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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Dec 22. 2021

베트남에서 일본 미용실로 간 한국인

일생일대의 도전, 쇼트커트   일러스트 by 하노이민언냐


여기는 일본? 베트남? 나는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쿠카이 くかい ’는 '마치 일본에 있는 듯한 공간 まるで日本にいるかのような空間'을 표방한다. 그래서인지 입구부터 아기자기한 카드나 가방 등의 소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후 5시 이후에 방문하는 손님에게는 무료로 시원한 맥주를 준다는 안내도 거울에 붙어 있었다. 일본에서는 보지 못한 획기적인 서비스다. 미용실에서 맥주라.. 하노이에서만 가능한 미용실이면서도 너무나도 일본스러운 미용실, 어딘가 모르게 묘하다. ‘쿠카이’는 하노이와 일본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걸까.   

     

하노이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3대 간판은 ‘퍼’(phở), 카페(quán cà phê) 그리고 미용실(tiệm cắt c)이다. 길거리에서 의자와 거울 하나씩 놓고 자르는 간이 이발소를 포함해 로컬 미용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열 발만 가면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일본 미용실에 앉아 있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자기뿡, 나 머리 짧게 자르까?"

"아니."

"왜?"

"... 머리 망쳤다고 괜히 이불 킥하지 말고 걍 있어라."

"..."    


으으으, 20년을 넘게 함께 했더니 남편은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머리를 망치고 화를 내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웰 컴 투 더 헬!' 머리를 망치면 그날로 우리 집 지옥문이 열린다. 거울을 볼 때는 물론 유리잔에 비치는 내 모습만 봐도 분노의 폭주기관차 뿜 뿜이다. 그날로 우리 가정의 평화는 바사삭 뽀사지는 거다.    


남편과 답정너의 이 대화를 매일 저녁 반복하길 2 주가 되었다. 문득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요즘 하노이가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오늘 아침 온라인 불어 수업에서 인터넷이 3번이나 끊겨서? 아니 아니. 더 이상 주저하기 싫어서였다. 일본인 친구 M은 지난번 로컬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그녀는 목선이 훤히 보이는 아주 짧은 머리가 되어 나타났다. 그녀의 용기에 감탄하며 존경의 눈빛까지 보내는 나를 보며 말했다.     


"It is just hair, not a big deal, Min!"    


그래, 맞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덥수룩해지는 게 머리카락이다. 그 쇼트커트, 하노이에서 도전해보련다. 가즈아~!      

  

그리고 향한 곳은 일본인 미용실 쿠카이 Kukai였다.   

 

똑 단발이야 로컬 미용실에서 해도 상관이 없다. 사실 실패할 게 뭐 하나 있냐 말이지.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하노이의 로컬 미용실에서는 이마저도 어려운 미션이란 걸 말이다. 한 번은 급증하는 확진자로 하노이 도시 전체 격리를 겪은 적이 있다. 미용실은 물론 레스토랑 등 모두가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리고 격리가 완화되자, 사람들은 모두 미용실로 달려들었다. 하여 어디를 가도 만원이었다. 그때, 로컬 미용실에서 난생처음 머리를 자른 적이 있다. 당일에는 꾀 괜찮았는데 샤워를 하고 마법의 드라이가 풀리자, 양쪽 길이가 미세하게 다르게 잘렸다는 것을 알았다. 유독 삐죽 튀어나온 머리가 발견되었다. 물론 자세히 보지 않으면 크게 표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머리는 소듕하니까~ 게다가 이번 미션은 그저 그런 레고 머리와는 다르다. 엄선된 미용사가 아니면 안심이 되지 않았다. 하여 섬세한 커트로 명성이 높은 일본인 미용실을 찾기로 결심했다.


