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부원 강재현, 수습부원 구나윤
21세기 한국 영화는 ‘외국 영화 수입국’에서 벗어나 독자적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콘텐츠로 부상했다. 2019년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 정점이다. 본 글에서는 한국 영화가 어떻게 산업적·창작적 토대를 쌓아왔는지,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이 해외 진출을 어떻게 촉진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작은 로컬 시장’에서 ‘문화 강국’으로
한국의 영화 산업은 1990년대까지 헐리우드 중심의 수입 영화 시장에 종속된 상태였다. 당시 내수 시장의 규모 또한 제한적이었는데, 1993년 국내 영화 점유율은 15.9%에 불과했으며 연간 관객 수는 50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정책적으로 스크린쿼터제가 들어오고 민간 자본이 들어왔으며 감독 중심의 창작 생태계가 만들어지면서 영화 산업은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특히 1996년에 개정된 영화진흥법에 따라서 연간 146일 이상의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을 규정한 스크린쿼터제는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국내 창작자들이 안정적으로 상영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스크린쿼터제 덕분에 자본 유입의 리스크가 완화되어 CJ나 롯데, 쇼박스 등 대기업의 투자 확대로 이어졌고 결국 이는 고예산 영화 제작이 가능한 산업구조로 전환되는 기초가 되었다.
1999년 CJ가 투자한 영화 ‘쉬리’는 약 62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첫 번째 흥행 블록버스터로 기록되었고 이후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도둑들’ 등의 작품들이 연이어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흐름은 영화 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을 가속화시켰고 2003년 이후 한국 영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평균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2000년대 이후 등장한 감독 중심 제작 시스템은 한국 영화의 고유한 창작 경쟁력을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등 감독들의 예술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들이 국내외 평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러한 흐름은 영화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및 아카데미 4관왕 수상으로 절정을 맞았다. 이는 단순한 작품의 성공을 넘어서 한국 영화가 글로벌 문화 콘텐츠로 정체성을 전환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되는 만큼 세계진출의 발판이 되는 한국영화계의 경사였다.
한국 영화는 단순히 산업적 성공을 넘어 전 세계 문화산업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한국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 장르적 실험, 정서적 보편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권의 관객들과 소통하는, 말 그대로 ‘로컬을 넘는 글로컬’의 모범적인 사례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과 도약은 한국 영화가 자국 내 시장을 넘어서, 세계 시장에서 문화 강국의 정체성을 갖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랫폼이 쏘아올린 아주 큰 공 - 한국 영화의 안방 침투
한국 영화의 세계화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인 요소중 하나가 바로 플랫폼의 발달이다. 최근 들어 OTT 플랫폼의 급속한 확산은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극장 중심의 유통 구조가 약화되면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소비가 보편화되었고, 이는 한국 영화의 글로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OTT 플랫폼은 전통적인 영화관 기반의 유통 구조 한계를 넘어서서 전 세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었다. 과거에는 직접 극장을 찾아가야 했다면, 오늘날에는 넷플릭스, 디즈니+, 웨이브 등의 글로벌 및 국내 OTT 서비를 통해 자막, 더빙, 추천 알고리즘 등을 기반으로 각국의 안방으로 손쉽게 진입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특정 장르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한국 영화가 세계 관객과 접점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OTT 시대에 맞추어 등장한 콘텐츠 중심 스튜디오 시스템은 글로벌 진출을 전제로 한 제작 구조를 가능하게 했다. 스튜디오드래곤, 스튜디오S, SLL 등은 기획, 제작, 유통을 통합 관리하며, 플랫폼 맞춤형 한국 영화를 생산하고 있다. 즉, 전략적 콘텐츠 생산과 글로벌 진출을 연계하는 체계로 진화하여 좀 더 확실하고 체계적인 한국 영화의 세계 진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OTT 플랫폼의 발전은 한국 영화가 ‘국내 흥행’을 넘어서 ‘글로벌 시청 경험’을 전제로 기획 유통되는 구조를 만들었으며, 이는 한국 영화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영화가 이끌어내는 ‘공감’의 중요성
이렇게 플랫폼의 발달로 해외에서의 한국 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한국영화에도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한국 영화가 세계진출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공유된다고 해도, 어떤 영화는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반면, 또 다른 영화는 그렇지 못한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의 세계진출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은 무엇일까?
한국 영화의 세계 진출 성패를 단 하나의 요인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특정 요인이 세계화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충분히 추론해볼 수 있다. 우리가 찾은 요인은 ‘블랙코미디’이다. 블랙코미디는 죽음, 폭력, 질병, 전쟁 등 일반적으로 금기시되거나 어두운 주제를 유머와 풍자를 통해 다루는 희극 장르이다. 이 장르는 ‘웃으면 안되는데 웃긴 상황’을 만들어 부조리함이나 사회의 위선을 드러내기도 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함과 동시에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도록 한다.
[전세계를 사로잡은 한국 영화, 기생충]
한국영화의 세계진출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무엇인가? 아마 봉준호 감독의《기생충》일 것이다. 빈부격차와 계급 갈등을 성공적으로 희화화하여 풍자한 영화로 꼽히기도 하는 《기생충》은 크게 ‘김기택’ 가족과 ‘박동익’ 가족을 대비하여 보여주는 구조를 갖고 있다. 가장 눈에 띄게 보여지는 차이는 그들의 집에서 드러나는 공간적 차이이다. 비가 올 때 대저택에서 비오는 풍경과 빗소리를 즐기며, 비가오니 기분이 좋다고 하는 ‘박동익’의 가족과는 달리 ‘김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는 침수되어 물을 떠나르느라 바쁘다. 또한, 반지하는 그들이 경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아래’에서 살아간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공간적 차이는 그들의 경제적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체로서 작용한다.
