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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음 Sep 22. 2022

나의 지나간 사람에게

봄, 사랑의 계절

   




한편의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있다. 잠시 곁에 머문 사람도 있고, 꽤나 오래 머문 사람도 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곁에 머문 사람이 얼마나 오래 곁에 머물지는 알 수 없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거리감만큼 사람을 속상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 있을까.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면 감당해야겠지만 갑작스러운 거리감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고, 그건 약간의 불신 비슷한거였다. 더 행복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 혹은 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 같다는 예상.



사람이 오고, 사람이 떠나간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한 사람이 비집고 들어온 나의 공간에는 조그마한 틈도 남아있지 않아 답답하고 버겁다고 느껴졌다. 그 사람이 다가오기 전처럼 되돌아가면 어떨까. 원래대로 그 사람이 나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면 조금은 이 답답함이 사라질까.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들어온 사람을 밀어내 나의 공간을 다시 만든다. 내가 만들어갔던 습관과 여유로움을 버리고 그 자리를 사람으로 채우다가 결국 버거워지고 말았으니까. 나의 답답함이 '나에게 다가온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답답함이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답답함보다 더 컸던 건 '그리움'이었다.



그가 차지하고 있던 나의 하루를 보내던 첫날은 사실 그리우면서도 숨통이 트였다. 그가 빠지고 남은 공간들을 누비면서 자유롭다고 느꼈다. 새롭게 생긴 시간의 공간 속에서 나는 훨씬 여유롭게 하루를 누볐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였다.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 있어 그가 없다는 건 내가 느꼈던 '가벼워짐'보다도 훨씬 무거워서 다시 내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하고만 싶어졌다. 그가 사라진 나의 시간의 공간이 허전했고, 나의 일상을 누구에게 공유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 서성거렸다.



그런 날이 몇 번 반복되었다. 나는 결국 그리움을 감당하지 못했다. 다시 찾았고, 그는 늘 기다렸다. 나는 답답함을 감당하지 못해 다시 떠났고, 그는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많은 상처를 받고 힘들어했고, 외로워했고, 지쳐갔을 것이다.



물론 여러 대안이 있었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던가, 일상을 다 공유하지 못하겠다고 하던가, 같이 보내는 시간을 좀 줄이고 싶다고 하던가.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연락을 더 많이 하고 싶어 하던 것도 나였고, 그의 일상이 궁금했던 것도 나였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도 나였기에 나는 그런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리고는 비겁하게 그를 떠나면 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또 빈 공간에 대한 허전함을 느끼고, 그리움을 느낀다. 내가 느꼈던 자유로움보다 그리움이 훨씬 커져서 감당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 그리움을 해결하자고 시간의 공간을 누군가로 채울 생각은 없다.



여전히 누군가로 나의 하루가 빈틈없이 채워지면 도망을 가고 싶어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게 분명하기에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나에게 여러 공간을 남겨두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이 오고, 사람이 떠나간다.



설렘은 아주 잠시지만 그리움은 오래 머문다. 그럼에도 잠깐의 설렘이 너무도 강해 우리는 또 누군가를 만나고, 또 알아가며, 또 그리워한다. 그 설렘이 일상으로 변하면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기 힘들어지겠지만 서투른 하루 속에서도 남기고 싶은 날들이 남는다. 서투르다는 말로 모든 게 용서되지는 않겠지만 서툴렀고, 아직도 서툴러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 나를 이해해줬던 그에게.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봄 : 사랑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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