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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죽을 권리 06화

죽을 권리

11. 특실

by 글마중 김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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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피카소 장소 : 파리 피카소 박물관


5월 24일 오전

주치의가 입원실로 옮겨도 된다고 했다.

날개를 단 것처럼 기뻤다.

병원에 온 지 18일 되는 날이었다.


“절대 안정이 필요한 환자라 경제적이고 조용한 2인실이 좋은 데 안타깝게 빈 입원실이 없습니다. 의료진 전원 특실을 권하고 싶은데 괜찮은가요?”


너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며칠 안정 취하다 2인실 나오면 그때 옮겨도 되니까 좋습니다.”


중환자실을 벗어났다. 깔끔하고 조용해서 아주 좋았다.


수술 후 통증으로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소리, 앓는 소리, 울음소리, 쿵쿵 쾅쾅 삑삑거리던 각종 기계 소리, 의사와 간호사가 다급한 말을 나누며 휘달리던 발소리 등등!


24시간 내내 장터보다 더 소란스럽던 중환자실에서 17일을 보낸 것이다.


입원실의 단점도 있었다.


간호사를 대신해 하루 여섯 번 코에서 위까지 삽입한 관을 통해 주사기로 유동식과 약을 먹여야 하고, 삽입한 도뇨관으로 흘러나온 오줌통을 비워야 하고, 보험 적용 안 되는 약 병원 밖 약국에서 사 와야 하고, 틈틈이 젖도 짜야하고, 관절이 굳지 않도록 팔다리 운동도 끊임없이 해야 했다.


너는 숨 돌릴 겨를 없이 바빴다.


K는 중환자실에서나 입원실에서나 똑같이 안정되어 있었다.


급한 농사일을 대충 마무리했다며 깨죽을 쑤어 들고 온 시어머니와 시숙이 입원실을 들어섰다.


K의 형은 다짜고짜 너한테 화를 냈다.

“아니, 집안 말아먹을 일 있어요. 특실이 얼마나 비싼데?”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 눈이 세모꼴로 변했다.

“하루에 을매나 하는디?”

“보험이 안 돼서 굉장히 비싸단 말이에요!”

“그려? 야가, 야가 이게 뭔 짓이랴? 먹고살 궁리는 안 하겄다 이거 아녀?”

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2인실 날 때까지 며칠 있는 거예요.”

K의 형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2인실은 무슨 얼어 죽을 2인실? 6인실이면 충분하지! 병원도 장사예요. 제수씨가 이렇게 물컹하게 시키는 대로 다 하니까 지금 바가지 씌우고 있잖아요. 왜 그걸 몰라요?”


너도 목소리를 높였다.


“과장이랑 주치의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댔다니까요!”

“그게 한몫 빼먹으려는 명분이라고요!”

“저라고 특실 입원비 안 아깝겠어요? 하지만 우선 사람부터 살려 놓고 봐야지요. K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기예요. 며칠은 여기 꼭 있어야 해요!”


“아이고 답답해 환장하겠네!”


K의 형은 가슴을 두드렸고 시어머니가 너를 다그쳤다.

“인자 K 월급도 읎을 거 아니냐? 너 시방 새끼덜이랑 굶어 죽고 싶어서 용쓰는 거냐? 정신 똑바로 차려라이!”

K의 형은 열이 치받는다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물었다.

“그 의사 놈 어디 가야 만날 수 있어요?”


K의 형과 어머니는 주치의를 찾아 나섰다. 너는 그들을 막지 못하는 무능한 네가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싫었다.


맑은 눈을 뜬 K는 지극히 평온했다.

너는 K의 평온을 깨트릴까 봐

돌아서서 창밖을 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참 만에 K의 형이 개선장군처럼 돌아왔다.


“그 의사 조져서 6인실 예약했으니까 내일 아침에 옮겨요. 돈이 썩어납니까? 이렇게 간단한 걸 왜 남 좋은 일 시키고 있어요. 나 어머니 모시고 집에 갑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주치의는 어두운 얼굴로 K를 한참 지켜보았다.

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병실 옮겼다 위독해지면 어떡하지요?”

