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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마표류기 Sep 20. 2021

말 사귀기 17

31. 방심은 참사


겨울이라 그런지 아침에 걸어오는데 땅은 다 얼어 있고 어제 내린 눈이 군데군데 녹지 않고 남아있네요.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 줍니다. 콧구멍으로 찬바람이 들어가면 예민한 동물인 말은 쉽게 흥분합니다. 추운 날엔 사람도 움츠러드는데 맨몸으로 밖에 나오는 말은 짜증이 

날 것도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날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원래는 마방 굴레를 벗기기 전에 로프 등의 끈으로 말의 앞쪽에 차단 끈을 묶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그래야 안장도 채우고 굴레도 씌우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오늘처럼 말이 튀어나가는 경우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아, 다시 생각해 봐도 끔찍한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초 지경을 설명하자면 평소에는 굴레나 안장을 씌우기 전 수장용 로프를 말 앞쪽에 연결해 간이 울타리처럼 만드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약간 늦게 나온 탓도 있고, 빨리 타고 싶은 욕심과 평소 수장할 때 얌전했던 말에 대한 믿음으로 방지 울타리를 만들지 않고 마방 굴레를 벗겼습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옆에서 수장하고 있던 다른 말이 추워서 ‘푸르륵’ 떠는 게 아닙니까? 그러자 놀란 내 말이 뛰쳐나가 버렸습니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제가 당황해서 안장을 잡은 채로 약 5m 정도 끌려갔었습니다. 옆에 있던 부교관님들이 놀라 위험하니 빨리 손을 놓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상황에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는 말발굽 소리까지 더해져 정말 공포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뛰쳐나가던 말이 갑자기 멈췄습니다. 하지만 나는 고삐도 없이 말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 고심하고 있는데, 부교관님이 옆에서 얼른 마방 굴레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조심스레 말에게 다가가 한쪽 앞발을 들어 올렸지요. 옳지, 저러면 말이 가만히 있겠구나. 사실 말에 굴레도 못 씌운 상태여서 갈기* 빼곤 온몸에 잡을 데가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발을 드는 건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무튼 나는 마방 굴레를 가져와 말이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가서 착용시켰습니다. 부교관님이 들었던 앞발을 내려놓으며 큰일 날 뻔했다고 말씀하시네요.

그리고 만약 고삐라도 어설프게 걸려 있었다면 말이 달리다가 다리가 고삐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다른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바닥에 얼음이 있거나 미끄러운 시멘트 바닥이 많은 마장에선 말이 미끄러지거나 다른 물체와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그보다 더욱 위험했던 것은 당황한 제가 안장을 잡고 말을 따라간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실제로 뛰쳐나가는 말을 잡아보겠다고 옆에 있는 등자를 잡아당기다 사람이 같이 엉켜 끌려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말이 뒷발로 차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요.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 갈기: 말의 목덜미에 난 긴 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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