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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와 굴참나무

연작동화

by 예원 양윤덕

나는 노태산 근처를 떠도는 들고양이, 점순이예요.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나는 노태산 둘레길을 거닐다가 산기슭에서 굴참나무를 발견했어요. 태풍 전만 해도 촘촘한 가지와 푸른 잎들로 무성했던 나무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상처투성이였어요. 부러지고 꺾인 가지들, 찢긴 몸통이 마치 생명이 끝난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굴참나무는 멈추지 않고 흔들리고 있었어요. 마치 온몸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듯했어요. 그때였어요. 나무에서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이자, 굴참나무가 혼잣말을 하고 있었어요.

“이 비열한 태풍아! 아무리 날 할퀴고 찢어도 나는 쓰러지지 않아. 처음엔 부드럽게 다가오더니, 결국 이렇게 날 망가뜨렸구나.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굴참나무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어요. 하지만 이내 나무는 가지를 모으며 하늘을 향해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운명의 신이여, 제 간절한 외침을 들어주세요. 이렇게 부서진 몸으로도 다시 일어서려는 제 노력을 외면하지 마세요. 한 번의 삶으로 제가 꿈꾸는 거목이 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세요. 저를 끝까지 살아남게 해 주세요.”

굴참나무는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목소리로 간절히 외쳤어요. 상처 입은 가지가 떨리면서도 꿋꿋이 하늘을 향해 뻗었어요. 그 모습을 바라보니, 주변의 다른 나무들도 눈에 들어왔어요. 쓰러진 나무들, 옆 나무에 기대어 있는 나무들, 상처를 견디며 버티는 나무들…. 모두 태풍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어요.

나는 조용히 굴참나무에게 다가가 속삭였어요.

“굴참나무야, 너의 아픔은 강해지기 위한 흔적일 거야. 넌 반드시 다시 자랄 거야. 언젠가 커다란 거목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그늘을 내어줄 날이 올 거야.”

내 말을 들은 듯, 굴참나무는 가지를 살짝 흔들었어요. 잎사귀들이 팔랑팔랑 춤추는 모습이 마치 희망의 몸짓 같았어요.

그날, 나는 굴참나무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나 역시 태풍 같은 시련을 견디며 살아왔다는 것을. 굴참나무와 나는 서로를 이해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버텨나갈 거예요.


다시 피어나는 숲


그 이후에도 나는 종종 굴참나무를 찾아갔어요.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갈수록 마음이 끌렸어요. 나는 숲을 떠돌아다니는 들고양이지만, 굴참나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굴참나무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어요. 부러진 가지들은 점점 말라갔고, 찢긴 몸통은 껍질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났어요. 어느 날, 나는 굴참나무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물었어요.

"굴참나무야, 정말 괜찮은 거야?"

그러자 굴참나무는 나지막이 대답했어요.

"아직 아파… 바람이 내 몸을 찢어 놓은 자리가 욱신거려. 하지만 난 견딜 거야.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새싹이 돋아날 테니까."

나는 굴참나무를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내 몸에도 수많은 흉터가 있었어요. 나는 길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웠고, 때론 배고픔과 추위를 견뎠어요. 굴참나무가 말하는 ‘견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도 잘 알고 있었어요.

첫눈이 내리던 날, 기적이 시작되었어요.

어느새 겨울이 깊어지고, 숲은 온통 하얗게 덮였어요. 나는 굴참나무를 찾아갔어요. 차가운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흔들렸지만, 그곳엔 새로운 생명의 흔적이 있었어요.

“굴참나무야, 네 몸에서 싹이 돋아났어!”

나는 흥분해서 소리쳤어요. 바싹 말라버린 가지 끝에서 아주 작은 새순이 움트고 있었어요. 비록 겨울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새로운 시작이었어요.

굴참나무는 잎이 없어서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나는 왠지 그가 미소 짓고 있다고 느꼈어요.

"봐, 점순아. 겨울 속에서도 생명은 자라고 있어."

나는 조용히 굴참나무의 몸에 몸을 기댔어요. 차가운 나무껍질이지만, 이상하게 따뜻했어요.

그날 이후, 숲속 친구들도 하나둘씩 굴참나무를 찾아왔어요. 다람쥐 토돌이는 말했어요.

"여기서 도토리를 묻어도 될까? 네 뿌리가 따뜻할 것 같아."

어치 한 마리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았어요.

"봄이 오면 여기 둥지를 틀어도 될까?"

굴참나무는 흔들리는 가지로 대답했어요.

"모두들 와도 좋아. 함께하면 더 튼튼해질 거야."

그리고 마침내 봄이 왔어요.

나는 다시 굴참나무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어요. 겨울 내내 앙상했던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새잎들이 돋아나고 있었어요.

나는 웃으며 굴참나무에게 속삭였어요.

"넌 정말 강한 나무야. 이 숲에서 가장 멋진 거목이 될 거야."

굴참나무는 조용히 가지를 흔들었어요. 그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고, 햇살이 가지 사이로 따뜻하게 스며들었어요.

이제 굴참나무는 다시 자라날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 곁에서 변화를 지켜볼 거예요. 우리가 함께 겪은 모든 시간들이 이 숲을 더 아름답게 만들 테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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