사실 ‘쿠카이’를 찾아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하노이에 와서 열심히 구글 맵을 돌려 ‘Te to Te (手と手 테또테, 손과 손)’라는 일본 헤어 살롱을 알아냈다. 하지만 차로 20분이 넘게 걸렸고 길이 막히니 30분이 넘게 소요되었다. 이건 무리 데쓰~ 오사카 사투리를 쓰는 미용사는 매우 친절했고 매장도 아주 깨끗했지만 너어~무 멀어서 단 한 번의 시도로 인연이 끝났다. 개인적으로 미용실, 병원, 헬스장 및 학원은 반드시 가까워야 다는 주의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차에 일본인 친구 O가 떠올랐다. 365일 정갈한 쇼트커트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는 단 한 번도 머리를 어깨 아래로 기른 적이 없었다. 하여 물어보니, 집에서 도보로 10분도 안 걸리는 ‘쿠카이’를 추천해주었다. 악, 이렇게 코앞에 두고 나는 ‘Te to Te’ 30분이나 를 타고 간 것인가.    

 

먼저 가격을 확인해 보았다. 일본 미용실은 로컬에 비하면 2배 이상 가격이 비싸다. 로컬이 여성 커트비가 20만 동 - 30만 동이라면 일본 미용실은 76만 동, 한화 3만 8천 원이다. 하지만 한국의 ㅎㅁㅈ, ㅂㅅㅊ과 같은 빅 브랜드 미용실과 별 차이가 없다.     


쇼트커트라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 나는 프랑스어 온라인 수업을 마친 오전 10시,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미용실에 예약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인이 카카오톡을 쓰듯, 일본인들은 LINE 라인을 쓴다. 당일 예약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일본 미용실은 철저한 예약제로 무턱대고 간다고 받아주지 않는다. 그날도 만일 예약이 되지 않으면 마음이 식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시 30분에 커트가 가능하다고 했다. 아이들의 점심시간이 끝나는 게 1시 20분, 1시 30분이면 온라인 수업이 한창 진행될 때다. 집에서 쿠카이까지는 10분이면 도보로 충분히 도착한다. 이것은 데에스티니~ 운명이다.    

둑훈둑훈 예약 메시지

쿠카이가 있는 건물의 1층에는 생과일주스 바가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갔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없었다. 오렌지색의 간판만 쓸쓸하게 붙어 있을 뿐 흔적조차 사라졌다. 코비드로 정부가 하노이 전체 격리를 감행했을 때, 많은 가게들이 아예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1년 반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주스 바도 문을 닫았다. 간판만 겨우 남은 텅 빈 가게를 보자 나도 이제 변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결심하기 전에는 마음이 열 번도 더 바뀌더니 막상 마음이 서니 온 우주가 쇼트커트를 향해 등을 떠미는 기분이었다.   

 

"오히사시부리데스, お久しぶりです。 고부사타시떼오리마스 ご無沙汰しております。 민 さん."   

 

90도로 깍듯하게 허리를 굽혀 오랜만이라고 인사하는 '시게 シゲ'さん! 나는 줄곧 시게 상에게서만 머리를 커트해왔다. 일본 미용실 특유의 환대에 나도 모르게 엉거주춤 맞절을 하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하노이에서는 이런 것, 익숙지 않아. 지난 여름, 도시 전체의 격리가 완화됐을 때, 예약을 시도했지만 불발되어 오지 못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모두들 격리 기간 동안 덥수룩하게 자라난 머리를 앞다투어 자르러 오던 시기라, 아침 10시부터 밤 9시까지 쉼 없이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것도 거의 1달간 말이다. 얼마나 바빴을지 상상이 간다.

   

민さん, 可愛いからだいじょうぶですよ. 민상은 예쁘니까 괜찮아요.’    


