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
윤이와 두 번째 만남의 달이다.
우리의 만남에는 또 술이 함께 했었고 평소 술을 좋아하던 나에겐 그저 좋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윤이가 술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오랜만에 만나서였을까, 날씨가 좋아서 그랬을까.
우리는 취기가 돌고 있음에도 술잔을 들어 이 밤을 적셔갔다.
이미 둘 다 취해 있었고 대화 중에 이상형 얘기가 나왔다.
우리는 서로 이상형에 대해 얘기해 줬고 서로의 이상형에는 서로가 자그맣게 섞여 있었다.
그러다 윤이는 취해서였을까 아니면 마음 안에 있던 작은 불씨를 꺼내 버렸던 걸까
”나 너 좋아해 “라는 말을 뱉어 버렸고
그 불씨는 나의 마음속에 그대로 옮겨 붙었다.
그리고 그녀는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다음날
우리는 다시 만났지만 윤이는 그날 일을 기억 못 한다고 했었고 나는 애써 꺼내지 않았다.
실수겠지 라는 생각으로 덮으려고 했었지만 마음속의 작은 불씨까지는 꺼트리지 못했다.
윤이는 곧 출장을 가야 한다며 타 지역으로 떠났다.
우리는 어느새 전화도 하고 있는 사이가 되었고 윤이가 타 지역에 있는 동안
마치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썸처럼 다음날에 피곤할걸 알아도 서로가 끊기 아쉬워 새벽까지 몇 시간이고 통화를 하였다.
우리는 정반대의 사람이고 다른 점도 많았지만 대화를 할수록 서로가 통하고 잘 맞는 점도 많았다. 그런 서로가 신기했고 재밌었고 서로가 다른 걸 틀린 거라 하지 않고 다른 점을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는 게 우리의 큰 장점이었다.
통화를 오래 하니 많은 얘기들이 나오고 그 많은 얘기들은 더욱 깊숙이 들어가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썸을 타고 있었다.
윤이가 드디어 출장에서 돌아오고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일반 연인들처럼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고, 바닷가 산책도 하며 우리 안의 불씨들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우리의 데이트 안에는 항상 책이 함께 있었다.)
바닷가 산책을 하던 날 처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봤고 심장이 터질 거 같았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걷고는 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오르지 내 신경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내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다 윤이의 손이 차갑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열이 많은 나에겐 그게 안심이 되었다. 내가 녹여줄 수 있구나. 이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기뻤다.
그리고 나의 더웠던 여름이 그녀로 인해 조금은 시원해지겠다는 생각 또한 우리가 잘 맞는 이유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달은 커다란 레드문이었고, 하필 들려오던 음악도 데이먼스이어-josee!
모든 게 황홀하기만 하던 그날밤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