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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Oct 21. 2023

fields of gold, eva cassidy

시월

내가 태어난 계절, 시월이 이제 열흘 남짓 남았다. 노을이 지는 저녁 퇴근길에 가냘픈 미호강 저편의 황금 들녘을 바라보면 문득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eva cassidy의 'fields of gold'. 원곡은 유명한 Sting 이 불렀지만 나는 에바 카시디가 편곡해서 부르는 곡을 더 좋아한다. 바람에 춤을 추는 황금 들판과 에바의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 다른 가수의 노래만 불렀던 무명의 에바는 자기 음반을 제작하고 출시하기 전, 하늘의 별이 된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유일한 취미가 아마도 음악 감상과 노래 부르기인 것 같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여자 교사는 음악 선생님 한 분뿐이었는데, 친구들은 대학 입시 준비하느라 정신없어 보였지만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음악 시간을 기다렸다. 예쁘장한 음악 선생님이 풍금 소리에 맞춰 '비목'을 부르시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대학 들어가서 꼭 저런 노래 잘하는 여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적에 맞춰 들어간 대학의 동아리에는 오래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곡 '밀려오는 파도소리에'의 '썰물'이 있었다. 이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선배들의 인간관계론에 심취하여 허구한 날 동문들과 술을 퍼마셨고, 좋아했던 노래는 맨 정신이 아닌 꼭 술에 취한 뒤 노래방에서만 하곤 했다. 체력이 바닥날 즈음 1학년을 마치고 군입대했다.


군 생활하면서는 어쩔 수 없이 군가를 많이 듣고 불러야 했는데, 군가도 노래라서 그런지 좋았다. 군가 중에서도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온 '물새 나라', '백마혼' 등 사가들이 좋았다. 선임 병장이 되었을 때는 내무반 전축에 내가 좋아하는 곡들의 테이프로 채워졌다. 다시 사회로 돌아간다는 들뜬 기분에 사제 속옷을 입고, 숟가락 겸용 포크대신 젓가락을 사용했다. 노래도 당시 인기 있는 대중가요를 무한반복해서 들었다. 이지연 가수의 '바람아 멈추어 다오' 같은 세련된 곡들 위주로.  


군 제대 후 복학했는데 난생처음 보는 스타일의 가수가 희한한 노래를 불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였다. 뭘 안다는지. 아무튼 나는 이들이 나온 이후로 더 이상 대중가요를 듣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곡들은 대부분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에 나온 곡들이다. 물론 요즘 가수가 옛날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들은 좋아한다. 아이유의 '너의 의미'나 '청춘' 같이 우아한 노래들.


취직을 하고 회사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처음 아내를 봤을 때 늘씬하고 예쁜 외모에도 끌렸지만 아내는 노래를 잘 불렀다. 한 번은 원미연과 이용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아내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다.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었는데 '잊혀진 계절'의 가수 '이용' 형님을 스튜디오 안에서 얼굴 맞대고 얘기하니까 참 기분이 묘했다. 아내와 듀엣 곡을 불렀는데 너무 떨었던 나 때문에 우리는 탈락했고, 이후 아내는 연말 왕중왕전에서 혼자 솔로곡을 불러 대상을 받았다. 아내의 목소리는 에바 카시디처럼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나는 살면서 해보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내와 함께 버스킹을 하는 것이다. 아내가 노래 부르는 옆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싶다. 생각만 해도 자꾸 웃음이 나온다.


사진 by 해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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