이렇게 경제적/지위적 격차가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김기택’ 가족은 모두 사기를 통해 제각기 다른 직업으로 ‘박동익’ 가족에 고용되는데, 우스운 점은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그들 중 그 누구도 ‘김기택’ 가족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비추어지는 모습만 봤을 때 ‘박동익’ 가족이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지만, 실상은 ‘김기택’ 가족의 계획과 행동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영화의 역설적인 구조는 빈부격차의 모순된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이처럼 ‘기생충’은 부잣집에 기생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경제적 약자들과 그런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부유층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이는 부자들이 경제적으로는 우위에 있을지언정, 정작 자신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현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무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기생충’은 국내에서의 흥행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및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국내 흥행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
국내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둔 또 다른 영화로 1626만여명으로 누적관객수 천만명을 돌파한 《극한직업》이 있다. 《극한직업》은 범죄수사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코미디를 주 장르로 하는 영화이다. 마약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위장수사를 하기 위해 치킨 장사를 시작했지만, 의도치 않게 장사가 잘 되면서 수사가 아닌 치킨집 장사에 정신 팔리게 되었다는 설정부터 유머적 요소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 중간 중간 등장하는 유머스러운 대사나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코미디적 요소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맛집 코미디로 전개되다가 다시 본격 수사극으로 전환되면서 한국 사회의 마약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이처럼 마약수사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코미디 장르의 수사물《극한직업》은 2019년 당시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하였으며, 제작비 대비 흥행 수익이 매우 높았던 영화로 회자되기도 한다.
[세계가 공감하는 블랙코미디]
《기생충》과 《극한직업》 모두 국내에서 대흥행을 하며 영화 산업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한국 영화에 역사를 남겼지만, 해외 진출에 있어서는 반응이 상이했다는 점에 주목해볼만하다. 여러 상을 수상한《기생충》과는 달리 《극한직업》은 해외에서의 반응이 비교적 미미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두 영화 모두 코미디적 요소를 담고 있지만, 슬랩스틱이나 액션 코미디를 기반으로 한《극한직업》과는 달리 《기생충》은 사회적 문제를 겨냥한 블랙 코미디를 기반으로 한다. 특히 《극한직업》에서 다루는 코미디는 몸개그, 말장난, 상황극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한국인들의 웃음을 살 수는 있지만, 국가간 정서적·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결국《극한직업》에서 내세우는 코미디는 한국에 제한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통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면,《극한직업》의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대사는 특유의 과장된 어투로 익숙한 광고나 예능의 톤을 패러디함으로써 한국인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문화적 배경이 다른 외국인이 접했을 때에도 이러한 유머가 한국인이 받는 느낌 그대로 고스란히 전달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유머라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가 많이 개입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유머’나 ‘개그’ 자체만으로 세계적인 호응을 끄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반면, 《기생충》이 그러하듯 블랙 코미디와 같이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두고 이를 풍자할 경우, 다른 국가 사람들이 보더라도 이해하고 공감하기 더 쉬워진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삼아 풍자할지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기생충》에서는 앞서 언급했듯, ‘빈부격차’라는 전 지구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부와 가난, 상하 구조, 계급의 고착화는 어느 사회에서나 공감 가능한 현실이며, 이를 은유와 블랙코미디의 방식으로 풀어낸 점은 글로벌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극한직업》에서도 미세하게 나마 ‘마약문제’라는 블랙코미디를 찾아볼 수 있다. 마약문제의 경우 한국 사회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중대한 문제라 여겨지지만, 해외(특히 서구권)에서는 이미 사회에 내재한 일상적인 이슈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영화가 다루는 사회적 문제는 《기생충》에 비해 보편성이나 시사성이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전세계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풍자를 주제로 하는 영화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게 나타는 것으로 보인다. 《기생충》과 《극한직업》의 차이는 단순히 작품의 재미나 완성도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문제를 건드렸는가, 그리고 그 메시지가 얼마나 보편적이고 문화의 장벽을 넘을 수 있었는가에 달려 있다. 결국, 두 영화가 보여주는 이러한 차이는 영화가 세계적 확장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사회적 메시지와 장르적 표현성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 영화 산업은 작은 시장에서 시작했지만, 세계화와 기술 발전에 따른 플랫폼의 성장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한 때 수입 영화에 제한되기도 했던 한국 영화는 민간 자본의 유입과 감독 중심의 창작 구조를 바탕으로 성장했고, OTT 플랫폼의 발달로 영화는 더 이상 영화관에 한정되지 않으며 국경 없이 소비되는 콘텐츠가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 영화는 국내를 넘어 세계 각국에서 감상되는 콘텐츠로 자리잡으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이 발달하여 수많은 영화가 세계 각국에서 글로벌 영화 시장으로 쏟아지고 있는 지금, 해외로의 수출이 너무나도 당연해지며 영화의 세계적 성공을 위해서는 소재와 표현 방식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는 다시금 영화 산업에 영화의 세계적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결국 ‘영화 그 자체’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국가와 국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은 ‘공감’이다. 어떤 문제에 대한 공감이나 가능할 때 관객은 더욱 집중하고 몰입하게 되며, 우리가 해오던 고민을 다시 끄집어내 유의미한 성찰과 사색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세계 각국에서 수출되는 수많은 영화들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보편적이고 시의성있는 국제 사회의 문제를 풍자적으로 다루는 블랙 코미디 장르는 글로벌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거부감 없이 영화에 스며들도록 한다. 이처럼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영화가 공유되는 세계화 시대에서 영화는 결국 문화적 장벽을 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하며, 그 핵심에는 항상 세계적 ‘공감’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