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기다려 네덜란드

5. 운하와 자전거의 도시 암스테르담

by 글마중 김범순

- 푸른 선이 운하. 암스테르담은 물의 도시 -


재택 근무일인 사위는 새벽에 일어나 일을 마치고 딸과 딸 친구와 함께 시내 구경을 하자고 했다.

기침을 많이 해서 목이 아프고 온몸에 납덩이를 감은 것처럼 무거웠지만 냉큼 따라나서기로 했다.

"엄마, 로열 인더스트리얼 클럽 갈 거니까 새 옷에 구두 신고 최대한 예쁘게 꾸며요."


하루 평균 기온이 한국보다 5도 정도 낮은 네덜란드는 날씨가 변화무쌍했다. 문을 여니 비바람이 몰아쳤다. 멋 내다 얼어 죽을 것 같아 딸의 패딩을 얻어 입고 목 끝까지 지퍼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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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을 타고 캐모마일 차를 마시며 전날 보았던 건물들을 물 위에서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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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이 살짝살짝 기울어 춤추는 것 같은 댄싱 하우스 -

- 나뭇잎이 우거지면 더 예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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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 선장이 말했다.

“저기를 보세요. 빨간 벨벳 커튼 드리워진 건물에 공주가 살아요. "

성격 좋고 정 많은 공주는 국민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 어쩌면 여왕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중앙역 왼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등가였다. 홍등가 창문에도 빨간 커튼이 드리워 있었는데 공주 방 커튼보다 질이 낮고 빨간색이 지나치게 선명해 무게감이 없었다. 네덜란드는 포주가 여성의 성을 팔고 남성이 성을 사는 것을 국가가 합법 또는 묵인하는 대신 등록 및 강제 성병 검진을 법으로 관리하는 공창제를 시행하고 있다. 마리화나도 허용해서 혼잡한 도심에서도 담배와 마리화나를 거리낌 없이 피웠다.


암스테르담은 운하와 비와 바람과 자전거가 많았다.

그리고 튤립꽃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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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튤립꽃도 많았다.






딸과 큰 손녀에게 피아노를, 작은 손녀에게 첼로를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을 만났다. 음악 선생님은 로열 인더스트리얼 클럽 회원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동반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설계한 사람이 로열 인더스트리얼 건물도 설계했다고. 입구부터 남달라 아무나 드나드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 웅장했다.

- 남다른 위용을 자랑하는 입구-

-바로크 시대 건축물 특징을 살린 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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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뼈 장식장 -

- 이층에 있는 응접실 -

- 2층 난간에서 본 예쁜 등 -

- 달팽이 요리. 달팽이는 기대했던 것보다 맛이 없었다 -


중국인 음악 선생님은 10살 때 김정일을 만났다고 했다. 1984년 중국 후진타오 주석 시절 북한과의 친교를 도모하기 위해 순회공연 사절단으로 국경열차를 타고 간 것이다. 열차 타기 전 김정일과 김일성 부자에 대해 농담도 하지 말라는 주의를 단단히 받았다. 20명 사절단에는 20명의 통역 자가 붙어 철저히 감시했으며 짐을 모두 체크해 소형 게임기도 압류하고 21일 간 머물던 호텔에는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북한은 무기 개발하느라 가난해서 설탕 배급도 어려웠고 고기 배급은 1년에 4번밖에 하지 못했다. 이동하는 길가에 7-8세 정도의 아이들을 동원하여 북을 치며 몇 시간씩 환영인사를 시켰다. 첫날 선물 두 상자를 받았다. 기념품과 품질이 아주 나쁜 사탕이었다. 사절단들은 사탕이 맛없어 북한 아이들에게 주었는데 처음 본다며 신기해해서 저렇게 못 사는 가 하고 깜짝 놀랐다.


선택받은 아이들은 평양 소년 궁에서 피아노 교습을 받으며 잘 먹고 잘 자라 사절단과 키가 비슷했다. 하지만 길가의 아이들은 모두 10살짜리였지만 못 먹어서 키가 안 자랐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 아팠다고 했다. 중국인 선생님은 전해에 가보고 싶던 스위스도 갔다 왔다. 지금부터 40년 전에 벌써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을 정도로 발달한 스위스를 봐서 북한의 빈곤에 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식사를 하며 딸이 말했다.

“내 꿈은 한국인 최초로 로열 인더스트리얼 클럽 회원이 되는 거야.”

“그럼 그럼. 너는 꼭 그렇게 될 거야!”

나는 딸을 믿었다.


내가 계산하겠다고 하니까 딸 친구와 음악선생님이 아주 고마워했다. 식사 후 화장실을 다녀와 카운터로 가니 사위가 이미 계산을 마쳤다. 생색만 내고 뒤로 빠지는 전형적인 사기꾼 모습을 보인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사위한테 사과했더니 직원이 계산서를 들고 와서 일이 그렇게 되었다며 장모님이 할 일을 가로챈 격이 되어 오히려 미안하단다. 사위 인품이 돋보였다.


저녁은 집에서 먹는다고 했다. 딸은 오후 7시가 넘어도 저녁 지을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때 벨이 울렸다. 커다란 가방을 든 왜소한 일본 남자가 웃으며 들어왔다. 배달 음식이 온 줄 알았다. 남자는 가방 안에서 냄비와 도마와 칼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정성스럽게 세팅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놀랍고 신기했다. 네덜란드는 음식 값이 비싸서 차라리 요리사를 집으로 부른다고 했다. 남자는 일식 요리사였다. 즉석에서 초밥이 만들어졌다. 신선하고 맛있었다. 회를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까지 완전히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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