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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05. 2021

시골을 잃은 날

얼마 전 한 공모전에 글 한 편을 써서 보냈다.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서 혹은 격전산 연재나 청탁을 받아서 팔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면 나의 글을 어딘가로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런 생경한 일을 얼마 전에 했다.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경쟁과 평가를 감수해야 하는 공모전에 글을 보내지 않던 이유는 명확한데, 그걸 무시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평가가 무서워서 하지 않던 일을 문득 하던 날, 그저 나는 시골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어딘에든 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때론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이기에 가능해지는 넋두리가 있다. 시골을 잃어버린 일이 내심 나의 탓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래서 누구에게도 선뜻 말할 수가 없어서 나는 그 공모전을 넋두리할 곳으로 정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글에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가 온전한 정신일 때 선택했던 일. 바로 홀로 지켰던 우리의 집을 허물기로 한 결심이 실려있다. 아래는 그 글에 일부이다.


“할머니가 치매를 진단받고 불과 2~3년 만에 무너진 건 지독한 외로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가족의 방문은 아주아주 드물었다. 그런 와중에 집 곳곳에는 여전히 작고하신 할아버지와 어렸던 손주들의 흔적이 그대로 있으니, 홀로 남은 노인이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는 건 무리였을 것이다. 홀로 그 집을 16년이나 지키신 것 자체가 이미 초월적인 일이었다.”

unsplash

할머니가 스스로 집을 허물고 여생을 병원에서 보내기로 결심한 건 모두 무능한 자식들과 손주들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결국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였다. 그 글에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 실려있다. 어디에도 말하기 힘든 명백한 죄가.


그럼에도 말하고 싶어서. 털어놓고 마음을 조금이나마 환기시키고 싶어서 나는 나를 모르는 공모전에 그 글 보냈다. 그리고 원본을 삭제하고 보낸 이력을 지웠다. 그 글을 읽을 누군가는 나를 죄 많은 사람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할머니를 외롭게 만들고 시골이 사라지는 걸 손놓고 지켜보기만 한 한심한 사람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안녕하세요. 전성배입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던 비가 물러가고 어제부터 하늘이 참 맑습니다. 햇볕은 여전히 여름처럼 따갑지만, 바람은 가을처럼 불어서 어제부터는 그냥 나리에게 가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낮에는 너무 뜨거워서 아주 작게 발음해야 하지만, 아침저녁에는 명료하게 가을을 말합니다. 앞으로는 명료하게 가을을 말하는 날이 점점 더 늘어갈 것입니다. 그러다 10월이 되면 가을 외에는 여름도 겨울도 말할 수 없을 테고요. 그런 의미로 10월에는 당당히 ‘가을호’를 연재해볼까 합니다. 지난 봄호와 초여름호에 이어 2021년 세 번째 연재인데요. 원래는 조금 더 빨리했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계간지로 성격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시간을 여유롭게 가져야 쓸 수 있는 체질이라, 이 시간을 기다리다 보니 조금 늦었습니다.


기다리시게 한 만큼 좋은 글은 모르겠지만, 성실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럼 가을호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아래에 신청 링크를 달아두겠으니 많은 클릭과 터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는 가을을 말하고 싶은 전성배가-

https://forms.gle/NRFEmjrWhsqgToAQ8




전성배 田性培

aq137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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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 농산물 에세이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 과월호 / 연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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