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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Dec 02. 2021

나의 영원한 내연남의 고백

어미새, 아기새.. 그리고 아빠 새?         일러스트 by하노이민

오늘도 나의 내연남은 양말과 입던 옷을 여기저기 뿌려놓았다. 리고 잠들기 전, 함께 침대에 누웠다 가라며 손을 잡고 끌어당긴다. 그럼 나는 힘없이 툭 못 이기는 척 주저앉고야 만다. 나의 심장 반쪽을 내준 대가일까. 연하도 한참은 연하인 그 녀석.. 정체는 바로 11년 하고도 6개월 된 쭌이다. 쭌이는 벌써부터 엄마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하노이에 있는 국제학교는 한국인의 비율이 을 수밖에 없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베트남 내 한국 기업이 많아 주재원 가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외국기업들에 비해 학비 지원의 혜택이 크다 보니 높은 학비의 국제학교에 집중이 된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실제로 하노이에 먼저 진출한 일본의 C사는 국제학교의 지원을 100프로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인 국제 학교만 전액 지원해 준다.) 당연히 한국에서 주재원 생활에 YES를 외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학비지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국의 기업 또한 저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이에 부응해 BIS의 세컨더리에서는 한국인 학생을 위한 ‘한국어 수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한국어 수업 소식에 기뻐했던 건 아니었다. 국제 학교에서 무슨 한국어 수업이냐는 반발심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영어 수업을 더 빡세게 해도 모자랄 국제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한다니..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쭌이는 지난주부터 ‘윤동주 시인’에 대해 배웠다며 ‘별 헤는 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역시, 뭐든지 배워서 손해 볼 건 없다. 사실 아이들이 학교를 갈 때는 아침마다 돌아가면서 맘에 드는 시를 한 편씩 뽑아서 낭독하곤 했다. 아침 7시 35분에 오는 셔틀버스에 늦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말랑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가장 짧은 시간에 마음을 녹이는데 ‘시’만큼 완벽한 게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 수업이 7개월 차에 접어들고 학교와 집의 경계선이 모호해져 버렸다. 그리고 서둘러 등교할 필요가 없는 우리는 점점 시 낭송에 게을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학교에서 시에 대해 배우고 있다니, 브라보! 한국어 수업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어제의 ‘나’여, 반성하라. 한국어 수업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내 인생에서 가장 먼저 외운 시가 바로 윤동주 시인의 시였다. 초등학교 6학년, ‘서시’를 처음 접하고 감동받은 나는 길을 걸을 때도 혼자 중얼대고 외울 정도로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하는 시인 하면 윤동주 시인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얼마 전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잘 아는 프렌치 ‘파비앙’이 유튜브에서 ‘서시’를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영상을 초 단위로 멈춰가며 한 구절 한 구절 받아 써놓기까지 했다. 물론 서시는 한국어로 들을 때가 감동이 더 잘 전달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쭌이의 입에서 그 이름을 듣게 되다니, 만세 삼창을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엄마, 아무래도 나 ‘시’때문에 상 받은 거 같다.”


그리고 그 주에 쭌이는 한국어 수업에서 최고의 학생으로 뽑혔다. 아무래도 시를 잘 써서 상을 탄 것 같다며 쭌이는 신나 했다. 궁금해진 난 시를 읽고 싶다고 했다. 쭌이는 본인이 쓴 시를 캡처해서 가족끼리 하는 단톡방에 보내주었다. 별생각 없이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문장부터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울컥하는 마음이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이런 시심이 쭌이에게 있었던가. 두 살 아래의 여동생과 서로 소고기 한 점을 더 먹겠다며 젓가락으로 펜싱을 하듯 티격 거리는 쭌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닌텐도 게임을 한 판만 더 시켜달라고 떼를 쓰던 녀석인데.. 어느새 이렇게 자랐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멋진 시를 썼을까. 쭌이의 시를 열 번은 더 읽었다. 그리고 눈물이 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늘 아이 같던 쭌이는 이렇게 깜빡이도 켜지 않고 불쑥 내 마음을 울린다. 그리고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육아는 늘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을 걷는 것만 같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하는데도 여전히 확신이 없고 결과가 나오지 않아 조바심이 난다. 그 누구에게도 이게 맞는지 틀렸는지 당장 물어볼 수 없다. 정해진 답이 없어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쭌이의 시를 읽고 보니 어쩌면 우리가 잘해나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아들은 겉으로는 의연하고 씩씩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백 번망설이고 주춤하는 엄마란 걸 알되었을까. 



그래, 조금만 더 힘을 내어 보자. 그리고 시집을 펴보았다. 모닝 시 낭독을 다시 부활시킬 때가 왔다. 내연남에게 답시 해줘야지.




​P.S. 쭌이의 시를 읽고 온 가족이 아낌없는 칭찬과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갑분 허를 찌르는 아빠의 한마디.

“멋지다. 근데…
아빠 새는 안 나와?”


쭌이는 티키타카를 멈춘다. 정지 화면처럼 가만히 있더니 2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대답한다.

“어…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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