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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20. 2021

12년 전 가을에는

좁게 열린 창문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던 바람을 상상한다. 그곳에는 교실이 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의 땀내로 가득하던 교실은 이제 바람을 타고 들어온 옅은 풀내음에도 쉽게 냄새가 바뀐다. 막바지 수업을 시작한 선생님의 목소리는 그날따라 조금 멀리서 들려오듯 아득하고, 창밖은 낙조가 끼려는지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멀리서 들리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이 느껴진다. 창문으로 향하고 있다. 선생님은 좁게 열린 문틈에 손을 걸더니 바람이 들 자리를 넓힌다. 교실은 이내 창밖에서 들어오는 온갖 냄새와 소리로 학생들의 냄새와 소리를 지운다. 12년 전 가을의 모습이었다.


올해는 가을이 꽤나 늦어 낮에는 여름처럼 뜨겁지만, 그래도 가끔씩 가을바람이란 것이 분다. 그리고 나는 그 바람을 맞을 때마다 12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나와 내가 머문 교실을 떠올린다. 9교시를 마칠 때쯤이면 붉은 기운이 감돌던 저녁과 당번까지 끝내면 완전히 붉어진 하늘을 마주해야 했던 순간. 아직은 하복 차림인 나의 팔뚝을 시리게 스치던 바람을 나는 서른이 넘어서도 명료하게 기억한다.


봄과 여름, 겨울을 보내던 고교 시절도 생생히 기억한다. 일 년 내내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이었지만, 계절에 따라 하는 일과 모습은 분명 달랐다. 여름에는 운동장과 더 자주 만났고, 겨울에는 교실을 더 자주 끼고 살았다. 봄에는 꼭 학교 앞 벚나무 아래 앉아 싸구려 하드를 빨아먹었고, 가을에는 창틀에 턱을 괴든 운동장 한편에 마련된 벤치에 앉든 해서 가을을 가슴 끝까지 호흡했다. 들숨과 날숨의 간극을 최대한 벌려서 아주 많이 삼키고 조금 뱉었다.


일 년 일 년을 이렇듯 명확히 계절을 그리며 살았고, 그런 날들이 모이니 12년에 달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12년으로부터 정확히 또 한 번의 12년이 흘렀다. 그간 나는 아주 불분명한 계절을 보냈다. 앞으로는 분명하게 계절을 그렸던 날들을 그러지 못한 날들이 추월해 내 안에 쌓여갈 것이다.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계절을 기억하는 날들이 더욱 늘어갈 것이란 의미이다. 죽어가는 환경에 의해서건 살아간다 말하지만 실제론 죽어간다 말해야 하는 바쁜 삶에 의해서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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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田性培

aq137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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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 농산물 에세이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 과월호 / 연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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