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선거철에 나타나는 현상처럼 뉴스와 신문에서는 총선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하루가 시작되어 끝난다. 댓글창에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 정치성향, 인물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그와 반대되는 진영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유독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특정 집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 현상이 비정상적으로 서로의 갈등이 골이 깊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태극기 부대와 개혁의 딸이라 불리는 팬덤 집단이 존재하고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여 의회에 난입하기도 하였다.
이런 광적인 팬덤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사회가 형성되어 권력의 주인이 필요하게 되면 이데올로기에 따라 집단이 나누어졌다. 이렇게 나뉘게 된 집단들이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갈등은 항상 존재하였다.
그렇기에 어느 정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예전에도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고 때로는 그들이 어느 한쪽 진영의 독선을 방지하는 건강한 기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광적인 팬덤현상은 다르다. 옳고 그름에 자신의 생각이 아닌 특정 진영 혹은 특정인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따른다. 또한, 반대 진영에 대한 비판이 아닌 물리력을 사용해서라도 해를 가하려 한다.
더 두렵게 다가오는 생각은 사회적으로 광적인 팬덤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들이 가졌던 전조 증상이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의 나치당과 문화 대혁명 이전의 마오쩌둥의 사례로 볼 때, 사회 전반의 패배감이 팽배하는 경우 광적의 팬덤 현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우함을 탓할 수 있는 타깃이필요했고, 정치가는 목표물을 지정하여 응징을 약속했다.
전 세계가 저성장의 늪으로 가고 있다. 당연한 것이다. 가장 쉬운 예시로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는 이미 상당 부분을 사용했다. 부(富)의 대물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개인들의 기회는 점점 사라진다. 승자와 패자가 분명 해지는 사회, 반대로 말하면 나의 '적'이 누군지 피아식별이 명확해지는 세상이다.
따라서, 광적인 팬덤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평화와 존중이 공존하는 이상이 지속되기를 꿈꾸지만, 혼란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기회'가 사라지는 속도에 비례될 것이라 생각된다.
사회의 제반사항을 결정하는 정치가 기회는 반드시 온다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