주치의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회진이 끝나자 직원이 와서 K를 이동 침대에 옮겨 싣고 6인실로 갔다.


6인실에서 무료하게 누워있던 환자 셋과 보호자 여섯이 우르르 달려들어 K 침대를 에워쌌다.


화들짝 놀란 K는 왼손으로 침대 가장자리를 마구 흔들며 나오지 않는 고함을 계속 질렀다.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놀라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K의 얼굴과 목은 금방 벌겋게 달아올랐고 목에 끼운 고정쇠가 소리 지를 때마다 찌걱찌걱 움직여 핏물이 배어 나왔다.


네가 울먹이며 K 손을 잡았다.

K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왜? 왜? 왜?”


그러고는 침대 난간을 잡고 마구 흔들며 몸부림쳤다.


이대로 있으면 큰일 날 것 같아 이번에는 네가 다급하게 주치의를 찾아 나섰다. 중환자실부터 여기저기 뛰어다닌 끝에 신경과 연구실에서 찾았다.


“선생님, 남편이 흥분해서 난리 났어요!”

주치의가 앞장서며 말했다.

“조마조마했는데 기어이!”


주치의가 K를 보더니 이대로는 안 된다며 입원실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뛰어갔다. 한참 뒤 어깨가 축 처져 돌아온 주치의가 말했다.

“난감하네요. 특실도 없답니다!”


너는 절망했다.


주치의가 안타깝다는 듯 K의 손을 잡고 조곤조곤 말했다.

“선생님 이러시면 또 혈압 올라서 의식을 잃을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불편하더라도 조금 참고 진정하십시오!”


K는 침대 난간을 잡고 마구 몸태질 치며 소리쳤다.

“왜? 왜? 왜?”


주치의가 힘없이 나가더니 신경과 과장과 함께 돌아왔다. 신경과 과장은 묵묵히 지켜보더니 주치의에게 의학용어로 진료를 지시했다.


K는 혈압강하제와 안정제 주사를 맞고 깊이 잠들었다.


너는 복도 끝으로 나가 실컷 흐느껴 울었다.


오후 7시 넘어 시숙이 시어머니와 들어섰다. 둘은 벌겋게 부은 얼굴로 잠든 K를 보고 흠칫했으나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그거 보라고 6인실도 넓고 좋기만 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온종일 깊은 잠에 빠졌던 K가 시어머니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시어머니가 반가워하며 손을 그러잡았다. K는 이를 악물며 뿌리쳐버리고 침대를 흔들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때 주치의가 들어와 K의 형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특실이 없어서 과장님이 VIP 환자한테 사정을 설명하고 당분간 사용할 수 있게 주선해 주셨습니다. 사용하는 동안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즉시 비워줘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환자가 위독해질 수 있는 상황이므로 얼른 옮기겠습니다.”


K의 형이 투덜거렸다.

“에이, 병원비 좀 아끼나 했더니!”




12. 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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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센 강가 교회 지붕


K는 특실로 옮기자 퉁퉁 부은 눈을 잠깐씩 떠보며 편안하게 잠을 잤다.


시어머니는 모내기한다고 시골로 갔다. K의 형수한테 매일 너의 삼시 세끼를 해 나르라고 엄명을 내리고. K의 형수가 된장국을 끓여 왔다.


네가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는데 K가 눈을 반짝 뜨고 입맛을 다셨다. 감격한 네가 얼른 다가가 물었다.

“밥 먹고 싶어?”

K는 찡그리며 아주 기분 나빠했다.

“당신도 조금 전에 점심 먹었잖아.”

K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까 주사기로 먹은 게 점심이야!”

K는 에이! 하고 화를 냈다.


입으로 음식 먹은 기억이 없는 K로서는 분통 터지는 일일 것이다.


저녁 식후 약을 가져온 간호사가 엄마 해 보세요, 하니까 입만 크게 벌렸다.


학부모가 사 온 빵을 베어 먹으며 침대 곁을 지나갔다. K의 눈이 또 반짝하고 빛났다.

“이거 줄까?”

K는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 응! 했다. 처음으로 한 대답이었다. 너는 또 감격했다.