고등학생 이후로는 한 번도 쇼트커트를 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는 '오~소우데스까? えー そうですか?'를 연발했다. 일본인의 찐 맞장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술술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다. 평소 미용실에서 묵언을 하는 나도 이날은 긴장이 돼서였는지,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머리가 잘려 나갈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긴장하는 내게 그는 ‘예쁘니까 괜찮아요’라는 말을 해주었다. 헉, 그는 실로 유능한 헤어드자이느~ 샘이다. 예의상 하는 말이지만 배시시 웃고야 말았다. 이 말도 안 되는 광대 승천은 무엇? 늘 느끼지만 그는 칭찬을  잘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특히 엄마가 되고 나면 이런 칭찬 좀처럼 듣기 힘들다. 이건 나도 배워야 할 자세다. 이외에도 그는 개를 키우고 있고 가게 근처에 살지만 이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거리는 새롭게 생겨나는 퍼브와 레스토랑으로 예전만큼 한적하지 않다고 다. 또한 그는 미국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유능한 헤어 스타일리스트였다. 2년 전 막 미국으로 다시 가려고 준비가 끝난 시점에 코비드가 터져 모든 게 무산이 되었다니.. 듣는 내가 다 안타까워질 지경이었다. ‘간바레, 시게상 頑張れ.’     


1년 넘게 온 쿠카이지만 이렇게 많은 얘기를 나눈 건 처음이다. 그만큼 긴장을 많이 타고 있었다. 영어가 능한 그는 외국인 손님은 물론 한국인 손님들도 멀리서 찾아온다고 한다. 물론 나는 일어를 하는 재미에 가기에 영어를 전혀 쓰지 않아 이 또한 금시초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어시스트의 샴푸와 두피 및 어깨 마사지! 가장 좋아하는 코스다. 그녀의 마사지 실력은 정말 수준급이다. 나도 모르게 ‘으어~!’하고 아저씨 소리가 새어 나올뻔했다. 처음에 그녀를 만났을 때, 일어 발음이 너무 좋아 일본인인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샴푸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려 거울 앞에 착석한 나! 그때 마침 쭌이와 쩡이로부터 메시지가 한 통 왔다. 그리고 펼쳐 든 나의 Z플립 스마트폰! 그녀와 시게상은 Z플립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지. 실물 영접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훗~ 이번 플립 시리즈는 정말 잘 빠졌다. 신이 난 나는 이참에 폰을 바꾸라고 열심히 플립을 열었다 닫았다를 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실없는 영업이었다. 역시 일본의 맞장구 스킬은 나를 무장해제시켜 빙구 본성을 뽐내게 한다.     

LINE

그리고 1시간 넘게 걸려 완성된 쇼트커트! 계산을 하려는데 거스름돈 사만 동이 없다며 오만 동을 주었다. 앗! 정확하기로 소문난 일본에서 이렇게 깎아주기 있기 없기? 적은 돈이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디스카운트 알 러빗! 연신 시게상은 ‘카와이이可愛い’를 연발해주는 립서비스 또한 잊지 않는다. 카와이이可愛い라는 말을 들은 게 언제였더라. 미용사가 자기가 자른 머리를 칭찬하는 게 뭐가 대수겠냐만은 듣는 나는 칭찬으로 듣기로 했다. 예쁘다는 말에 지극히 기분이 좋아지는 단순한 1인이다. 이게 너무 오랜만에 듣는 단어라 내겐 마치 상상의 동물 ‘해태’와도 같단 말이지.    

목 뒤로 바람이 불어오는 게 느껴졌다. 어색하지만 '뉴 민 new Min'으로 다시 태어난 듯 상쾌했다. 더 이상 예뻐 보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묘한 해방감마저 들었다. 어떻게 해도 여성스러울 리 없는 이 머리에 자유를 얻은 기분이랄까. 셀카를 한 방 찍어 가장 먼저 가족 단톡에 보낸다.    


일생을 쇼트커트로 살아온 친언니 찌의 한마디.    


"웰컴 투 더 쇼트커트 월드."    

이놈의 머리가 뭐라고.. 자르고 보니 왜 그렇게 망설였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나 쇼트커트에 중독된 것 같다.     

                    

P.S. 호텔의 직원들 사이에서 내 쇼트커트는 호평 일색이었다. 2 명이 직접 미용실의 주소와 이름을 받아갔으니 말이다. 훗~ 이 정도면 나 성공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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