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기다려 네덜란드

4. 딸 노릇 엄마 노릇

by 글마중 김범순

- 암스테르담 중심부 담 광장에 위치한 왕궁-

지하 손님방에는 딸 친구가 묵고 있어 작은 손녀와 자고 아침 여섯 시에 눈을 떴다. 발목에서 번개가 치고 다리를 뻗는 족족 쥐가 났다. 아침 일찍 딸과 사위, 작은 손녀, 딸 친구와 시내 나들이를 한다고 했다. 누워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가 언제 또 유럽에 오겠나 싶어 군소리 없이 따라나섰다.


구시가지에 있는 딸네 집에서 신시가지로 가는 길가에 연두색 나뭇잎이 춤을 추고 멀리 보이는 가로수 새잎이 붉은색을 띠고 있어 아주 아름답고 이채로웠다. 암스테르담 왕궁 앞에 다다랐다. 어깨띠를 두른 사람들이 목청껏 시위를 하고 있었다. 신이 정치를 해도 불만이 생길 텐데 하물며 사람이 하니 오죽하겠는가.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치즈 가게를 들렀다. 일요일이라 발 디딜 틈이 없어 서둘러 온 거라고 했다. 사위가 여러 종류의 시식용 치즈를 권했다. 각각 고유의 풍미가 다른 것이 신기하고 아주 맛있었다.

- 공들인 건축물 풍모를 자랑하는 치즈 가게 입구 -

무한 시식이 허락된 가게였다. 하지만 사지도 않으면서 마구 먹을 수는 없어 어정쩡하게 체면을 차리고 있는데 딸과 딸 친구가 잔뜩 구입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면야! 그때부터 종류대로 마음껏 먹었다.

겨자 소스가 유별나게 맛있다고 했더니 사위가 얼른 샀다.

너무 흐뭇하고 더없이 행복했다.


딸 친구는 쇼핑을 하러 가고 딸과 사위, 작은 손녀와 감자튀김을 먹으며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거리로 갔다. 킹스데이에 입을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오렌지 색 티셔츠와 머리띠를 샀다. 맥도널드, 스타벅스 등 낯익은 간판이 보여 반가웠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건물 모양이 다 다르고 건물 꼭대기에는 도르래 고리가 달려있었다. 중세 때 네덜란드는 현관문 넓이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다. 절세하려고 집 지을 때 문 폭을 좁게 짓고 피아노나 커다란 가구 운반하기 위해 건물 꼭대기에 도르래를 설치했다.


맛있기로 소문난 팬케이크 집에 들렀다. 천장화와 벽화가 예사롭지 않아 유서 깊은 가게라는 것이 피부에 와닿았다.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 아시아 ← 대한민국 ← 대전. 거리가 멀뿐 아니라 70넘은 내가 언제 또 유럽에 와 보겠나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차곡차곡 뇌리에 저장했다. 그러고도 스스로의 기억 저장 능력을 믿을 수 없어 열심히 핸드폰에 기록했다.

- 반 고흐 전시장 같은 2층 -

소문대로 팬케이크는 맛있었다.

팬케이크집을 나와 부근에 있는 초콜릿 가게로 갔다.

- 초콜릿을 직접 사거나 만들기도 하고 게임머신으로 구매하는 독특한 시스템이었다 -

- 왕궁 부근 혼잡한 골목. 건물 꼭대기에 있는 도르래 고리-

- 왕궁 부근 건물의 기품 있는 입구 -

- 왕궁 부근 아름다운 건물 외관 -

- 왕궁 부근 골목 부조가 멋진 건물 -

- 왕궁 부근 쇼핑센터 루이뷔통 구조물. 못을 저렇게 멋지게 형상화하다니 -

- 루이뷔통과 같은 건물 폭스바겐 조형물도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딸과 사위가 멋진 정장과 구두를 선물했다. 해준 것 없는 엄마이자 장모인데 받기만 해서 몹시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솜사탕처럼 복잡하게 엉키며 부풀어 올랐다. 내 옷을 구매한 쇼핑센터에 신라 매장이 있었다. 동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일본과 한국 식료품점이라고 씌어 있어 기분이 확 가라앉으며 좀 그랬다. 우리나라 상호니까 한국과 일본 식료품점이라 해야 마땅하지 않나.

"엄마, 너무 섭섭해하지 말아요. 네덜란드는 일본과 친교가 두터워 한국인보다 훨씬 많이 살아요. 그래도 식품은 거의 한국 거만 팔아서 우리가 잘 이용하고 있어요."


저녁은 큰손녀가 유별나게 좋아하는 한식을 먹기로 했다. 손 빠른 딸은 금방 시원한 콩나물국과 계란찜을 만들고 네덜란드에서 뜯어 담갔다는 명이나물 장아찌를 내왔다. 사위가 그릴에 돼지고기를 굽고 내가 가져온 제주 고사리를 불려 볶고 데친 엄나무 순과 황석어젓 무침을 곁들여 푸짐한 저녁상을 차렸다.

나는 쇠고기를 좋아했다.

기대감 없이 사위가 그릴에 구운 돼지고기를 한 점 집어 먹었다.

와 -!

눈이 번쩍 떠졌다.

“맛있어, 맛있어.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고 향기롭고 깊은 감칠맛이 나지?”

“방목하면서 도토리를 먹여 키운 이베리코 돼지고기예요. 맛있기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특히 제가 트러플 소금을 적당히 뿌리면서 잘 구워서 그렇습니다.”


후식은 과일과 사위가 출장길에서 사 왔다는 레이디엠 케이크였다. 암스테르담에는 레이디엠 매장이 없어 홍콩에서 사가지고 모양이 흐트러질까 봐 비행기 안에서 상자를 놓지 못하고 들고 있었다고 했다.


목이 말라 새벽 3시에 잠을 깼다. 주방에서 물을 마시다 보니 뒤채 작업실이 환했다. 다음 날 제출해야 하는 큰손녀 작품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큰손녀 옆에 딸도 있었다. 세계 어디서나 고2 자식을 키우는 엄마 모습은 다 저런가 싶어 대견스러우면서도 짠해서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나까지 챙기느라 피곤할 텐데 딸은 엄마 노릇도 하느라고 5시까지 함께 있어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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