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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죽을 권리 07화

죽을 권리

13. 밥

by 글마중 김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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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중심가 식당


K의 형수는 하루에 한 번씩 너의 세끼 밥을 만들어 왔다.


사교성 좋은 K의 형수는 올 때마다 6인실로 놀러 갔다. 네가 은행에 가려고 부르러 갔더니 K가 형수인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줌 마렵다고 생식기를 이렇게 만지더라고 흉내 내며 보호자들과 깔깔거렸다.


굉장히 기분 나빴다.


매일 가져오는 밥은 젖도 떼야하고 바쁘기도 해서 삼분의 1밖에 먹지 못했다. 차라리 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K의 형은 매일 아침 6시에 전화를 했다. 조금 늦게 받으면 하는 일도 없으면서 왜 빨리 안 받느냐고 화를 냈다.


기가 막혔다.


너는 밤 12시 반에 잔다. 2시에 일어나 가래 뽑고 소변 주머니 비우고 자다가 3시 반에 일어나 K가 편하게 숨 쉬게 가래 뽑고 다시 죽은 듯이 자고 아침 5시에 아주 일어나 일과를 시작했다.


너는 눈 뜨자마자 기계적으로 가래부터 뽑고 젖 짜내고, 소변 주머니 비우고, 면도해 주고, 물수건으로 거구의 K 몸을 닦고, 기저귀와 침대 시트 갈고, 관절 운동해 주고, 주사기로 유동식과 약을 주입하고, 약국에 가서 약 사 오고, 약제실에 가서 정제 약을 가루로 갈아오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K의 형은 전날보다 어떤 점이 얼마나 어떻게 나아졌느냐고 물었다.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하면 꼼꼼하게 살피지 않고 뭐 했느냐고 몰아세웠다. K의 형은 30분 넘게 궁금증이 다 풀리고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계속 너를 닦달했다.


동생을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겠으나 이건 아니었다. 너는 아침마다 고문당하는 것 같았다.


아침에 전화벨이 울리면 K도 에이씨! 하고 화를 냈다.


너는 K의 형과 형수가 몹시 부담스러웠다.


5월 29일 산소마스크를 제거했다. K는 온종일 손을 묶지 않아도 코에 있는 튜브를 빼지 않았고 기분 나쁘면 혀도 찰 줄 알았다.


5월 30일 오후 K에 목에 달았던 고정쇠를 뽑아내고 가제를 붙였다. 가래가 끓으면 가제를 잠시 떼고 석션 기로 뽑아냈다.


저녁에 화장실에서 젖을 짜고 있는데 K가 이잉! 이잉! 하고 불렀다. 변비 때문이겠지 싶어 마무리까지 다 하고 갔더니 K의 자세가 조금 이상했다. 얼른 홑이불을 젖혔다.


놀랍게도 K는 오줌이 가득 찬 비닐 튜브를 빼서 손에 들고 있었다. 스스로 오줌 누었다고 자랑하는 것이었다. 너는 환호했다.


5월 31일 오전 소변 비닐 튜브도 제거했다. 이제 튜브 대신 플라스틱 소변기에 오줌을 누게 된 것이다.


K는 입원 후 처음으로 병원 바지를 입었다. 바지 입는 게 이토록 기쁜 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주치의가 보리차 먹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흘려 넣을 때마다 사레가 들려 무지막지하게 고생했다.


날마다 똥을 파냈더니 항문이 빨갛게 부었다. 깜짝 놀라 카네스텐 연고와 베이비파우더를 사다 발랐다. 다행히 금방 가라앉았다.


6월 2일 아침 주치의가 고정쇠 끼웠던 자리에 새 살이 차올랐다며 커다란 반창고를 붙였다. 이제 직접 가래를 뱉을 수 있을 만큼 회복한 것이다.


K는 왼손으로 오른손에 공을 쥐여주고

눈곱도 떼어 보고

온 얼굴을 쓸어 보고

머리도 여기저기 긁어 보았다.


오후 내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계속 괴로워하며 혀를 찼다.

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어디가 많이 아파?”

K는 오른 팔다리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몸 반쪽이 마비된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얼마나 기막히고 절망스러울까?


네가 위로했다.

