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크로아티아

9 황무지의 비밀

by 글마중 김범순

타래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클래식 기타 선율은 순식간에 차 안을 궁전으로 만들었고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나는 허브 향기 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차창 밖 야자수는 온몸으로 거친 바람과 맞서며 무언극을 하고 있었다.


아드리아 해안은 이리저리 돌 때마다 숨바꼭질하듯 빨간 지붕의 예쁜 집들이 숨어있다.

계획된 전원주택을 뺀 우리의 시골집들은 왜 그렇게 초라할까?

기와 색깔과 재질과 지붕의 경사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우리나라 지붕 경사는 15°로 완만한데 그곳은 45°였다.


인구 7만 명의 부유한 도시 자다르에서 아침을 맞았다.

이런, 젠장! 이 호텔 욕실도 거울이 높이 달려있어 까치발을 들어야 윗입술이 보였다.

키 작은 사람은 아랫입술에 립스틱을 바르지 말라고?

일주일 넘게 우유와 시리얼, 치즈, 소시지, 햄만 먹었는데 질리지 않았다.

고추장과 김을 준비하지 않아 마음 쓰였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아, 깜빡 잊고 빠트릴 뻔했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유별나게 사과가 맛이 없다는 것이다.


자다르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육지의 문은 지옥의 문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베네치아의 문장인 날개 달린 사자가 조각되어 있었다. 사자에게 날개까지 달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대지와 하늘을 영원히 정복하고자 했을 것이다. 승리를 상징하는 3개의 아치 가운데는 성 크루슈바나 상이, 양옆에는 방패가 조각되어 있었다. 사자가 들고 있는 책이 펼쳐져 있으면 평화를 상징하고 전쟁 중에는 책이 닫혀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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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문장인 날개 달린 사자상

9세기 말 자다르는 헝가리가 지배했는데 베네치아가 탐을 냈고 협상 끝에 헝가리 왕은 자다르를 베네치아에 팔았다. 성벽은 15세기 오스만 터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쌓았으며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도르래가 달린 다섯 개의 우물을 마련했다. 요즘은 우물 광장에서 각종 콘서트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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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드래 달린 우물

로마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로만 포름 광장에 섰다.

한쪽에 신전 기둥을 옮겨다 놓은 수치심 기둥이 있었다.

죄를 지으면 높이 묶어 놓고 많은 사람이 보는 데서 때려 수치심을 느끼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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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기둥

성 도나트 대성당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지었는데 6세기 대지진으로 허물어졌다.

그때 파손된 잔해들은 도시 요새와 교회를 세우는 데 사용되었다.

부러진 기둥과 허물어진 성터에 흩어져 있는 건축물 조각들은 흥망성쇠를 한눈에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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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성 도나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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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프롬 광장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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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프롬 광장 부근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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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포름 광장 부근 가게

바닷가에 다다랐다.

가이드가 피아노 건반 모양의 기다란 의자에 나란히 앉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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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 - 피아노 건반 모양의 의자. 사진 아래 - 계단 세로 홈이 바다 오르간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음악 소리가 들린다고.

........?

.......♪..... ♬

어, 들렸다. 악기 소리가 틀림없었다.

넓고 깊은 곳에 가득 찼다 비워질 때 나는 공허한 선율이었다.

불가능해서 더 가고픈 양수로의 회귀를 꿈꾸는 인간의 그리움을 담은 바다의 허파만이 낼 수 있는 소리였다.

크로아티아 설치예술가 니콜라 바스치가 바닷가를 따라 35개의 계단 속에 파이프를 수직으로 세워 넣고 세로 홈을 파서 파도의 세기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게 만든 바다 오르간이었다. 바다 오르간 옆에는 태양열 판으로 만든 태양의 인사라는 설치 작품도 있었다. 소문난 자다르의 석양과 조명이 들어오면 더 아름답다고 했다. 태양의 인사도 보고 싶었지만 패키지여행에서 혼자 남을 수는 없지 않은가.


벼르고 벼르던 허브 가게에 들렀다.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일행의 얼굴이 환해졌다.

젊은 한국인 주인 내외 안목이 예사롭지 않았다.

“실내 장식이 수준급이에요. 아주 멋져요.”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고 심심하니까 죽어라 가게에만 매달려서 그렇습니다.”

그 한마디에 타국살이의 애환이 오롯이 전해져 왔다. 라벤더 오일을 샀다.

불면증이 있어서 잠옷에 두세 방울 떨어뜨리고 크림에 섞어 기초화장품으로 쓰기 위해서다.

국내보다 50% 저렴했다. 남자 주인이 말했다.

“여러분도 크로아티아는 왜 저렇게 많은 땅을 놀리나 궁금하셨죠?”

너도나도 그렇다고 했다.

“황무지에 널려 있는 풀과 나무가 모두 허브라 그렇습니다. 산과 들이 천연 허브 농장이나 마찬가지라 일부러 인력과 자본을 들여 가꿀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나이 들어 크로아티아에 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허풍선이 기질이 있는 나였다.

조금 젊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빚을 얻어 황무지를 개간해 농작물을 심고 쫄딱 망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후타우로 가기 위해 자다르를 떠났다.


스플릿 꽃이 파수꾼처럼 서 있는 거친 황무지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황무지가 돈으로 환산되었다.

소나무가 많으면 폐, 신장, 신경계 기능 강화제인 값비싼 파인 오일이 생산될 것 같아 뿌듯했다.

어쩌다 산 중턱에 집이 한두 채 있었다.

전기와 물 공급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데 가이드가 큰소리로 말했다.

“아드리아해 마지막 모습입니다.”

태양과 시간을 가득 머금은 아드리아해가 속절없이 뒤로 물러났다.

섭섭하고 안타까워 가슴이 먹먹했다.

신들의 정원 크로아티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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