만난 주말 저녁의 메뉴로 전어만큼 좋은 건 없어 보였다.


동네에서 몇 년째 꾸준히 장사가 잘되고 있는 횟집으로 향했다. 저녁 바람이 차가워지면서 회를 찾는 손님이 늘어난 것인지, 평일이건 주말이건 웨이팅은 필수로 해야 할 만큼 인기가 좋은 그곳에서 전어를 먹기로 했다. 작년에도 이곳에서 먹은 전어가 썩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한몫한다. 약간의 대기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과 안내받은 테이블에 앉아 전어회 한 접시와 광어, 우럭 등의 모둠 한 접시, 약간의 술을 시켜 기다렸다. 고대하던 전어였던 만큼 기다리는 시간 내내 들뜬 기대가 가슴을 펌프질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약간 도톰하게 썰린 전어회와 모둠회가 나왔다. 


올해 첫 전어회의 맛은 어떨까. 기대감을 가득 품고, 한 점을 들어 입에 넣었다.


한데, 생각보다 식감이나 고소한 맛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뼈를 씹을 때 느껴지는 고소한 맛이 예년에 비해 확실히 덜했다. 함께 먹던 친구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모두 하나 같이 역시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역시 좀 더 있어야 하나 봐. 좀 더 맛 들었을 때 다시 오자"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지금은 지금 대로의 맛으로 그 술자리를 마무리 짓고 헤어졌다. 그리고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돌아가는 길, 아쉬웠던 전어의 맛을 떠올렸다. 새삼 '제철'이란 단어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괜히 있는 말은 없는 듯했다. 제철이라 이름 붙은 음식의 맛이 평소와는 다른 특별함을 발한 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했다. 동시에 우리의 타이밍이 이번에는 조금 엇나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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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과 시간의 어느 부분을 의미하는 '때'라는 단어가 있다. 어느 순간을 짚어야만 타이밍과 때가 맞다고 말할 수 있는지, 결과를 두 눈과 피부로 겪지 않는 이상 절대로 알 수 없는 딜레마의 정점에 있는 이 두 단어는 음식에 붙어 '제철'이라는 이름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제철이라는 이름을 앞에 붙인 음식은 "바로 이때가 가장 맛있는 순간"이라는 푯말을 내건 것과 다름없다. 가을 전어와 추석의 홍로사과. 연시와 대봉감, 굴, 대하, 게 기타 수많은 음식과 식재료들이 계절과 달을 푯말 삼아 자신의 타이밍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확실히 음식만큼 그 타이밍과 때를 명확히 통보하는 것들이 없다. 


반면, 삶은 어떨까? 야박하기 그지없다. 살면서 사랑하며, 일하며 꿈을 꾸고 시도하는 모든 순간이 '타이밍'과 '때'를 요하지만, 그런 중요도와 달리 삶은 어떠한 순간도 우리에게 귀띔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예상하고 짐작하며 실행에 옮길 뿐이고, 기특한 모습이기는 하나 대체로 억측이 되어 빗나가기 일 쑤다.


일러주면 좋을 텐데. 그럼 그 많던 오해들을 풀 수 있었고, 애초에 오해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던 이에게 전한 고백을 물러, 그의 마음에 내가 좀 더 쌓였을 때 다시 시도했다면 좀 더 나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고, 꿈꾸던 일을 위해 시도하던 일 중 망설였던 부분을 후회 없이 다 내던졌다면 결국, 쟁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놓친 순간과 아쉬운 순간들을 후회해도 삶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조금의 부조리도 없이 우리의 행보를 그저 관조한다.


좋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자식은 늘 어리광 부리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살아가니 말이다. 부모의 첫 번째 덕목은 자식이 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자립심을 길러주는 것이니, 이를 위해 삶은 전적으로 관조 것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못내 밉고 아쉽더라도 우리는 겸허히 이를 알고 수긍해야겠다. 유일하게 음식에만 허락된 때와 타이밍을 만족으로 삶도 겸사겸사 수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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