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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음 Sep 18. 2022

가장 찬란한 순간, 사계절을 담아보기로 했다.

신지음 계절집 plorog






모든 걸 다른 사람에게 맞출 필요 없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겁먹지 않아도 되고요.


다른 사람의 관점에 맞출 필요도 없어요.


그저 나답게.


나인 채로 다른 사람과 공존하세요.     


그저 당신일 때, 당신은 가장 빛나요.       


        




  그저 나답게 산다는 건,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주변은 나답게 살도록 놔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장 나답게 산다고 느꼈었던 순간은 사계절을 온전히 느끼고 있을 때였다. 진안고원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산속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곳에서 파릇파릇 올라오는 봄의 기운을 보고 있자면 생명의 신비에 입을 다물 수가 없게 되었고, 함께 머물던 작은 생명들과 살아있음을 느꼈다. 가장 사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무도 내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자연 속이었다.



  자연 속의 하루는 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시의 사이클이 일주일 주기로 돈다면, 자연의 사이클은 1년 주기로 돈다. 하루는 보다 평화롭지만 일년은 빠르게 흘러가 있다. 매년 봄이 되면 생명을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비를 기다린다. 비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장마가 찾아온 여름날에는 모든 마음을 비운 채 가만히 마당을 내려다본다. 비가 그치고 다시 햇살이 나면 다시 힘을 쓸 때가 됐다는 뜻이다. 땀방울을 흘려 감자를 캐고, 고추를 따고, 옥수수를 딴다. 농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나면 자연이 주는 의무가 끝이 났다는 걸 실감한다. 그늘이 진 마루에 앉아 솔솔 부는 바람과 함께 수박을 먹는다. 따사로운 햇살도 살짝 비켜가는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면 이 작은 산 속이 모두 내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어느새 밤공기가 차가워지면 가을이 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느새 갈색으로 변한 나뭇잎이 시선을 끌고, 떨어진 낙엽은 한 해를 정리해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하얀 눈이 세상을 덮으면 장작불 사이로 고구마를 넣어놓고는 기다린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 군고구마를 꺼내 호호 불어 먹으며 한 해를 돌아본다. 새하얀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으며 걷는 이 길과 사계절을 느끼고 있다는 안도감. 살아있는 걸 실감했다.


   

  그게 불가능해졌던 건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부터였다. 일은 매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산속의 작은 마을에서의 평화로운 사계절을 다시 느낄 수가 없었다. 3년 동안을 쳇바퀴 삶을 벗어날 생각만했다. 그러다가 회사와 일상이 공존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제 더 이상 방학을 기다리거나 주말만을 기다리며 살지 않기로 했다. 일상을 버텨내면서도 최선을 다해 행복하기로 했다.



  행복하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많은 시간이 무너지고 부서진다. 부서지는 많은 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세상에 놓여 있는 주인 없는 아주 작은 행복들을 찾아내고야 만다. 작은 행복들을 찾아다니다가 문득 도시 속에도 세상이 온통 '계절감'으로 물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이 알록달록 하다는 걸 알게 되니 지루하기만 했던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멍하니 올려다본 하늘은 너무나 파랬고,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은 땅의 수평선과 맞닿아 있었다. 세상은 때로는 분홍빛으로, 때로는 초록빛으로, 알록달록하게 물들었다. 매일 무심코 지나쳤던 이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계절감을 다 만끽한 20대를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사계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주 잠시 동안은 온 세상이 계절감으로 가득 차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하늘을 틈틈이 올려다본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따뜻한 봄에 벚꽃을 가만히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분홍색의 벚꽃이 대비되어 한 폭의 그림같이 내 눈에 담겼다. 새가 지저귄다. 놓치고 살아오던 아름다운 장면이 거짓말처럼 나에게 다가온다.



  나의 사계절은 어렸을 때의 사계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고 담아낸다. 일상을 버텨내면서 결국 만나게 되는 지나치기 쉬운 순간을 계절감이 가득 찬 공간으로 만들고야 만다. 하루는 아주 몇 분, 하루는 몇 초 그리고 계절감이 아주 간절해질 때는 결국 여행을 다시 떠나서라도 이 세상을 계절감으로 가득 채우고야 만다.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기 위해 아주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이 계절감을 만끽하고 기록한다. 이제야 예전보다 더 행복하고,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었다.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1편인 프롤로그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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