이 세상에 당신처럼 위대한 사람은 없어.

당신은 기적을 일으켰으니까.

다른 사람 같았으면 병난 날 죽었지.


유독 칭찬에 약한 K였다.

그런가 싶은지 슬그머니 누그러졌다.


그런 K를 보는 네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팠다.

과연 병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날따라 더 막내가 보고 싶었다.

젖도 실컷 먹이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싶고

업어주고 싶었다.


이러지 말자!


너는 얼른 마음을 바꾸고 관절 운동을 해주며 물었다.

“여보, 정효심 씨가 누구더라?”

“엄마지.”

“여보!”

K는 서슴없이 대답하고 놀라는 너를 보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목을 소독하러 온 주치의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를 따라 해 보라고 했다. K는 그것도 못 할 줄 아느냐는 듯 싱그레 웃으며 정확하게 발음했다.


주치의가 미음과 과일즙을 먹이라며 며칠 있으면 밥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너는 또 감격했다.


밥!!

밥!!



14. 1985년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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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며느리가 만든 케이크


K가 처음으로 묻는 말에 응- 하고 대답했다. 아직 성대 기능이 덜 회복되어 힘이 없고 헝헝거렸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아침 일찍 들른 주치의를 알아보고 K가 웃었다. 주치의는 굉장히 기뻐했다. 잠 못 자면서 치료한 의사로서의 값진 보람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오전에 신경과 과장이 주치의와 인턴들을 데리고 회진 와서 K에게 물었다.

“병원에 온 지 대략 며칠쯤 된 것 같으세요?”

K는 대답하지 못했다. 과장이 목에 건 청진기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그럼 이게 뭐죠?”

청진기.

“이게 뭔지 크게 대답해 보세요!”

“청진기!”

“네, 아주 좋습니다.”


약국에 갔다 오는데 구급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응급실로 들어갔다.


누가 또 죽음의 문턱에 있구나!


너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앵앵거리는 소리가 뇌수를 흔들었다. 그때마다 병원 앞에 있는 교회 첨탑을 보며 기도했다. 저 환자도 꼭 살려주십시오!


주사기에 미음을 넣으며 K한테 물었다.

“이 주사기 용량이 30CC야. 아홉 번 먹으면 총 몇 CC 일까?”

K는 대답하지 못했다. 너는 간단하게 줄여서 물었다.

“30 × 9 = ?”

K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70!”

“그럼 3 × 9 = ?”

“70!”

너는 호들갑을 떨었다.

“K 선생님 아주 잘 맞히셨습니다. 상품으로 맛있는 과일 주스를 드리겠습니다!”


음악이 듣고 싶다고 해서 오후에 친정어머니가 라디오를 가지고 왔다. 며칠 만에 K의 형도 오고. 돌아갈 때 친정어머니가 갈게 하니까 예! 하더니 형이 간다고 하니까 응! 했다.


관절 운동을 하는데 마비된 오른발이 왼발과 똑 같이 따뜻했다. 항상 차가웠기 때문에 신기해서 발바닥을 간질였다. 어제까지 아무것도 모르더니 간지러운지 화를 냈다.


어머어머 마비된 오른쪽도 다 풀렸나 봐!


기쁨에 들뜬 너와 달리 K는 계속 괴로워하며 혀를 찼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했다.

“그럼 똥 마려워서?”

“응.”


너는 사뭇 도망가는 동물 사료 모양의 똥 덩어리 4개를 간신히 끄집어냈다. 전날은 11개.


오줌을 두 번째 싸고 화를 냈다.

“왜 그래. 오줌 싼 게 자존심 상해서?”

K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오줌 마려우면 오줌해. 따라 해 봐 오줌.”

“오줌!”

그때부터 K는 오줌이라고 의사 표시를 했다.


K는 그날 미음 270CC 물 120CC씩 네 번과 두유와 과일 주스 200CC씩 두 번 주사기로 투여했다. 자주 사레가 들어 아주 곤혹스러웠다.


기저귀 갈기와 자세 바꾸기가 전날보다 훨씬 쉬워졌다.


집 떠난 지는 몇 달 된 것 같고

병원에 온 지는 2주일밖에 안 된 것 같다.


7월 7일 K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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