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크로아티아

8 중세기 병사

by 글마중 김범순

보스니아 네움의 아침이 밝았다.

바닷가 호텔 뒷마당에서 제비를 보았다.

삼십 년 지기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네움에서 크로아티아로 재입국할 때도 여권 검사를 했다.

크로아티아가 셍겐조약에 가입을 안 해서 그렇다고 했다.

셍겐조약 26개국 중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는 익숙하지만

리히텐쉬타인과 말타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국가였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해 스르지 산으로 갔다.

버스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좁고 가파른 비포장도로를 간신히 올라갔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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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산간지대나 있을 법한 낯선 꽃들과 벌레가 앞다투어 인사했다.

밤에는 얼어붙을 만큼 춥고 한낮의 태양은 태워버릴 듯 이글거리고

거친 바닷바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차게 부는 스르지 산이었다.

그 속에서 촉을 틔우고 꽃까지 피웠으니 예쁘고 향기롭고 약성이 뛰어날 수밖에.


스르지 산 정상에 섰다. 눈 아래로 화보를 확대한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영혼을 팔면 시간이 멈춘 두브로브니크에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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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지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두브로브니크

성문으로 들어가는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이드가 차에서 내려 어딘가로 달려가 전후 사정을 살펴보고 왔다.

"마라톤 대회가 열려서 정문으로 들어가려면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해요. 묘안이 있으니 모두 내리십시오.”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신시가지와 연결된 도로를 내려다보며 열심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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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문으로 가면서 본 풍경

우리는 가이드 덕분에 고생하지 않고 북쪽에 있는 부자 문을 통해 금방 입성했다.

부자 문을 통과했으니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되었다고 뻥뻥 큰소리를 쳤다.

가이드가 말했다. 그 부자가 아니라 구멍이라는 뜻이라고.


언덕에서부터 루자 광장까지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좁은 골목에는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평지에는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부자들이 살았다고 했다.


크로아티아 이슬람 세력의 전쟁 영웅 울란도 동상 앞에 섰다.

발판에는 울란도의 팔 길이가 그려져 있었는데

두브로브니크 공화국 길이의 단위이며 신뢰와 자유무역의 상징이라고 했다.


13세기 프란체스코 성당 안에는 검역소가 있었는데 수장의 임기가 딱 한 달이라고 했다.

뇌물수수를 철저하게 막기 위해서였다.

모든 물품은 40일간의 검역을 거치며 발진티푸스 등 전염병 관리를 했다고.


에메랄드빛 바다에 떠 있는 유람선을 탔다.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 주제곡이 흘러 감흥을 자아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젊은 선원이 투박하고 거친 솜씨로 찔끔찔끔 맥주를 흘리며 건네서 흥이 반감되었다.

성벽이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고 바위가 겹겹이 쌓인 작은 섬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유명한 누드 비치였다.

말로만 누드 비치? 아니었다. 정말 홀딱 벗은 남자가 누워있다.

그 섬에 발을 들이는 조건이 탈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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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비치를 지나 돌아올 때 본 호텔 오두막

두브로브니크로 돌아와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종류가 어마어마해서 무엇을 먹을까 망설여졌다.

손가락으로 바나나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정확하게 가리키며 요거랑 요거 주세요! 했다.

점원이 웃으며 오케이 요거트 아이스크림!

아니라고 하려는데 번개 같은 솜씨로 아이스크림을 콘 과자에 담아 내밀었다.

크로아티아에서 몇 번 먹은 아이스크림은 흔한 맛이었는데

원하지는 않았지만 상큼한 요거트 아이스크림은 기대 이상이었다.


두브로브니크 옛 시가지를 둘러싼 길이 2km 높이 20여 미터의 육중한 성곽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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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는 마주 오는 사람과 스쳐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았다.

걸을 때마다 화강암을 조각내서 만든 견고한 바닥이 튕기듯 차가운 반응을 보냈다.

높고 낮고 크고 작은 빨간색 지붕들과 하늘이 경쾌한 왈츠를 추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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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맞춰 여기저기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비둘기 떼가 날아올랐다.

거룩한 종소리에 휘말린 나는 중세의 책임감 강한 병사가 되어 있었다.

매의 눈으로 바다도 살피고 산도 살폈다.

적이 눈에 띄면 들고 있는 창으로 가차 없이 공격할 것이었다.


골목길 담벼락 그늘에 놓인 식탁에 앉았다.

길에서 밥을 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예쁜 꽃이 있어서 그런지 낭만적이고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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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와 샐러드, 파인애플 주스를 시켰다.

샐러드는 그냥 그렇고 화덕에 구운 피자는 구수한 밀 냄새를 풍겼다.

기막히게 맛있는 파인애플 주스가 혀끝의 맛봉오리와 뇌수에 크로아티아 다섯 글자를 한 땀 한 땀 수놓았다.


500년 전에 만들어 지금까지 쓰고 있는 오노프리오 분수대 16개 수도꼭지에는

사람과 동물 모양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계단에 앉아 일행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성문을 나섰다.

고혹적인 바람 구두를 신은 두브로브니크가 말했다.


- 너는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첫걸음을 뗀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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