이렇게 나날이 회복하면 머지않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에 주치의가 보리차를 수저로 흘려 넣는 것을 보았던 너는 얼른 부드러운 크림을 수저로 떠서 K의 입에 넣었다. K는 쩝쩝거리며 아주 맛있게 먹고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묻은 크림까지 핥았다.


K는 변비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며칠 전부터 변비약을 복용하고 인턴이 약물을 주입하면서 여러 번 관장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때마다 K는 아오! 아오! 하고 비명을 질렀다. 기도가 뚫려 있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자 비명 지르는 K의 얼굴은 시뻘게지며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저러다 또 혈압 치솟겠다!


이럴 때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밖에 없었다. 손가락으로 파내는 것이다.


20일 넘게 대장 안에서 수분을 몽땅 뺏긴 똥은 동물 사료처럼 동글납작한 모양으로 단단하게 압착되어 좀처럼 떼어지지 않았다. K는 배변이 시원치 않자 사뭇 화를 냈다.


이제 너는 손가락에서 쥐가 나도록 똥을 파내는 게 주요 일과가 되었다.


며칠에 걸쳐 웬만큼 꺼내자 작은 똥 덩어리들은 약 올리듯 요리조리 네 손가락을 피해 직장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렸다.


K 대학 후배 유 선생이 동생을 데리고 왔다. 너는 K가 다 낫기라도 한 듯 신바람이 났다. 유 선생 남동생은 K의 고교 후배이면서 한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소문만 명의였다. 너는 유 선생한테 K가 편마비 되었다고 여러 번 한방 치료를 간곡하게 부탁했었다.


유 선생 남동생은 침착하게 진맥하고 두 시간 넘게 침을 놓았다. 그는 치료를 끝내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대학병원 입원실에서 치료하려니까 도둑질 같아서 더는 못하겠네요. 나중에 퇴원하면 댁으로 가겠습니다.”


너 역시 주치의나 인턴, 간호사가 올까 봐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2개월 병가 1년 휴직 처분이 났다.

모레부터 임시 교사가 수업을 맡는다고 했다.


쿵!

너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소식을 전하던 학교장과 서무과장이 그런 너에게 아무 걱정 말고 간호에만 전념하라며 위로했다.


병원에 온 지 22일 되는 날 아침 도뇨관을 제거했다. 요도에 도뇨관을 장기간 삽입하고 있으면 세균에 감염될 수 있어 불편하더라도 비닐 튜브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K의 몸에 붙은 무언가가 제거될 때마다 너는 희망에 부풀었다. 이렇게 나날이 회복하다 보면 머잖아 오른쪽의 마비도 풀려 학교에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K의 왼손은 아직도 침대 난간에 묶여 있다.

K는 끊임없이 왼손을 움직여 매듭을 풀었다.

너는 풀린 만큼 다시 묶고.


드디어 K가 여러 번 묶은 매듭을 모두 풀었다. 그러고는 코에서 위까지 삽입한 비위관을 잡아 빼버렸다.


긴장한 의사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의사가 비위관을 코에 넣으면 K는 삼키지 않고 기침을 하며 입으로 뱉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료진도 힘들고 K는 더 힘들었다. 30분 넘게 고생한 끝에 간신히 위까지 넣는 데 성공했다.


K 식도에서 튄 피가 천장까지 날아갔다.


사흘이 지나자 K는 그렇게 호된 고생을 했으면서도 끈을 풀어달라고 계속 화를 냈다. 네가 튜브를 절대 빼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풀어주겠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했다.


왼손이 자유로워진 K는 축 늘어진 오른팔을 한동안 만졌다. 그러고는 몇 번 꼬집어보더니 조심스럽게 들어서 편안한 자리에 놓았다.


K는 약속한 대로 튜브를 빼지 않았다. 튜브 넣을 때 힘들었던 것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걱정스러워 너는 K의 허락을 받고 손을 묶어 놓았다.


95kg에 육박하는 K

50kg의 너


너는 기저귀 갈기와 시트 바꾸기가 가장 힘들었다. K는 이날부터 왼쪽 다리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번쩍 들었다. 한결 수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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