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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10. 2021

슬이에게는 슬이만의 중력이 있다.

누군가는 자신만의 중력을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원래는 일회성으로 끝날 관계도, 몇 번을 더 만나다 시들해질 관계도 ‘그’가 있다면 영원에 가까운 무언가가 된다. 아싸 기질이 다분한 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싸가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력은 섬세하면서도 여린, 외로운데 외로운 것을 숨기지 않는 조금은 낯간지러운 당당함을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친구인 슬이가 해당된다.


슬이에게는 슬이만의 중력이 있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에는 "모래에게는 모래만의 중력이 있었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카페나 집에 틀어박혀 글만 쓰다가 이십 대의 끝을 보냈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은 데면데면한 삼십 대도, 자주 상상해 보는 사십 대도 어딘가에 틀어박혀 글만 쓰며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태생이 누군가와 연결되는 걸 꺼려 해서 그럴까 싶지만 아니다. 되레 사람을 만나면 또 잘 즐기는 성격이다. 정확히 나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일들을 잘하지 못해 사람을 오래 사귀지 못한다. 꾸준히 안부를 묻고, 한번씩 시간을 맞춰 만나는 날을 정하고, 약속의 날에 장소로 향하는 그 모든 수고 아닌 수고를 나는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슬이는 다르다. 먼저 안부를 묻고 시간을 조율하고 장소를 정한다. 교점이 있는 사람들을 멤버로 구성해 특이사항을 수시로 공유하고, 축하할 일과 슬퍼할 일을 구별하지 않고 살뜰히 챙긴다. 그 덕분에 나는 평소에는 잘 연락하지 않는 친구들의 소식을 알고, 그들과 꾸준히 만남을 갖는다.


물론 슬이의 그런 오지랖과 추진력이 거북하던 때도 있었다. 내가 관계에 소홀했던 것은 한편으로 홀로 보내는 시간을 싫어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나름의 매력과 필요성을 느껴 잘하지 못하는 걸 굳이 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슬이는 자꾸 빛을 비추고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문밖으로 끄집어 내려 하니, 슬이를 아주 멀리하려고 마음먹은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슬이가 가진 중력이 외로움 때문이라는 걸. 사람이 고파서 그렇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적어도 슬이를 멀리하지는 않기로 했다. 빛을 받고 귀를 기울이고, 이끄는 손을 따르기로 했다. 슬이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슬이의 중력에 나는 세상과 주기적으로 연결된다. 생각해 보면 너무도 고마운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하는 순간은 살면서 한번씩 오기 마련이지 않은가. 이토록 편하게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 비겁하다고 자책해도 모자를 판이다.


새삼 슬이의 중력을 그려보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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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田性培

aq137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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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 농산물 에세이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 과월호 / 연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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