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처럼, 가짜처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희 친구 사이예요.”
그들은 매매 물건을 보러 왔다며, 네이버 광고에서 출력한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 있는 거 전부 보여주세요.”
예약을 하고 온 손님들이었지만,
애초에 보려던 세 집 외에도 다섯 개나 더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도합 여덟 개.
대화 중, 이미 다른 부동산에서 여러 단지 물건을 본 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구경이구나….’
그렇게 많이 보고 다니는 손님들이 실제로 계약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여덟 개나 보여주려면 꼬박 두 시간은 걸릴 터였다.
하지만 혹시 몰라 정성을 다해 집을 보여주고 설명을 이어갔다.
손님들은 집에 들어갈 때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고, 꼼꼼히 설명까지 적었다.
여섯 채까지 보여주고 나머지 두 채는 예약이 끝까지 되지 않아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그때 부동산 안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다른 예약으로 대기 중이던 여자 손님 두 명이, 방금 들어온 남자 손님들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어머, 여기 웬일이세요? 오늘 이 구역이세요?”
‘오늘? 이 구역?’
남자 손님 둘은 크게 당황한 듯 얼굴이 굳으며 황급히 말했다.
“아니, 오늘 본 것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게 있어서요. 사려고요.”
주연은 침착하게 물었다.
“어떤 물건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하지만 남자 손님은 얼버무렸다.
“저희가 점심 먹으면서 좀 생각해 보고 다시 올게요.”
장장 두 시간 반이나 집을 보여줬는데, 매수 의사가 있다던 손님이 점심 먹으러 간다며 자리를 떴다.
어딘가 찜찜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단어,
‘오늘 이 구역’... 대체 무슨 의미일까.
주연은 물을 한 잔 마시며 여자 손님들에게 물었다.
“어떤 물건 보러 오셨나요? 사장님이 예약을 받으셨던 것 같아서요.”
여자 손님이 대답했다.
“아직 볼 물건은 안 정했고요... 그냥 아까 저 사람들이 본 거, 우리도 보여주세요.”
주연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아까 ‘오늘 이 구역’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여자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얼버무렸다.
"같은 교회 사람이라...'
교회라니, 누굴 바보로 아는 건가...?
주연은 여자 손님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남자 손님이 꽤 당황해하시던데요?”
그러자 여자 손님들은 “좀 이따 다시 올게요”라며 황급히 나가버렸다.
뭔가 이상했다.
주연은 수상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점심 먹고 오겠다던 남자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촌, 동탄도 둘러봐야 해서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말투는 정중했지만, 내용은 분명했다.
구경하러 온 거였다.
며칠 후, 주연의 부동산에서 아파트 한 채를 투자용으로 매수한 손님이 들렀다.
대표와 친분이 있던 그는 잡담을 나누다가 말했다.
“요즘 무슨 부동산 카페에서 스터디 모임 같은 걸 하더라고요.
조를 짜서 다 같이 임장 다니면서 사진 찍고, 발표도 한다네요.”
주연의 머릿속이 띵—하고 울렸다.
‘오늘 이 구역’의 의미가 한순간에 풀렸다.
그들은 각자 조를 짜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발표할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던 거였다.
우연히 한 부동산에서 서로 마주친 남자 손님과 여자 손님이
당황하며 피한 이유도 이제야 이해가 됐다.
주연은 황당한 마음에 물었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왜 하나요?”
손님도 어이없는지 웃으며 말했다.
“그냥 자기네끼리 누가 더 잘 조사했는지 경쟁하듯 한다던데요.
발표 잘하면 서로 칭찬해 준대요.”
주연은 허탈했다.
그들의 공부 놀이에, 얼마나 많은 중개사들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을까.
생각해 보니 그런 손님들이 꽤 있었다.
사진 찍느라, 설명 적느라 정신없던 사람들.
몇 동 몇 호까지 정확히 알기 위해 현관문까지 사진 찍어가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료를 위한 임장에 그렇게 많은 집을 방문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단지에서 한두 집만 보면 될 일을
무려 여덟 채를 보여달라고 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아무리 발표를 위한 자료라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다닌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손님은, 요즘 임장 손님이 많은 이유를
부동산 카페에 가입하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슬쩍 흘리고 갔다.
그리하여 가입한 부동산 카페.
그 안에는 '임장 알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임장 알바들을 통해 매물을 확보하는 부동산들이 있었다.
즉, 알바들이 적어간 몇 동 몇 호의 정보로,
새로 문을 연 부동산들이 직접 찾아가
매물을 확보한다는 얘기였다.
어쩐지, 집을 보러 들어가서
거주자에게 "주인이세요? 세입자세요?"를 꼭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퍼즐이 맞춰졌다.
집을 보면서 주인인지 세입자인지 집착하는 것, 한 단지에서 과하게 집을 보러 다니는 것.
그들의 수상한 행동들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주연의 사무실 근처에도
부동산들이 속속 개업하고 있었다.
원래 있던 부동산을 인수해 개업한 곳도 있지만,
'부동산은 무조건 1층'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손님들이 잘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상가 윗 층에 개업한 부동산들도 많았다.
그들은 부동산끼리 보는 정보망을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물건을 확보한다고 했다.
주연은 그들이 어떻게 물건을 확보하는지 참 궁금했었다.
물론 그들의 방식이 전부 알바를 통해서 얻는 매물 정보는 아니겠지만,
그 알바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꼴이 되어버린 주연은
너무나 허탈해지고 화가 났다.
진짜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려면,
이제는 가짜를 구별하는 감각도 함께 길러야 한다는 걸 알았다.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키우려면,
결국 더 많은 가짜를 마주쳐야만 했다.
어쩌면 그것도, 이 일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미지 제작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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