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벤트가 되었지만, 근래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은큰 화제였다.
예상을 뒤엎은 그녀의 폭로, 직설적인 표현, 그리고 기자회견 당시 착용하였던 모자와 옷까지 내용으로도 그 외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명백한 범죄를 제외하고는 사람 간의 발생한 사건에서 각 자의 사정들이 존재할 뿐 어느 한쪽의 100% 결백은 없다. 결말은 시간이 밝혀줄 것이기에 양측의 의견 중 어느 것이 맞다 혹은 틀리다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민희진 대표의 발언 중직장인의 시각에서 관심을 끌었던 부분이 있었다.
제가 기분이 나쁠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어요. 그냥 하이브에 감정이 안 좋을 때는 '아 xx 그냥 나가자, 빨리' 이렇게 되는 거고, 좀 괜찮을 때는 '하.. 좀 생각해 볼까. 이런 이런 방법은 어때'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되는 거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부분 한번쯤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들이 모여 있는 직장에서는 하루에도 많게는 몇 번씩 분을 삭혀야만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어떤 것들은 참고 넘어갈 만 하지만 일부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선을 넘기도 한다. 바로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먼저, 불합리함으로 인한 자존심의 상처가 있다.
업무 결과에 대한 저평가, 자신보다 무능력한 동료의 잘난 척, 특정인에 대한 편애로 인하여 발생하는 피해 등, 지속적인 불합리함의 누적은 결국 자존심을 건드리게 되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여기 말고 갈 곳이 없을 것 같아?'
'여기 말고도 갈데 많아. 내가 뭐가 아쉽다고. 관두자.'
처음 홧김에 속에서 나온 말들이 계속적으로 반복되게 되면 진심으로 변하게 되어 결심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퇴사를 '알량한 자존심'으로 인한 퇴사라고 생각한다.
알량한 자존심의 상처는 그 원인이 제거되는 순간 사그라든다. 가령, 당신이 인정받는 순간이 오거나 당신의 직책자가 바뀌거나 당신이 다른 부서로 이동되거나 등으로 바뀔 수 있다. 즉, 시간의 약으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말로 좋은 기회가 생겨서 퇴사를 한다면 복수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도망치는 것이다. 그리고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며 당신의 동료들은 비웃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지켜야 할 자존심도 있다.
내가 자부심을 가지는 '일(job)'에 대한 소명의식을 멸시하거나 나를 포함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욕한다면 그것들은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생각한다.
내가 가진 직무가 형식상으로만 존재하고 조직 내 누구도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아 멸시를 한다는 건 당신은 전문성을 가질 수 없다라는 의미다. 직장인에게 전문성이 없다는 의미는 누군가를 정리해야할 때 1순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내가 자부심을 갖고 전문성을 가지고자 하는 상황에서는 시간이 해결하여 주길 기다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므로 자존심을 지킬 필요가 충분히 있다.
나를 포함한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도 마찬가지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 없이 느낀 점은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직하지 않아서 주변 환경에 쉽게 휩쓸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번 시작된 모욕은 한 사람의 주체로 시작되서 여러 사람들도 동조하게 되며, 가해자나 피해자가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즉, 내가 속한 사회에서 나의 위치는 최약체, 괴롭혀도 되는 존재로 인식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켜야 할 자존심에 상처를 가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과감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 필요하다면 퇴사를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경험하고 지금도 경험 중이지만 회사 생활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들의 대부분은 '알량한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알량한 자존심을 부리며 퇴사 욕구가 솟아오르지만, 민희진 대표가 한 말처럼 언젠가 감정이 좋아지면 다시 보이는 것들이 있겠지 생각하며 다시 사직서를 조용히 집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