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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립 May 27. 2024

사회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下)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수명이 긴 사회적 종에서는 늙은 동물이 꼭 필요하다. 경험이 많으며 과거에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억이 생사를 가를 수도 있기에 이러한 경험은 긴요하다. 가뭄이 닥치면 늙은 코끼리 가모장은 40년 전에 갔던 수원지로 무리를 이끌고 가서 모래를 퍼내 물을 찾는 방법을 어린 코끼리에게 보여줌으로써 무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코끼리를 도살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기에 무리가 인간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출처 : 앤 이니스 대그(2016),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 시대의 창




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혹평이 존재하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이라는 착각』이라는 책이 있다. 책의 내용을 모두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자꾸 머릿속에 남아 곱씹게 되던 메시지가 있었다. '당신은 정말 당신의 능력만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인가?'


마이클 센델은 능력주의가 승자에게는 오만만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선사한다고 말한다.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된 A가 소위 선민의식을 느끼며 건설현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B를 사회에서 패배자라 생각하며 업신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근로자들이 사라지면 의사가 진료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 또한, A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학교와 있을 수 없고 공부 후에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집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순전히 당신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데 그렇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최악의 결과를 빚게 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가 좋고 나쁘다를 떠나서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공존하지 않으며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다.


정화조를 청소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수질이 관리되고 전염병이 쉽게 돌지 않는다. 위생적인 환경이 있기에 많은 면역력이 약하게 태어난 누군가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A는 변호사가 되었다. 여기서 변호사는 정화조 청소부를 패배자라 업신여겨도 되는 것일까?


창출하는 부가가치에 따른 보상이 비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높고 낮음을 대변하는 계급으로 인식될 때 공존은 위험해지게 된다.


그렇다면, 청년과 노인 간의 공존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20대의 화가와 60대 화가가 있다. 둘 중의 누가 더 그림을 잘 그리는가라고 물어본다면 20대의 화가일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도 뇌의 기능이 훨씬 활발한 청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스킬을 노인이 따라가기는 버거울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화가들의 생태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물어본다면 60대의 화가의 예측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이 앞으로의 일어날 일들도 과거 경험에 비추어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인이 늙었다고 말이 안 통한다고 능력주의 관점에서 패배자로 봐서는 안된다. 지금의 노인들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하여 경비원을 하며 아파트 궂은 일을 도맡아 하기에 눈이 와도 당신이 미끄러지지 않고 출근을 할 수 있다.


자녀의 양육부터 출가까지 경험해 본 노인이 있기에 당신이 육아가 좀 더 편하게 이뤄지고 있다. 노인의 회고록이 있기에 당신이 어떠한 결정을 할 때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청년들이 본인들의 능력만을 믿고 노인을 업신여기는 풍토가 만연해질 때 사회의 공조는 위험해지게 된다. 노인들이 본인의 역할을 포기하게 되었을 때 그 손해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대가는 청년들이 온전히 치러야 된다. 지금의 청년이 노인이 되었을 때는 청년이 된 미래 세대가 모 영화처럼 안락사를 강요하는 사회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떠한 노인들은 경제적인 형편이 풍족하여 국민연금 외에도 노후 대책을 마련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으로 노후 대책이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본인 집을 담보로 자녀들의 결혼을 위해 희생한 노인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게다가, 현재의 청년들의 경향 부모 부양을 거부 시 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님께서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지금의 노인과 공존할 줄 알아야 미래의 나와도 공존할 수 있다. 언젠가는 모두가 노인이 되기 때문에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필요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어진다는 것은 미래에 '나'를 위한 나라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일상 생활에서 노인을 보게 된다면 그 분에게서 미래에 '나'를 봐보자.

당신은 그 노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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