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gold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날,
아이는 포슬포슬한 눈 위에 발자국을 살포시 남긴다
눈이 온다는 건
곧 계절의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조금 슬픈 신호였지만
아이는 그 생각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쌓이는 눈에 발자국들이 조금씩 덮여갔다
하나둘씩 지워지는 발자국이, 아이는 괜스레 아쉬웠다
더 많은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던 아이는
마지막까지 겨울을 힘껏 안았다
이따금씩 겨울의 매서움이 아이를 아프게 했지만
아이는 발자국 하나를 더 남기는 것에 온 힘을 쏟았다
봄이 되어 눈도, 발자국도 모두 녹아내렸을 적
발자국의 기억은 아이의 마지막 겨울이 되어주었다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지나가고
다시 겨울이 돌아올 때까지
수많은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도
겨울을 떠올리고 싶을 때면
아이는 언제든 발자국의 기억을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눈 위의 흔적은
그 겨울
아이의 온기가,
아이의 추억이,
아이의 사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